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십자성 아래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 끝까지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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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10:49
“덜커덩, 쿵!”
아뿔사, 버스 뒷바퀴가 도로 코너 턱을 타고 넘는다. 손님들까지 태운 버스가 뒷땅을 치다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버스 운전자 체면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처음 버스운전 배울 때, 귀가 따갑게 주의를 들었건만. 자칫 방심하다가 낭패라니. 머리로 아무리 많이 알면 뭐하나. 몸에 체득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사뿐히 돌아나가야지. 좁은 도로를 끼고 코너링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천금 같은 규칙. 실종이라도 된건가.
Wide Turn 해야 한데, Under Steer 한 것. 앞 바퀴가 돌았다고 핸들을 바로 꺾는다? 영락없이 뒷바퀴가 코너 턱을 타고 넘는다. 누누이 강조한 걸 잊은 것. 급 코너링시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 백미러(Rear View Mirror)로 뒷바퀴 궤적이 안전한 간격으로 따라 움직이는 지 확인하는 일. 결론은 “끝까지” 잘 봐야 한다. Till it’s over.
“This Bus is 955”
“?”
“No Takapuna”
한국 할머니가 옆에 앉은 중국 할머니에게 짧은 영어로 말한다. 중국 할머니는 뭔 말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버스가 글렌필드 몰을 출발하여 글렌필드 로드를 따라 시티 방향으로 가는 중. 타카푸나 가려고 탄 중국 할머니가 버스를 잘 못 탔다고 알려주는 한국 할머니의 안타까워하는 마음. 어서 내리라고 손짓을 해도 중국 할머니는 멍해하는 표정이다. 신호등 앞에 서서 룸미러로 뒤를 보니, 한국 할머니가 중국 할머니에게 재촉한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바꿔 타라고. 아직도 중국 할머니, 얼떨떨한 얼굴 표정이다. 영어를 못 알아들은 채, Takapuna 단어만 웅얼댄다. 타카푸나 가는 915 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티 가는 955번 버스를 잘 못 탄 모양이다. 다음 정거장에서 중국 할머니를 내려 드리며 안내를 한다. 길 건너 저쪽에서 버스를 바꿔 타세요. 맞은 편 다우닝 스트리트 버스 정거장을 손짓으로 알려드리자, 그제야 이해가 가는 표정이다. 중국 할머니가 실수를 한 것도 “끝까지” 버스 번호를 다 안 본 것 때문이다. 955번 버스인지 아니면 915번 버스인지, 딱 제대로 확인하고 탔어야 한 건데. 앞에 숫자 9 뒤에 숫자 5 하니, 대충 비슷하게 여기고 올라탄 경우다. 누구나 그냥 지나치고서 낭패 보는 일 들, 조금 만 더 “끝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남 이야기 할 게 뭐 있나? 자신이나 잘 하시라고’ 속에 있는 내가 겉에 있는 내게 면박을 준다. 오늘 아침에도 어이없는 해프닝을 겪지 않았던가. 버스 노선 955번. 베이뷰에서 글렌필드 몰로 해서 시티 브리토마트로 가는 출근 버스. 7시에 시티에 손님을 내려놓고 빈 버스로 다시 노스쇼어로 올라와 시티 가는 출근 손님을 태워 다시 시티로 가는 Duty (근무 운행표 Roster). 베이뷰로 올라와 손님을 태워 나오려는데, 같은 회사 버스 한대가 바짝 다가온다. 자기는 8시 10분 출발하는데, 날더러 몇 시에 출발 하냔다. 똑같이 8시 10분 출발이라고 하니 잘못 된 거란다. RT(Radio Telecom)로 회사 콘트롤 타워에 연락해 물어본다. 955번 버스 노선은 같은데, 동료버스는 베이뷰에서 손님 태워 오는 Duty. 나는 글렌필드 몰에서 시작하는 Duty. 내가 Roster를 잘못 본 것이다. 그저 955. 8시 10분 출발만 보고 원래대로 하려 했던 것.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는 가끔 노선 시작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끝까지” 확인하는 주의력이 없어 생긴 해프닝. 건성으로 봤다간 비일비재하다. 베테랑 버스 운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덤벙대지 말라고, 한대 충고를 받은 경우다. Nice & Smooth!
“Don’t Head Up!”
뉴질랜드, 이민초기에 골프장에서 거의 살던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이다. 코치가 그렇게 주의를 줘도 스윙하자 마자 머리를 드는 바람에 골프 공은 빗나갈 수 밖에.… “머리 들지 마세요.” “끝까지” 시원스레 쭉 스윙 하고 나서 머리 들라고. 어디 초짜들에게 그게 잘 먹히는가. 입과 머리로는 싱글을 넘는 타수인데, 실제 쳤다하면 몸 따로 마음 따로다. 머리에서 빙빙 돌아도 몸이 안 따라가서 겪는 안타까움과 허둥댐이라니. “끝까지” 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택시 운전을 할 때도 어이없이 저지른 해프닝에 황당한 적이 참 많다. 오클랜드 병원, 투석 환자 병동에서 손님을 픽업해 집에다 데려다 주는 특수 Job. 택시 모뎀(소형 컴퓨터)에 보니 손님1, 2. A 병동 픽업. 서둘러 두 환자 손님을 태우고 오타후후쪽으로 해서 모터웨이를 달리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B 병동 손님 3를 왜 안태우고 갔냔다. 뜨악~ 모터웨이라 다시 돌아가 태워올 수도 없었다. 그저 미안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하고 달렸다. 손님 1, 2를 목적지 집에 각자 내려놓고 택시 모뎀을 “끝까지” 살펴보니, 손님 3, B병동 픽업이라는 메시지가 추가로 있었다. 그동안 해 온던 대로 손님 1, 2면 끝이려니 생각하고 만 것. “끝까지” 안 본 것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 “끝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당황했던 해프닝이었다.
지난 토요일, 귀한 손님 부부를 집에서 맞았다. 이민 초기부터 잘 지내오던 분이 오클랜드 외곽에 이사를 해서 살다가 오클랜드에 왔다가 우리 집에 들른 것. 반가웠다. 그간 쌓인 정담을 소박한 저녁상을 함께하며 나눴다. 부모님, 자식들, 노후 이야기, 건강이야기 등등… 같은 나이대라 공감대가 깊었다. 헤어지는 부부에게 아내가 정성 들여 키운 바이올렛 화분 하나를 건넸다. 문 밖을 나서 차로 떠나는 부부. 둘이서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차가 라운드 어바웃을 지나 멀어져 안보일 때까지, 우리부부는 현관에 “끝까지” 서 있었다. 밤 향기, 자스민 향기가 함께 했다. 보름 달도 밝게 웃고 있었다. *
*백동흠 수필가:
2017년 19회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에세이문학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