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FILIPO -Nice & Smooth !- <Francis Baek>
“뭔 소리 하는 거요?’
“Filipo가 Passed way 하셨대요. 어젯밤에 심장마비로!”
“???”
버스회사 Inspector 사무실앞. Yogesh의 전갈을 다시 듣는 순간, 내 심장이 딱하고 멈추는 듯하다. Filipo가 어떤 분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신단 말인가! 이어 내 동공이 뿌여지며 눈물이 핑 돈다.
“Francis 진정하셔. 당신은 곧 버스 운전할텐데. 감정에 너무 젖으면 운전이 위험해요. 괜찮겠어요?”
“알았어요. 진정할게요”
바로 건물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비가 아침부터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하늘도 눈물주머니가 터졌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그렇게 선하고 배려심 좋은 Filipo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신단 말인가?
내가 Filipo를 처음 만난 건 10개월 전이다. 버스운전 면허증(Class 2. Full)을 따던 날, Birkenhead Transport를 찾았다. 바로 관리 총책인 Bruce와 인터뷰를 했다. 이어 버스운전 트레이너였던 Filipo가 내 운전 테스트를 했다. 일반 승용차를 타고 버켄헤드 일대를 한 30분간 돌았다. 십 수년 이상 택시 운전에 몸이 밴 습관이 어디 갈까? Filipo로부터 속도가 빠른 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Nice & Smooth!’ 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때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명언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많은 승객을 태운 버스는 45~50km/h 범위 내에서 움직이라고 했다. 승객들이 편안하게 느낄 때 제대로 운전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 뒤로 10개월. 온갖 좌충우돌을 거쳐 요즘은 Filipo 말대로 ‘Nice & Smooth!’ 하게 운전하고 있다. 어떤 코스나 상황에서도 편하게 운전하는 여건이 됐다. 시간 날 때마다 허밍으로 은혜로운 성가나 좋은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된 건, 오로지 Filipo 덕분이다.
더욱 나를 울컥하게 하는 건, 전전 날 Filipo 를 내 운행 버스에 태운 기억 때문이다. 퇴근 무렵,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교통지도가 필요한 러시아워 시간. 배차 간격이 5분대로 집중돼있고 퇴근 승객들도 몰려있는 시간. Filipo는 다운타운 브리토마트, 버스플랫폼에서 RT(Radio Telephone)로 운전자들의 버스운행을 콘트롤 해왔다. ’00 버스 앞으로 대라, 00 버스는 뒤에서 기다려라, 00 버스는 어디 오나.’ 그렇게 안 하면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하는 버스가 엉켜 아수라장이 되어서다.
오후 6시 10분쯤이었다. 얼추 퇴근 승객들이 빠져나갔을 때 내 버스가 도착했다. Filipo가 교통지도 콘트롤을 마치고, 마침 버켄헤드 버스회사 앞으로 향하는 내 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좌석에 앉아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둑서니가 몰려오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버스트레이닝 시켜줄 때 내게 누누이 당부했던 대로 ‘Nice & Smooth!’ 하게 운전하며 편하게 모셨다. 회사 앞에서 내릴 때, Filipo가 “Good Man, Champion!” 하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 밤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사실… . 받아들일 수가 없어 멘붕이 되었다.
코리안 드라이버가 늘어나자, 어느 날 Filipo가 나를 불렀다. 교통지도 때 사용할 한국 말 몇 가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몇 마디를 소리 나는 대로 영어 스펠로 적어주며 발음을 들려줬다. 우리가 영어 배우듯 진지하게 여러 번 따라 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디요? (Where is your location?)”, “오세요! (Come on, Keep going!)” 러시아워 교통 콘트롤 중, 코리언 드라이버 목소리가 RT로 들리면 이 표현을 사용했다. Filipo 목소리에 친근미가 넘쳤다. 그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항상 흘렀다.
함께하며 그의 인간미에 감사한 적이 참 많다. 버스운전 트레이닝 받으며, 약간 주눅이 들었을 때다. Filipo가 하이베리샵 버스 정류장에 트레이닝 버스를 정차시켰다. 버스에서 내리더니 근처 커피점에서 커피 두 잔을 사 왔다. 한 잔을 주면서 진정하라고 위로했다. 다음에는 나보고 사라고 했다. 단, much better than 됐다 싶을 때 그러란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여부가 있겠냐고 응답했다. 다음날 당연히 내가 그 자리에 버스를 세웠다. Large size 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들고 왔다. 곱빼기로 답례한다고 그랬다. Filipo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음에 그 커피점에 들르면 무심코 두 잔을 시키지 나 않을까. 그러면 두 잔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늘을 향해 다소곳이 불러도 되나? Filipo님! 뭐 하세요. 어서 드시지 않고?
