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7);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37);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룻기 4:13~17>

우리는 지금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의 시간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학교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또 우리 성도님들, 한국에 꼭 가야 할 일이 있어도 오갈수가 없습니다. 이 외에도 코로나 인해서 늘 불안과 긴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환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을 붙잡아 주시고,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인 룻기의 말씀 전체의 주제가 바로 이겁니다.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 더불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백성들. 다 환란의 때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저들의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어떻게 저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는가? 룻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환란과 고생이었는데, 어떻게 룻기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는가? 오늘 주인공인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모습을 통해, 저들이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축복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축복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간에 복을 빌어주는 것을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 자매된 모든 성도님들은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축복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룻기 1장에 보면, 나오미가 남편과 함께 흉년을 피해서 모압 지역으로 이주를 합니다. 그런데 모압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믿었던 남편은 모압 땅에서 먼저 죽었습니다. 게다가 의지했던 두 아들도 차례로 다 죽어버렸습니다. 나오미에게는 모압 여인인 두 며느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나오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원망과 저주 뿐이죠. 남편도 떠나고, 두 아들도 떠났습니다. 고향 땅도 아닌 이방 땅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막막하고, 그야말로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진 것과 같은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 1장 8절과 9절입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지금 누구의 고통이 가장 클까요? 두 며느리는 각각 자기 남편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남편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두 며느리를 위로하면서 저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나오미에게 축복하는 삶의 자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한 명의 며느리인 오르바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다른 한 명의 며느리인 룻은 나오미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고향 땅에 돌아와서 우연히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데, 룻기 2장에서 보아스 또한 룻을 향하여 정설껏 복을 빌어줍니다. 보아스에게도 역시 축복하는 삶의 자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도 그렇고, 보아스도 그렇고, 둘 다 자신보다 아랫사람들을 향해서도 정성껏 복을 빌어줍니다. 그런데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보아스와 룻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게 되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오미를 향해서, 또한 룻을 향해서, 그리고 보아스를 향해서, 나아가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향해서까지 한 목소리로 축복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17절에 말씀하는대로 오벳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통해 이새가 나오고, 그 다음 대에 다윗이 나옵니다. 정말 유명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나오미와 룻이 큰 환란을 당하였으나, 그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향해 복을 빌어줄 때에, 축복하는 삶의 자세 속에, 그 복이 자신에게도 임합니다. 남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복이 그 사람에게 임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의 열매를 나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따스한 말로 아름다운 축복의 씨앗을 심고, 다함께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을 베푸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면서, 가장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룻기의 중심 주제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이라는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두 여인을 향한 사랑이 룻기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또한 보아스라는, 당시 유력한 자로서 명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참된 사랑을 만나지 못한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해 다윗이라는 귀한 지도자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심이 예비되어지는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던, 쉬운 말로 무법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룻기의 첫출발이 환란이요 역경입니다. 하지만 룻기 4장, 그 짧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점점 더 극심한 환란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던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이라는 한 가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나요? 나오미가, 룻이, 또한 보아스가 사랑을 베푸는 삶의 자세를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오미의 사랑을 보십시오. 나오미는 어려움 중에서도 두 며느리를 향해 축복하면서, 며느리의 앞길을 배려하여 저들을 보내줍니다. 서로 헤어질 때에 울면서 입을 맞춥니다. 그럼 며느리 룻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시어머니를 붙잡고 죽기까지 함께 하겠다 말합니다. 보아스는 어떤가요?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만난 이방 여인 룻을 향해 자비의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성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성품이 곧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전해지게 만드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사랑 받은 우리들, 세상 속에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베푸는 삶의 자세, 그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 누리고 또한 전하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룻기의 처음에 나오는 나오미의 가정에 임한 비극의 역사는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흉년이라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나오미의 가정은 더 어려운 길을 택하게 됩니다. 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나 이방 땅으로 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나안을 떠나 이방 땅으로 향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 땅을 떠나서 뉴질랜드로 온 것,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오미의 일가족이 가나안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모습”이었습니다. 단순히 가나안을 떠난 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 중에, 고난 중에, 환란 중에,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의 힘대로, 계획대로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습니까? 오히려 더 큰 환란을 만나게 됩니다. 이에 나오미는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됩니다. 룻기 1장 6절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하나님의 돌보심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모압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모압에서 가나안으로의 여정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이었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삶에 기쁨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하고, 룻은 아들을 낳습니다. 매 순간,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삶의 자세가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 예비하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삶의 자세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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