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23; 역사학자 - 마이클 킹 (Michael King)

교민뉴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23; 역사학자 - 마이클 킹 (Michael King)

일요시사 0 121 0 0

<1945년 12월 15일~2004년 3월 30일>



‘사학계 이단아’…죽은 뒤에는 '최고 역사가'로 인정 


 인기에 별 미련을 두지 않았던 마이클 킹은 책 쓰기에 빠졌다. 

마오리 역사를 한번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빙 파케하’(Being Pakeha, 파케하 되기)였다. 

생각 밖으로 역사학계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마오리 눈으로 뉴질랜드 역사를 썼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 우물만 판 사람은 참말로 행복할까? 그 일을 마치 사명처럼 생각하며 주위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 온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물이 나올 때까지’ 자기만의 우물을 판 사람이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와이카토 타임스에서 마오리 전담 역사학자 마이클 킹. 


 그는 한평생을 외롭게 산 사람이다. 역사를 정리하는 귀중한 역할을 스스로 맡았지만 사람들은 집도 밥도 아닌 역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앞날 장밋빛 청사진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지난날 활동사진에는 눈길을 주기 싫어했다. 하지만 험하고 고독한 길을 줄기차게 걸어온 그가 있었기에 뉴질랜드는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평을 받고 있다.


 마이클 킹은 1945년 12월 15일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철저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아온 그는 오클랜드와 웰링턴에 있는 가톨릭학교에 다녔다. 어머니는 아들이 가톨릭 재단 쪽에서 일하기를 원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책 읽기와 럭비를 좋아한 마이클 킹은 웰링턴에 있는 빅토리아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와이카토대학(University of Waikato)에서 석사 코스를 밟았다. 사회생활 첫발로 와이카토 타임스(Waikato Times, 해밀턴에서 나오는 신문)에 취직해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데스크에서 그에게 내린 특명은 마오리 기사를 전담하라는 것이었다. 

 

마이클 킹은 늘 즐거운 마음으로 취재에 나섰다. 파케하가 마오리 기사를 담당하는 것이 좋은 보직은 아니었지만 그는 훌륭한 기록을 남기겠다는 목표로 취재에 최선을 다했다.

 

얼마 안 있어 마이클 킹은 가장 뛰어난 마오리 전문가라는 평을 받았다.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역사 해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1974년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연속물 ‘탕카타 훼누아’(Tangata Whenua, 마오리 말로 ‘땅의 사람들’이라는 뜻)는 그의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마오리 역사책 쓰기에 전념

 

인기에 별 미련을 두지 않았던 마이클 킹은 책 쓰기에 빠졌다. 마오리 역사를 한번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빙 파케하》(Being Pakeha, 파케하 되기)였다. 생각 밖으로 역사학계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마오리 눈으로 뉴질랜드 역사를 썼다는 것이 이유였다.

 

파케하 역사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뉴질랜드 사학계에서 ‘이단아’는 무참히 짓밟혔다. 역사를 객관으로 보지 않고 인종차별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주류 사회의 텃세 탓이었다.

 마이클 킹이 지닌 진가는 15년 뒤인 1999년에 다시 쓴(개정 증보판) 《빙 파케하 나우》(Being Pakeha Now, 지금 파케하 되기)에서 발휘됐다.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 사람은 물론 정통 역사학자들로부터도 뉴질랜드 역사를 제대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이 나올 때까지 한 우물만 판 역사가가 맛본 짜릿한 승리였다.

 

마이클 킹은 이 책을 쓰면서 마오리 지도자들이 자기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도록 격려하는 한편 묻혀 가는 마오리 역사를 복원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30여 해를 역사책 집필에 힘을 쏟아 온 마이클 킹은 전방위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마오리 역사 기술이 주를 이루긴 했지만 자기가 살던 코로만델의 역사와 채텀 섬(Chatham Islands,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700km 떨어진 곳) 역사,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그린피스 뉴질랜드 배 이름) 침몰 과정, 재닛 프레임(Janet Frame) 같은 뉴질랜드 작가 전기 등 40여 권을 단독 집필 또는 함께 세상에 내놓았다.

 

생활은 형편없었다. 뉴질랜드 역사학계에서 인정받는 작가였지만 하루 세끼 밥 먹는 일을 해결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2003년 뉴질랜드 총리가 주는 ‘올해 작가상’의 상금 6만 달러가 그가 벌어들인 가장 큰돈이었다. 또 재닛 프레임 전기 《레슬링 위드 디 에인절》(Wrestling with the Angel, 천사와의 씨름)을 쓰고 받은 돈이 생활의 괴로움을 조금 덜어주었다.



2003년 펴낸 역사책 일곱 판째 찍어


 같은 해 마이클 킹은 역사책 한 권을 더 펴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펭귄 히스토리 오브 뉴질랜드》(Penguin History of New Zealand)였다. 이 책은 일곱 판(7판)을 찍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말이 일곱째 판이지 뉴질랜드같이 작은 나라에서 그것도 역사책을 그 정도로 찍었다는 것은 큰 뉴스였다.

 

이 책으로 마이클 킹은 대중역사가가 됐다. 역사책도 많이 팔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고독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일을 묵묵히 해온 마이클 킹에게 키위들은 책 한 권씩을 자기 책꽂이에 꽂아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이클 킹은 불타는 학구열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키위들 사이에서 역사 사랑의 꽃이 필 무렵, 역사 정리라는 중요한 일을 다른 이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2004년 3월 30일 운전 부주의로 나무를 들이받아 차에 불이 나면서 두 번째 아내 마리아 정고스카(Maria Jungowska)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몇 해를 고생하면서 이겨낸 식도암 치료가 잘 끝났다는 기쁜 소식을 의사한테 듣고 집으로 가던 중 일어난 사고여서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마이클 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뉴질랜드 역사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참 뉴질랜드 사람이었다”며 “더 많은 역사가가 뉴질랜드 역사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 써 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파케하가 한 역사 왜곡 낱낱이 고발

 

말을 해야 할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 조롱과 비난을 이겨내고 꿋꿋이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파케하가 자행한 역사 왜곡을 낱낱이 고발해 다시는 치욕스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을 심어준 마이클 킹. 그는 ‘뉴질랜드 역사를 만든’ 한 사람이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 마이클 킹은 이렇게 말했다.

 “자라온 배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뉴질랜드 사람은 본래 타고난 마음씨가 착하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앞날은 밝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뉴질랜드 땅에서 60년을 힘겹게 버티고 살아낸 역사학자 마이클 킹이 한 말인 만큼 믿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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