트레이닝 버스로 좁은 라운드 어바웃을 돌 때, 뒷바퀴가 블록 턱을 넘으면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 제대로 될 때까지 반복 훈련을 시켰다. 오네와로드 맨 위쪽에서 하이베리샵 버스 정류장 쪽으로 회전할 때도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만 방심하고 핸들을, 아니 스티어링 휘일을 돌리면 뒤쪽 차체가 코너 턱에 부딪쳤다. “Wide Turn!” Filipo의 주문은 단호했다. 넓게 돌아라. 명심해라. 그곳도 수차례 주의를 듣고 수없이 연습했다. 요즘이야 내 몸과 버스가 하나 되어 ‘Nice & Smooth!’ 하게 돌아 지나간다. 하루에도 십 수차례 지날 때마다 Filipo의 음성이 들린다. 반복 습관이 참 무서운 거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버켄헤드트랜스포트 모든 직원들이 Filipo를 좋아한다. 스탭이나 운전사뿐만 아니라 정비사들도 그의 인품과 인간성을 높이 평한다. 배려심 좋고 여유 있는 미소가 훈훈했다. 버스 운전사 중 일부가 다른 계획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회사를 나갔다가 다른 일이 생각대로 잘 안 될 때, 다시 회사로 컴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Filipo가 그들을 가장 반갑게 맞이했다. 어색하고 밋밋한 마음을 토닥여줬다. 새롭게 잘 적응하도록 큰 격려를 해줬다. 경험자들은 그런 고마움을 주변에 이야기했다.
한번은 Rocky가 Filipo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웬일인가 했다. Filipo가 Rocky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던 중이었다. Rocky가 어렵고도 힘든 일을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둘 다 이민자다. 보는 나도 이민자다. 남아프리카, 사모아, 한국. 태생 나라는 달라도 살아가는 현재 나라는 뉴질랜드로 똑같다. 같은 땅에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갖는 역할에 공감한다. 다니엘 호오도온의 ‘큰 바위 얼굴’이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그런 모습이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던가.
오후 야간 운전을 밤늦게까지 했다. 줄곧 차창이 빗물에 어렸다. 하늘 눈물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노곤한 몸을 누이고 단잠에 빠졌다. 꿈속에 Filipo가 나타났다. 예의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좋은 곳으로 가시나 보다. 안도의 숨을 가다듬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지붕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누구나 언젠가는 한번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해야 하나. 남은 자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 별 모양의 은은한 빛이 하늘나라 별 같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주변에 아는 분들이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에 참석해왔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지만, Filipo의 경우만큼 마음을 깊이 파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는 저 세상에서 다 만날 것이다. 잘 사는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다. Filipo처럼 자기주장 너무 부리지 말고, 상대 입장도 배려해주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어려운 주변과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생활이면. 훗날, 사람들은 ‘Nice & Smooth!’ 하게 세상 인생길을 잘 운행했다고 덕담을 보낼 것 같다.
회사 운전자들 휴게실 한 쪽 코너에 차려진 Filipo의 영정상. 그 앞에서 여러 동료가 차례로 한참을 고개 숙이고 묵념과 기도를 드리고 있다. Filipo란 하얀색 스펠링 레고 여섯 글자. F.I.L.I.P.O. 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다. 양옆에 보라색 향초가 깜박거린다. 맨 뒤에는 소담스러운 화환이 두 개. 찬송가 악보가 새겨진 하얀색 상보. 우연히도 그 이튿날이 Filipo 60회 생신이라고 생일 축하 카드가 두 장 놓여있다. 큰 카드 위에 고인을 위해 한 마디씩 적어놓은 동료들의 인사말. ‘God bless you!’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인생의 마지막 모습.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남은 이들에게 인생의 향기와 여운을 남기고 간 Filipo. 하늘 품에 영면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깜빡이는 향초 냄새가 가슴에 저며 든다. Filipo가 남기고 간 유언도 함께 타오른다. ‘Nice & Smooth!’. *
France Baek
2015년 [에세이문학]등단
2017년 [재외동포문학상]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중
글 카페: [뉴질랜드에세이문학]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