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38 ; 여성 비행사 - 진 배튼 (Jean Batten)

교민뉴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38 ; 여성 비행사 - 진 배튼 (Jean Batten)

일요시사 0 801 0 0

<1909년 9월 15일~???>




'땅에서 하늘로' 꿈 이룬 '창공의 딸'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진 배튼이 하늘을 날아간 때가 

80여 해 전이라는 사실이다…비가 내리면 무한정 비를 맞아야 했고, 

뜨거운 태양 빛을 고스란히 쬘 수밖에 없었고, 

살을 에는 추위도 이겨내야만 했다. 

커피와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지도 하나만 믿고 

길고 긴 항로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악조건 속에 있었다.



뉴질랜드는 여성들의 기가 센 나라 가운데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었으며, 제니 시플리(Jenny Shipley, 1952년~), 헬렌 클라크(Helen Clark, 1950~) 같은 역대 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직과 전문직의 사회 지도층 여성 비율이 다른 나라에 견줘 높은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질랜드를 ‘여성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90여 해 전, 창공을 치솟아 세계를 품에 안은 진 배튼이라는 여성을 생각해 본다. 진 배튼은 뉴질랜드 역사, 아니 세계 비행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많은 키위가 진 배튼을 ‘창공의 딸’(The Daughter of the Skies) 또는 ‘하늘의 가르보’(Garbo of the Skies)라고 부른다. <그레타 가르보는 스웨덴 출신 영화배우로 1920~30년대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은막에서 물러난 뒤 전설 같은 은둔 생활로도 유명하다.> 



어머니 반대 무릅쓰고 조종학교 들어가


 진 배튼은 1909년 9월 15일 로토루아에서 치과 의사 아버지와 전직 영화배우 어머니 사이에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수영과 테니스, 네트볼(Netball, 농구와 비슷한 스포츠로 영연방 여성이 주로 함) 같은 스포츠를 즐기고, 커서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평범한 여자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한 마리 새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1928년 꽃다운 나이 열아홉 살 때 진 배튼에게 때가 왔다. 몇몇 사람만이 할 수 있던 비행기 여행이었다. 비록 호주까지 짧은 항로였지만 그에게는 삶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경험이었다. 호주를 거쳐 영국에 도착한 그는 어머니 반대를 무릅쓰고 비행기 조종훈련학교에 들어갔고 2년 뒤 민간용과 상업용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1933년 4월 첫 단독 비행 기회가 찾아왔다. 배튼은 영국-호주 하늘을 가로질러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기 센 뉴질랜드 여성의 도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거센 모래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인도 사막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진 배튼이 아끼던 비행기는 더는 쓸 수 없었다.

 


두 차례 실패 끝 목적지 시드니에 도착


 재도전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진 배튼이 보여준 아름다움과 담력에 푹 빠진 한 정유회사 사장이 비행기와 경비를 대주겠다고 나섰다. 안타깝게 2차 도전도 실패했다. 로마 상공에서 비행기가 연료 부족으로 중심을 잃고 불시착하면서 배튼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아무 가치 없는 비행을 그만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배튼이 마음속에 품은 의지는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두 차례 뼈아픈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단 이틀 만에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이번에는 조종간을 잡은 지 열세 시간 만에 로마에 도착했다. 그다음 바그다드(이라크), 콜카타(인도), 양곤(미얀마),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정글, 다윈(호주)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시드니에 바퀴를 내렸다. 14일 22시간 30분 만에 이룬 기록이었다. 

첫 단독 비행 성공을 축하하는 키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남자보다 당차며 가르보 못지않은 외모도 인기몰이에 한몫 했다. 뉴질랜드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꺾이지 않는 의지에 자연도 항복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진 배튼이 하늘을 난 때가 90여 해 전이라는 사실이다. 그때 작은 민간용 비행기에는 무전기도 없었고 조종석도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무한정 비를 맞아야 했고, 뜨거운 태양 빛을 고스란히 쬘 수밖에 없었고, 살을 에는 추위도 이겨내야만 했다. 커피와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면서 지도 하나만 믿고 길고 긴 항로를 이어나가야만 하는 악조건 속에 있었다. 

게다가 시속 120km에 불과한 속도에 몸을 싣고 있었으니 그가 이겨낸 고통의 무게가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강풍을 만나 비행기가 휘청거릴 때 몸과 마음도 같이 흔들렸고, 몇 미터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폭우로 비행을 그만둬야 하는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배튼 앞에서는 자연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두 차례 실패 뒤 얻은 값진 성공은 배튼이 고된 단독비행을 계속 이어가게하는 힘이 됐다. 영국과 브라질을 잇는 비행(여성 최초)은 물론 영국과 뉴질랜드 비행도 가뿐히 해냈다.  그에게 이제 실패는 없었다. 특히 그가 뉴질랜드까지 이룬 비행 기록은 40년 동안 깨지지 않아 세계 비행 역사의 한 쪽을 장식했다.

진 배튼이 오클랜드 맹게레(Mangere) 공항에 도착한 날(1936년 10월 16일), 목이 빠지게 기다려온 수많은 키위가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얀 헬멧을 쓰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나타난 그는 밝게 웃었다. 1차 세계대전 여파로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공황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던 키위들은 배튼의 보석 같은 쾌거로 삶에 활력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때 간호사로 근무


 진 배튼의 비행 역사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 즈음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배튼은 영국군 간호사로, 구급차 기사로, 폭탄 실어 나르는 조종사로, 총알 제조공으로 세월을 보냈다. 잠깐 뉴질랜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역사 뒤로 스스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죽음 소식이 들렸다. 스페인 마조카(Majorca)라는 섬에서 개에 물려 염증으로 고생하다 죽은 사실이 뒤늦게(1987년) 밝혀졌다. 이미 5년이 지난 일이었다. 유명한 비행사였다는 것을 몰랐던 동네 사람들이 그를 화장한 뒤 시(市)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진 배튼은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젊은 키위 남성들 가슴을 설레게 했다. 또 여성 비행사라는 이유로 숱한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약혼자 피살과 어머니 죽음으로 삶에 의욕을 잃고 철저한 은둔 생활을 했다.

 

한 시대의 영웅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렇지만 진 배튼이 평생 꿈꿔온 저 높고 먼 곳을 향한 자유의 날갯짓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글_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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