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5) 좋은 땅, 아름다운 나무, 풍성한 열매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5) 좋은 땅, 아름다운 나무, 풍성한 열매 <고린도후서 6:1~10>

본문의 말씀도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중에, 믿음의 백성들을 향해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여기서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야말로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듣는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한 이들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미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왜 저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받은 은혜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좋은 땅이 되어서, 또한 아름다운 나무가 되어서, 풍성한 신앙의 열매, 또한 축복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필요한 믿음의 자세는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요? 가장 복된 시간은 언제일까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에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3장 13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오늘,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이사야 49장 8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이사야 49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예언입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될 것이지만,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인용된 이사야 49장 8절에 보면,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같은 날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질 포로에서 해방되는 날이요, 궁극적으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구원의 날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볼 때에 구원의 날은 아직 먼 미래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바울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는 이때는 이미 이루어진 은혜의 날,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줄 믿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은혜는 지난 날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그날, 과거의 사건으로만 끝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 속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구원의 감격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이미 받은 구원의 확신, 그리고 구원 받은 자로서의 현재의 삶, 나아가 주님 만남으로 완성될 구원의 날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 오늘이 구원의 날이구나. 오늘이 은혜의 날이구나.” 오늘 내가 주님 앞에 예배하는 것, 오늘 내가 주의 은혜의 말씀을 받는 것, 오늘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오늘 내가 구원의 길을 발견하는 것, 오늘 내가 주의 은혜를 깨달아 내 심령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젖어들 때에, 우리 심령이 좋은 땅이 됩니다. 아름다운 나무를 세워갈 터전으로 준비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이 순간 임하시는 주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감사함으로, 내 심령을, 내 모든 삶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합당한 열심을 내야 합니다. 


본문 3절부터 바울은 자신이 해온 지금까지의 사역에 대해 증언합니다. 먼저 3절 초반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는 직분은 바울의 사도권입니다.  바울은 늘 스스로 “사도 된 나 바울은”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바울은 더 힘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자신이 비방을 받으면, 자신을 보낸 예수님의 이름이 비방을 받는 거잖아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사도의 직분을 가진 자로서, 내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복음 전도자로서,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든지 걸림되는 일이 없게 하려고, 영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4절 중반에서 6절까지는 바울이 겪은 고난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어서 7절부터는 바울이 내면에 가지고 있던 영적인 자세를 설명합니다. 앞서 언급한 모든 고난을 어떻게 감내해낼 수 있었는가? 그냥 이 악물고 견디면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영적인 힘이 있어야 다가오는 모든 고난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와같이 영적인 힘과 결단을 가지고, 이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어 내면서까지 주신 사명에 힘을 다해 충성할 때에, 그는 어느 순간 초대교회에, 또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쓰임 받는, 영적인 기둥과 같은 아름다운 나무로 세워지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한 것은 3절의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하여.” 열심 다해 주의 사명 감당한 것뿐입니다. 4절의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서고자 최선을 다한 것 뿐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좋은 땅에 심겨진 아름다운 나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합당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제 더 열심을 내야 할 때입니다. 한 걸음 더 주님 앞으로 나아오고, 한 걸음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한 걸음 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 감당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신앙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아름다운 나무로 세움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초월적인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본문 8절 후반부에서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르켜서 “역설적인 축복”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역전의 축복”입니다. 오늘 저는 “초월적인 축복”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좀 더 와닿게 표현하면 “기가막힌 완벽한 축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축복을 사모하고, 또한 누리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씩 볼까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누군가는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다 속이는 자라고. 하지만 정말 참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유명하다는 것은 이름이 있다는 말이죠. 어디에 이름이 있어야 유명한겁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유명한 자가 됩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예수님께서 죽으셨나요?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들이 죽었나요? 바울 스스로도 죽음과도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담대하게 말하는 겁니다. “보라! 우리가 살아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을 넘어뜨리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연단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우리 믿는 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현실은 근심거리가 가득할지라도, 내 안에서 솟아나는 참된 영적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보다, 진짜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부요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마지막 일곱 번째의 역설,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모든 축복의 열매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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