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곤 회장, '세언협의 재도약을 위한 힐링 대회로..'

교민뉴스


 

김명곤 회장, '세언협의 재도약을 위한 힐링 대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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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곤 세언협 제3대 회장  


지난 6월 29일, 세언협 제3대 회장으로 당선된  김명곤 회장(미국 플로리다 코리아위클리 대표)은 요즘 최고의 강행군을 하고 있다. 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가을 심포지엄이 이제 10여일 밖에 남지 않은 터라 성공적인 대회 준비를 위해, 서울 사무처와 긴밀히 연락을 취해가며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 회장 당선과 함께, 3개월여 만에 가을대회를 치른다는 것이 당초 무리였다. 준비 기간도 짧은데다, 협회가 장기간 활동을 하지 않아 재정도 바닥난 상태. 기대했던 기관의 지원도 끊기고 후원처를 찾기도 쉽지 않아, 과연 이번 대회를 제대로 치룰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불도우저 같은 뚝심과 추진력만큼은 그를 당할 자가 없을 정도다. 어려움 속에서도 심포지엄 주제와 강연자, 초청자, 후원자들을 확보해 나갔고, 3박 4일간의 지방투어 일정도 확정지었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 팬데믹의 오랜 어려움을 극복하고, 3년 여만에 다시 만나는 회원들과 힐링의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가을대회 마무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명곤 회장을 만나 본다.


 - 늦었지만, 세언협 회장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회원들께 인사 한 말씀...


 지난 2년 반 가까이 얼마나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심하셨습니까?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는 코로나 팬데믹을 잘 통과하고 반갑게 광화문에서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저는 여전히 언론 농사 짓는데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저는 1974년 이후로 저널리즘을 노래하며 살아왔습니다. 80년대 후반 미국땅에 와서 다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뒤늦게 역사에 철이 들어 뜻을 두고 미국 땅에 주저 앉았습니다. 

저는 ‘섭리’를 믿는 사람으로 늘 실존적 질문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왜 여기 미국땅에 와 있나’, ‘내가 왜 신문일을 하고있나’, 심지어는 하고 많은 나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한국땅에,  그것도 20세기에 태어났나’ 하는 따위의 질문을 하며 살았습니다.  진실찾기에 나름 몸부림을 해 온 것입니다.


 - 회장 당선 이후 첫 대회로 치르게 되는데, 이번 가을대회에 임하는 자세나 각오는?


 회원들 모두가 2년 반 동안 영어 아닌 영어 생활을 하고 살았습니다. 만나지 못하면 몸도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시다시피  1년에 한 두 차례, 어떤 분은 2, 3년에 한 번 만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연대와 결속력이 약해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가 재외언론인 단체입니다. 바둑 용어에 ‘아생연후에 살타’란 말이 있는데요, ‘아’가 먼저 살고 나서 야 ‘타’를 잡을 수 있겠죠? 

이번 대회가 개인도, 협회도 재충전하고 힐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는대로 세언협을 둘러싼 환경이 썩 좋지 않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이러다가 세언협 쑥대밭 되는 거 아니야’ 하셨는데요. 글쎄요, 쑥을 잘 키워서 수출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하하).  남북통일보다 더 어려워 보이던 통합도 이뤄냈고, 이제껏 잘 헤쳐 나왔잖나요? 


- 이번 대회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힐링입니다. 뭐 병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힐링도 필요 없겠죠. 

‘재외동포언론, 팬데믹 언론에 길을 묻다’란 주제도 이번 대회를 이끄는 중요한 축입니다.   밥상에 질 좋은 먹거리를 차리려고 나름 고심했습니다.  2시간 반의 심포지엄이지만, 모두에게  자극요인이 되어  많이 배우고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추후 ‘ 열공’을 위한  심호흡이라고나 할까요? 

     

-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7월 초 임기 시작 3개월 만에 행사를 치른다는 것이 당초 무리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행사와 행사 사이에 5개월의 짬이 있었습니다. 준비 기간이 짧다보니 재정 마련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인 듯합니다. 장기간 행사을 갖지 못해 쌓인 재정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협회의 재정립과 회원 단합, 결속이 시급한데 이에 대한 대안 또는 각오는?


현재 어느 재외언론단체를 보니 세를 불리기 위해 ‘앞으로 언론일 할 사람도 우리에게 와라!’ 이러던데요,  참 가슴이 쓰렸습니다. ‘재외언론의 발전’이란 큰 틀에서 정말 그래선 안 되겠죠. 우리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회원 모두가 ‘일이 되게하자’는 생각으로 협조적이고 능동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 관계든 협회 일이든 조급히 판단하고 마구 쏟아놓기만 하고  쉽게  ‘철수’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습니다. 

