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 안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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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 안은채

일요시사 0 735 0 0

독서를 좋아하시는 부모님께서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시간이 선물하는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직접 보여주셨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어린 시절의 독서의 도움으로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양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기 전 아빠가 읽어주는 책으로 자장가 삼아 잠들었는데 지금은 길었던 하루의 끝을 혼자만의 시간과 평온함을 위해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며 독서로 마무리한다. 하루의 모든 피로를 씻겨주는 독서의 여유를 모두가 발견하길 바라며 긴 하루 끝에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지길 바란다. 온갖 만물이 새 삶을 시작하려는 희망찬 새 봄, 초목들이 그 푸르름을 더해 가는 여름, 황금 들녘에 풍요로움이 날로 더해 가는 가을과 한해를 정리하는 겨울에도 늘 곁에 책이 함께해 지혜가 더해지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들을 소개해본다. 



다소 난해해 보이는 제목이다 – “앵무새 죽이기”. 난해한 제목과 아울러진 어두운 표지를 보고 책에 대한 매력이 와 닿진 않았지만 중고등학생 필독서의 타이틀과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아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빠르게 다 읽어버린 그 순간에는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다. 시작부터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도록 “앵무새 죽이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미국 남주 앨라배마주 작은 시골 마음 메이콤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스카웃이라는 한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야기 속에서는 스카웃이 여섯 살에서 아홉살이었을 때, 3년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흑인 인권 차별, 계층 문제, 일자리 문제, 교육 문제 등 그 시대의 다양한 미국의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또한, 우리가 만연하게 가지고 있는 타인을 향한 편견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는 인종차별과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 발생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시기였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가 극심했다. 남부지역은 면화 생산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고 땅을 가진 가문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패전 이후 노예제를 폐지하게 되면서 땅을 일굴 흑인 노예들이 사라지고 재산이 분산되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전략했다. 미국 남부 지역 가운데, 앨라배마주는 흑인 민권 운동의 온상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처음 이름을 떨쳤고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으며 스코츠보로 사건도 여기서 일어났다. 이러한 배경을 소개한 이유는,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남부 앨라배마주를 생각하지 않으면 “앵무새 죽이기”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의 인물들, 메이콤에서 모디 아줌마, 핀치 변호사, 헥 타이드 보안관 등등 몇 사람을 제외하고 마을 사람들이 아주 부당하게 흑인을 차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멸시하는 모습을 예로 들 수 있다. 더 많은 차별들은 소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는 성장 소설이다. 많은 소설 속에서도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화자가 소년이 아니라 소녀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나이 어린 영성을 화자와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스카웃이 여섯 살에서 아홉 살이었을때, 3년 동안의 사건을 다루고 또한 그녀가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 커버린 스카웃이 지난 날, 어릴 적을 회상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어른들의 세상의 불합리한 점과 모순점을 좀 더 원초적이고 순수한 시각으로 묘사해낼 수 있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화자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품의 초반부에서는 주로 여름이 중요한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작의 후반부로 갈수록 가을이 중심적인 시간 배경이 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러한 시간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녹여낸 것일까? 여름이라는 계절을 생각해봤을 때, 아직 결실을 거두기 전이고 잎사귀가 무르익어가는 단계이다. 하지만 가을은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이를 먹어가는 스카웃은 여름의 어리숙함을 벗고 가을이 옴과 더불어 비로소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작품의 소재를 알고 난 뒤 읽으면 더욱더 깊게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소재는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번째는 앵무새이다. 작품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 것처럼 앵무새라는 소재는 작품에서 드러난 주제와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소설의 전개 부분에서 애티커스 변호사와 모디 아줌마가 앵무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어치새는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아무것도 하는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거야.”

앵무새는 아무도 해치지 않으므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앵무새는 무고한 차별과 희생을 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그 이유는 앵무새를 죽이면 안된다고 언급이 나온 이후, 소설의 절정 부분과 결말 부분에서 각각 앵무새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절정 부분에서는 흑인 톰의 재판장에서 앵무새들이 침묵을 지켰다는 표현이 나오고 결말 부분에서는 부 래들리를 의미하는 듯한 외로운 앵무새 한 마리가 나온다. 두 번째 소재는, 떡갈나무의 속의 선물이다. 이 선물은 소설에서 굉장히 미스테리틱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에 대한 부 래들리의 관심이다. 떡갈나무 속에 선물을 받았을 당시에 아이들 – 젬과 스카웃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매번 떡갈나무 속에 부 래들리의 선물에 대하여 진정한 감사를 느끼며, 부 래들리도 멀리서 항상 자신을 보살펴준 자신의 이웃임을 깨닫게 된다. 


작품의 주제도 안 살펴볼 수가 없다. “앵무새 죽이기”의 첫 번째 주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다. 예를 들면, 작품 초반부의 스카웃은 백인이지만, 어려운 형편의 집안이었던 윌터 커닝햄을 가리켜서 “저 애는 커닝햄 집안이기 때문에 어차피 돈을 못 갚아요.”라고 말한다. 작품 내에서 그 시대 사회적 약자인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이 많이 등장한다. 두번째 주제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이다. 성장하기 전, 여섯살의 스카웃은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홉살의 스카웃은 비로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고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진다. 소설의 결말에서 스카웃은 부 래들리의 현관 앞에서 마을을 쭉 바라본다. 부 래들리의 관점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마을을 바라 본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아버지의 말을 이해한다. 스카웃의 성장 과정을 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앵무새 죽이기” 제목의 뜻이다. “앵무새 죽이지 마라”라는 말이 책 속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앵무새는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부 래들리나 톰 로빈슨은 앵무새와 같은 존재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편견 때문에 고통받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에 도출해낸 세 가지 주제를 종합해본다면, 사회적 약자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자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앵무새는 우리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지만, 차별과 소외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설 속 애티커스 변호사에 의하여 몇 번 언급된 앵무새를 죽이는 행위라는 것은 약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태도로 표현이 된다. 특정한 시대적 배경으로 집필된 소설이기에 현재와 조금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에 일어났던 인종차별이나 경제 대공황 문제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사회의 시선이 핵심 주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고 독자는 어느 시대에 속해 있던지 그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시선이나 차별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의 “앵무새 죽이기”는 갑질 문화라고 생각한다. 갑질이란 계약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컫는 부정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이다. 갑질 문화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이다. 뉴스에 소개 될 만큼 큰 사건부터 회사에 사소하게 일어나는 사건까지 차마 그 사례를 셀 수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이 갑질의 궁극적인 원이는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결여되었다는 뜻이다. 타인을 생각한다면 그 상대를 무시하는 일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에 갑질을 당한 사회적 약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앵무새 죽이기라고 생각한다. 외로운 앵무새 한 마리를 부 래들리로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스카웃이 부 래들리의 현관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그 앵무새의 마음을 이해한 것처럼 우리도 타인의 마음의 현관 앞에 섰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러한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졌을 때, 주변의 죽어가는 앵무새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살릴 수 있을 않을까”하고 오늘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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