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45) 격(格)이 다른 삶 (5) 기도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45) 격(格)이 다른 삶 (5) 기도 <마태복음 6:5~13>

우리가 지난 4주에 걸쳐서 [격이 다른 삶]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산상수훈의 말씀, 천국백성의 삶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면서, 앞서 몇 가지 주제를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중요한 건 내 안에 잘 새기고, 또한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오늘의 주제인 “기도”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산상수훈 중에 기도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주기도문이 포함됩니다. 본문에 담겨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기도란 무엇인가?”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이를 통해 [격이 다른 삶]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 시작과 끝과 또한 모든 과정까지, 천국백성의 모든 삶을 다 지켜가는 영적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기도를 주제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기도는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실 때에 가장 먼저 은밀함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저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시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골방에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마음껏 주의 전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골방에서 하는 기도, 한계가 있습니다. 괜히 이리 저리 신경쓰이는 것도 많고, 집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는가? 여기서 골방은 정말 집에서 골방을 뜻한다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의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보니까, 주변 사람들의 말이 들립니다. “야! 저 사람은 정말 경건한 사람이구나.” 그러다보니, 이제 일부러 늦게 나가서, 회당이 아니라, 길에서, 시장에서, 사람 많은 곳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기보다 사람들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죠.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입니다. 기도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삶 속에, 주를 바라보며 사명 감당하는 삶 속에, 주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기도하면, 내가 소원하는 것, 뭔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대로 응답받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도응답을 “내 뜻대로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항상 낙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에 하나님을 맞추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십시오. 7절에 “기도할 때 중언 부언하면서 일부러 말을 많이 할 것 없다.”고 말씀합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9절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제일 첫 번째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방향성이 여기서 나옵니다.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자세입니다. 기도할 때에 먼저 방향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 바라는 것,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그 이후의 모든 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바른 자세는 “기도함으로 일단 주님께 맡겨드렸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나의 모든 삶을 다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 내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도록,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기도의 제목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기도는 내 삶의 모든 길을 열어줍니다. 


기도의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E.M 바운즈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감리교회 목사님인데, 언제나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한 다음에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설교를 할 때에도, 어떤 일을 처리할 때에도, 책을 쓸 때에도, 언제나 충분히 기도한 후에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기도에 대한 책을 많이 썼는데, 이 분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계획하신 축복을 실어 나르는 도구이다.” 하나님께는 모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받아오기 위해, 내 삶에 이루기 위해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담긴 주기도문의 내용도 보면, 그 안에 우리의 모든 삶이 다 담겨집니다. 앞서 보신 9절과 10절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뜻을 위한 기도”가 우리 믿는 자의 궁극적인 삶의 방향성에 대한 자세와 기도의 내용이라고 한다면, 이어지는 11절부터 보면, 실제적인 삶의 모습이 담겨집니다. 이미 말씀드린, 영과 마음과 육의 세 부분입니다. 먼저 11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육적인 삶의 필요를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세상적인 것은 다 버리고, 하늘의 신령한 것만 추구하라고 말씀지 않으십니다. 내 삶의 필요한 것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심을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12절에 보면 육의 필요에 이어서 마음에 관련된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여기 보면 두 가지가 언급되죠. 하나는 용서이고, 하나는 죄사함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죄 사함을 위해, 용서가 전제됩니다. 용서는 마음의 영역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했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어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불편합니다. 용서를 받든, 용서를 하든, 어쨋거나 해결이 되어야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죠. 내가 주님 앞에 죄를 짓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13절에는 이제 영적인 부분을 다룹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시험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악을 다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왜요? 이 세상에는 끊임없는 시험과 악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떠한 시험과 유혹과 도전이 있을지라도,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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