제가 지난 선거에서 소통회복, 재정난 타개, 정체성 확보, 공부하는 언론인,  회원 정비 등을 공약했습니다. 하나같이 단기간에, 혼자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들입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아야  할 일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해결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당장 보다는 먼 미래를 보고 함께 걸어야 겠죠.


- 국내 언론환경이 급변하고, 신뢰도가 급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인데, 재외언론인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은 


제가 공사석에서, 그리고 지난 총회 선거과정에서 언급했듯 현재 한국언론은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상과 자기인식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도 언론의 관심 밖인 지가 오래 됐습니다.  언론인이 돈이나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 타락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전에는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된 언론, 공부하지 않는 언론을 탓하며 수습 기간을 늘리느니 유학을 보내느니 했는데요, 지금 중요한 것은 ‘언론인 정신의 회복’이라고 봅니다. 재외 언론인들도 촌지를 받는다거나 무슨 자리를 탐한다든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행은 굳어지면 깨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 재외언론인으로서 이를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요? 


사회가 바로 서려면 반드시 건강해야 하는 계층이 있는데요, 바로 선생, 성직자, 언론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가  썪어들어가도  이들 계층만 바로 서면 언제든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재외언론인들 중 돈과 기사를 맞바꾸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말이 됩니까? 지금이라도 ‘내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나’하고 되돌아 봐야 합니다. 어떤 영화 대사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러던데요, 기자는 돈 받으면 가오가 팍 떨어집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백-투-베이직! 


- 재외언론 발전을 위해 협회가 힘을 쏟아야할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힘을 키워야 합니다.(^^)  힘을 어떻게 키우느냐. 공부 열심히 하는 길 밖 없습니다. 본국 언론사들이 1, 2년씩 기자 연수를 해도 잘 해낼까 말까인데요.  재외언론인이 전혀 기초도 쌓지 않고 재충전도 하지 않고, 5년도 가고 10년, 20년이 가면… 나중에는 뭐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떻게 잘 못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는 돈을 모으거나 사업을 도모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글로 말해야 하는 단체입니다. 요즘 성경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목사 하는 사람도 있다는 데요, 언론학 개론 한권도 읽지 않고 기자 하겠다면 안 되겠죠? 협회의 심포지엄 등을 통해서도 꾸준히 질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 국가나 관련 기관에 요청사항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재외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해온 일, 하는 일, 하려고 하는 일이 많은데 너무나 자원이 부족합니다. 본국 정부가 한글학교나 해외 문화단체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똑 같은 국가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재외언론은 왜 외면합니까? 조만간  750만 재외동포를 위한 동포청이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요, 재외언론진흥청 설립도 시급합니다.


- 재외 언론인으로서 가장 좋았거나 아쉬운 부분은?


재외언론인은  본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입장이기에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재외언론인에게 큰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외신기사를 다룰 때 종종 재외언론인이 느끼는 유쾌함이 남다를 때가 있습니다. 

본국의 언론들이 본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맞는, 심지어는 특정 정권, 특정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외신을 주로 전하는데 비해, 재외언론은 살고 있는 문화권의 시각에서, 더 나아가 우주적 관점에서 기사를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외언론은 밥도 먹고 인쇄비, 인건비 등도 직접 조달해야만 합니다. 역사적으로 언론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재외언론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기사도 제대로 써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의 유혹에 빠져 들 수밖에 없습니다. 


- 본인의 좌우명이나 삶의 지표가 있다면...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는 성경말씀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이를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고 문익환 목사님이 “큰 뜻이 아니라 큰 마음이 통일에 이바지 할 수 있다. 뜻은 큰 만큼 큰 분쟁을 일으키나, 큰 마음은 모든 다른 것을 안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은 슬픈 만큼 크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슬프게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빳빳한 글도 슬픈 마음으로 쓰면, 읽는 사람도 느끼게 됩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이나 성급히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태도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 안타까워 하는 마음, 역지사지 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은퇴 후, 노후에 추구하는 삶은?


 개미 쳇바퀴 돌 듯 일주일 단위로 살다보니 읽고 싶은 책들 못 읽고, 쓰고 싶은 글들 쓰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3, 4년 후 쯤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려고 합니다. 언론인은 죽을 때까지 언론인입니다. 소외되고 제외된 땅에 들어가서 어린 시절부터 듣고 배웠던 동화나 율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서 살고 싶은데요, 이게 언제나 가능할지. 


【한국(서울)=세언협공동취재단】 이석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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