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17 ; 발명가- 빌 갤러거 (Bill Gallagher)

교민뉴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17 ; 발명가- 빌 갤러거 (Bill Gallag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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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5월 17일~1990년 8월 8일>



전기 울타리 발명…세계 일류 낙농업 나라로 자리매김 


1961년 마침내 전기회사가 전기 울타리 제품을 

주 전력 공급선에서 빼 써도 좋다는 결정을 알려 왔다…

3년 동안 전기 울타리 2만 개를 만들어냈다. 

와이카토는 물론 뉴질랜드 전 지역에 이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남진이 부른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한세상 사는 건 모두의 꿈이 아닐까. 뉴질랜드같이 사방이 잔디로 덮인 농장 한가운데서 며칠간만이라도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낙농국가인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가축은 바로 양이다. 2015년 10월 현재 그 숫자는 3천만 마리에 이른다. 양들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게 된 데는 수십 해 전 한 발명가가 세상에 선보인 ‘전기 울타리’의 공이 컸다. 양들이 전기 울타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으며 자랄 수 있도록 한 사람, 그래서 뉴질랜드를 대표적인 낙농업 나라로 만든 빌 갤러거를 만나보자.



집에서 키우던 말(Joe)에서 아이디어 얻어

 

빌 갤러거 집에는 조(Joe)라는 말이 있었다. 해밀턴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농장 일을 돌보던 든든한 맏형(6형제 중)은 어느 날 조를 통해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를 찾아낸다. 

 

갤러거는 자동차(Essex)를 심심하면 뒷발로 짓뭉개 놓았던 조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못된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러다 ‘조에게 전기충격을 줘서 다시는 차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갤러거는 아이디어를 당장 실행에 옮겼다. 자동차에 전기충격기를 달아놓자 조는 차에 다가갈 수 없었다. 차에 몸이 닿기만 하면 찌릿찌릿한 느낌에 진저리를 치며 물러났다. 

 

빌 갤러거는 이 발명품을 농장을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장치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은 뉴질랜드가 선진 농업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1930~40년대만 해도 농장 경영은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수백 마리 양 떼와 소 떼를 방목하며 농장 주위에 나무 기둥을 몇십 개 박거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이 터져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가하면서 일꾼마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때 그가 들고나온 ‘전기 울타리’는 농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주는 획기적 상품이었다. 빌 갤러거에게는 대박 신호였으며, 수많은 농장 주인에게는 다시는 가축을 잃지 않게 해주는 요긴한 장치였다.



1927년 열여섯 살에 가장돼

 

1927년 갤러거가 열여섯 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그의 가족들로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에겐 가장으로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였다. 동생 헨리와 함께 농장을 직접 돌보았다.

 

갤러거는 전기 울타리를 만들어 농장에 설치했다. 이웃 주민들은 새로운 장치에 호기심을 가졌고 그는 한 달간 사용해보고 제품에 만족하면 그때 값을 치러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웃 농장 주인들은 갤러거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기 울타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한달 뒤 돈을 치렀다.

 

이 황금 같은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들기까지 한동안 어려움이 있었다. 전기회사는 주 전력 공급선에서 전기를 끌어와 전기 울타리를 가동하는 건 불법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빌 갤러거는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빌 갤러거는 웰링턴과 해밀턴에서 군대 관련 사업을 했다. 그 사이 틈틈이 농장 기계를 고치는 일에 매달렸다. 말을 위한 칸막이 숙소, 마른풀 보관소, 가축 휴게소를 만들었다. 농장 주인으로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던 발명가의 꿈을 하나둘 이뤄 나갔다.

 

전쟁이 끝나자 빌 갤러거는 다시 전기 울타리 생산에 뛰어들었다. 법 문제가 걸려 있어 전기 대신 배터리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차고에서 물건을 만들다가 사세가 커지자 좀 더 큰 공간으로 옮겼다. 동생들 도움을 받아 가족 공장으로 출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여덟을 둔 중소기업으로 자리 잡는다.

 

아들 빌(Bill), 회사 이어받아 사세 확장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고 했던가? 1961년 마침내 전기회사가 빌 갤러거에게 주 전력 공급선에서 전기를 빼 써도 좋다는 결정을 알려 왔다. 회사는 3년 동안 전기 울타리 2만 개를 만들어냈다. 와이카토(Waikato, 북섬 해밀턴을 주 도시로 함)는 물론 뉴질랜드 전 지역에 이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뉴질랜드에만 분 바람에 그쳤을지 모를 ‘전기 울타리’를 전 세계에 보급한 사람은 또 다른 빌이었다. 빌 갤러거의 아들이었는데, 그 역시 이름이 빌(Junior Bill)로 불렸다.

 

하늘이 내린 세일즈 감각이 있었던 주니어 빌은 호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아버지 빌(Senior Bill)이 씨를 뿌렸다면 아들 빌은 그 열매를 거두었다. 주니어 빌은 현재 해밀턴에 본사가 있는 갤러거 그룹 대표를 맡고 있다. 갤러거 그룹은 전 세계 100여 나라에 1천여 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으며 뉴질랜드 대표 자생 기업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직원 중심, 소비자 중심 신조 지녀

 

빌(아버지 빌)은 나이 여든이 다 돼가던 1989년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전까지 남은 생을 찬찬히 헤아리며 살았다. 우스갯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삶을 가치 있게 보냈다. 빌 갤러거가 남에게 유익을 끼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신앙심이다. 독실한 장로교인으로 술을 멀리했으며 사업을 하면서도 언제나 직원과 소비자 중심을 신조로 기업을 꾸려나갔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으며 늘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욕을 갖고 살았다. 병원용 휠체어 같은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신기하고 색다른 발명품은 그렇게 나왔다. 

 

빌 갤러거는 1990년 8월 8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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