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2) 예수님은 나에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2) 예수님은 나에게 <요한복음 21:15~22>

할렐루야!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은 나에게”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가르켜서 말씀하시는, 이른바 예수님의 신적자기계시의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와 같은 말씀입니다. 헬라어로 하면 “에고 에이미”, 영어로 하면 “I am” 우리말로 다시 풀어보면 “나는 ~~이다.”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신적자기계시가 일곱 번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쭉 따라가면 하나의 단어로 모아집니다. “생명”  

  

보십시오. 생명의 떡 – 떡을 먹어야 사는 겁니다. 세상의 빛 – 빛은 생명을 뜻하죠. 양의 문 – 스스로 문이 되셔서 생명을 지키십니다. 선한 목자 –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부활이요 생명, 길이요 진리요 생명 – 이 두 가지는 설명이 필요 없이 생명을 뜻하죠. 마지막 참 포도나무 – 가지에 붙어 있어야 사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신적 자기 계시는 생명과 연관이 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그 이름처럼 생명의 역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생명의 역사를 위해 이 땅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생명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과연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은 나에게”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본문에 담겨진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제가 앞서 설명드린 본문 앞부분의 모든 배경, 즉 요한복음 21장 1절에서 14절까지를 보면, 이 한마디 말로 정리됩니다. “찾아오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인가요? 찾아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고 하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갑니다. 내 병을 고쳐줄 용한 의원이 있다고 하면 국내든 해외든 찾아갑니다. 내 아이의 꿈을 위해, 사업의 지경을 넓혀가기 위해, 더 행복한 삶을 찾아 어디로건 갑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이렇게 먼 곳 뉴질랜드까지 와 계신 거잖아요.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항상 이렇게 찾아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절망의 바닷가에서, 스승도 잃어버리고, 삶의 터전도 잃어버리고, 3년간의 공백기 때문에 이제 물고기 잡는 법도 잃어버렸나, 한 마리 잡지도 못한 빈 그물 붙잡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찾아오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봐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러면서 또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배고프지? 밥 먹자.” 밤새도록 아무 것도 잡지 못해 마음적으로, 육신적으로 피곤에 지치고, 배고픔에 주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손수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구우시고, 떡을 구워 놓고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밥 먹자.” 

  

요한복음 시작하면서도 말씀하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성육신의 은혜.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던 그 때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 자체가 찾아오심의 은혜입니다. 죄악 중에 있는 우리 모든 인간들을 위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찾아오신 예수님. 지금 실망과 낙심으로 절망의 바닷가에 주저앉은 제자들을 향해 찾아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나에게도 찾아오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물고기가 있느냐?” “이리 와서 조반을 먹으라.” 우리 삶의 수많은 결핍의 자리 속에 찾아오시고, 감싸 주시고, 채워주시는 그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오십니다. 이미 찾아오셔서 나를 붙잡아 주셨고, 언제라도 우리가 또 다른 절망의 바닷가에 있을 때에 나를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나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나에게 회복을 주십니다. 


찾아오신 예수님! 오늘의 주인공은 베드로입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세 번에 걸쳐서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과 대답에 담긴 의미들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은 예수님을 향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는데, 다른 제자들이 품고 있는 그 사랑의 마음보다 시몬 네가 품고 있는 그 사랑의 크기가 더 크냐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하십니까? 이 질문의 실마리가 마가복음 14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는 말씀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이 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요? “저 사람들이 가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크기보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사랑의 크기를 확인시켜드렸나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시몬에게 그걸 물으시는 겁니다. “네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너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겼던’, 그 교만함을 아직도 품고 있느냐?” 베드로의 아픈 마음을 찌르신 거예요. 그러자 시몬은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니이다.” 그저 막연하게 대답하는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더 반복해서 하시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몬은 근심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께서 아시니이다.” 여기서 비로소 베드로의 장담이 사라집니다. 남보다 내가 훨씬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자만심이 사라집니다. 그저 주님께 맡겨드리는 거죠. 이제는 자신있게 고백도 못하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사랑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만난 그 때 그 모습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 번의 질문과 대답을 거듭하면서 베드로는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했던 그 때, 그 순수함의 자리로 다시 돌아갑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그 모습을 회복시키십니다.

  

더불어 또 하나의 의미가 있죠. 예수님은 세 번이나 베드로를 향해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면서 베드로의 무너진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렇게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신의 연약함.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뛰쳐나가 눈물 흘리며 통곡했던 그 용서할 수 없는 치욕의 순간.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음성을 들을 때에, 그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동여맸던 그 모든 돌이킬 수 없었던 무거운 짐들이 씻겨 내려갑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이제 예수님께 변명할 기회도 없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렇게 끝이 났다면, 아마 베드로는 일평생 그 죄책감의 짐을 짊어지고 가야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부인 이후에 세 번의 질문과 대답으로 그 아픈 마음에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도 이러한 회복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삶에 영적으로나 삶적으로나 힘든 것이 있습니다. 답답한 것이 있습니다. 막혀진 것이 있습니다. 죄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에게 회복의 은혜를 내리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복시켜주시는 그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나에게 맡기십니다. 


찾아오시고, 회복시키신 예수님은 나에게 맡기십니다. 오늘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은 세 번의 질문과 더불어서 세 번의 명령을 주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양떼를 먹일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 양을 먹이라”입니다. “너의 양”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양을 치는 사명이 맡겨졌지만, 그 양은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신 겁니다. “너는 청지기다.” “너는 네 양을 먹이는 게 아니라, 모든 양들은 다 내 양이다. 너는 잘 먹이기만 하면 된다.” 

  

18절에 보십시오. 베드로의 앞으로의 삶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젊을 때는 네 마음대로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남이 끌고 가는대로 끌려가야 할 것이다.” 그럼 앞으로의 베드로의 인생이 불행한 건가요? 남에게 끌려가는 인생이라 불행할까요? 남도 남 나름입니다. 그 남이 하나님의 손이면 축복입니다. 그 남이 하나님의 뜻이면 귀한 삶이 됩니다. 베드로는 오늘 말씀대로, 이후에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던 베드로는 궁금해지죠. “예수님 저 요한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22절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제자들은 오해합니다. “아! 예수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베드로는 순교를 당하고, 요한은 안 죽나보다.” 그런데 23절에도 설명해 놓았듯이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요한이 살든지 죽든지,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간에, 그거 신경쓰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한 마디로 “다른 사람 바라보지 말고 그냥 너는 나만 따르면 된다.” 이거죠.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맡기십니다. 그게 성가대든, 교사든, 선교회든, 안내위원이든 나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내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면 됩니다. 내게 맡기신 일에 헌신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맡기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나에게 맡겨진 것에 충성하는 겁니다. 여기 맡겨진 것은 꼭 교회에서의 직임만이 아닙니다. 내 가정에서의 나의 역할이 있고, 사업장과 직장에서의 내 직임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내게 맡겨진 것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충성해야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요?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교만함이 아닌 겸손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비방의 말, 부정적인 말은 버리고, 감사의 고백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근심이 아닌,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본이 되는 선한 모습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셨기에, 예수님의 것을 나에게 맡기셨기에,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물으셨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이후에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나를 찾아오시고, 나를 회복시켜주시고, 나에게 귀한 사명을 맡겨주신 예수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님들 각자의 삶 속에 체험되어지고, 고백되어져야 할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나의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증거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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