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36; 영화배우 - 러셀 크로 (Russell Crowe)

교민뉴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50인의 위대한 키위 이야기 36; 영화배우 - 러셀 크로 (Russell Crowe)

일요시사 0 45 0 0

<1964년 4월 7일~>


삶은 거친 다이아몬드, 연기는 빛나는 보석 


러셀 크로의 명품 연기는 영화 <검투사>(The Gladiator)에서 

잘 나타났다. 제작비만 미국 돈으로 1억 달러가 들었다는 이 영화에서 

로마 장군 막시무스 역을 맡은 러셀 크로는 좌중을 사로잡는 눈빛으로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에게 2001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선사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빛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노벨상을 받거나, 세계가 알아주는 발명품을 개발하는 것들이다. 한 개인의 힘이 얼마나 큰 파급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예들이다.

 

영화예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쉰들러 리스트>를 본 사람이라면 유대인들이 겪은 잔혹사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유대인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로 조국을 빛낸 대표 인물이다. 피터 잭슨 감독도 <로드 오브 더 링스>(Lords of the Rings)로 그림 같은 뉴질랜드 경치를 전 세계에 알린 애국자다.

  


웰링턴에서 태어난 토종 키위

 

유명 영화배우 가운데 뉴질랜드 출신을 꼽으라면 러셀 크로를 들 수 있다. 사실 그가 뉴질랜드 태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의 모두 ‘호주’산이나 ‘미국’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러셀 크로는 뉴질랜드(웰링턴)에서 태어났다. 어린 날을 주로 호주에서 보내고 연기 활동은 미국에서 했다. 하지만 그는 토종 키위다. 본인은 물론 많은 키위가 그를 ‘같은 키위’로 생각하고 있다.

 러셀 크로는 1964년 4월 7일 웰링턴에서 첫 울음소리를 내면서 인생 연기의 시동을 걸었다.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호주 시드니로 무대를 옮겼다. 할아버지는 촬영기사, 부모님은 영화와 텔레비전 세트담당자였다. 말 그대로 ‘영화 가족’이었다. 

 그는 일곱 살에 호주 텔레비전 드라마 <스파이포스>(Spyforce)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연기 생활을 시작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연기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러셀 크로의 집 공기가 그랬다. 

  


호주 시드니로 삶의 무대 옮겨

 

러셀 크로는 열네 살에 또 다른 역할을 맡았다. 그때 호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젊은 의사들>이라는 드라마였다. 천천히 연기 세계를 넓혀 나가던 그는 귀국길에 오른다. 

 그의 부모는 러셀 크로에게 키위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뉴질랜드행을 택했다. 오클랜드로 돌아온 그는 시내 중심에 있는 중등학교(오클랜드 그래머 스쿨)에 들어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형들은 크리켓(Cricket, 영연방 나라들이 즐기는 스포츠, 야구와 비슷함) 주장을 맡고 있었다.

 러셀 크로는 사촌 형들과는 달리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가 가진 ‘딴따라’ 끼를 맘껏 보여주었다. 딘이라는 친구와 2인조 밴드 그룹 <로먼 앤틱스>(Roman Antix)를 결성해 음반까지 냈다.

 러셀 크로가 만든 노래 가운데 하나는 <아이 원투 비 라이크 말런 브랜도>(I want to be like Marlon Brando, 말런 브랜도처럼 되고 싶어)다. 가사에는 러셀 크로가 늘 꿈꿔온 것을 담았다. 그는 디스크자키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돈이 없어 칼리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러셀 크로는 호주로 돌아갔다. 연극 <로키 호러 쇼>(The Rocky Horror Show)에서 주연배우를 꿰찼다. 1986년부터 88년까지 호주와 뉴질랜드 주요 도시를 돌며 공연한 총 415회의 연극을 통해 러셀 크로는 연기 지평을 넓혀 나갔다.

 연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스크린 활동도 점점 늘어났다. 러셀 크로가 출연한 영화 몇 편이 평론가와 감독은 물론 동료 배우들한테 주목을 받았다. 

샤론 스톤, 작품 파트너로 러셀 크로 요구

 1992년 상영한 <롬퍼 스톰퍼>(Romper Stomper, 이유 없는 반항)에서 러셀 크로는 아시아계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무차별 테러하는 스킨헤드족(신 나치족)으로 나와 악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 연기에 흥분한 사람은 관람객들뿐이 아니었다.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년 작)으로 유명한 샤론 스톤은 러셀 크로에게 다음 작품 때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러셀 크로는 샤론 스톤과 호흡을 맞춘 서부극 <퀵 앤드 데드>(The Quick and the Dead), 케빈 스페이시와 함께 출연한 <엘에이 콘피덴셜>(L A Confidential), 명배우 알 파치노와 어깨를 견준 <인사이더>(The Insider)에서 주연 배우 못잖은 대접을 받았다.

 러셀 크로의 명품 연기는 영화 <검투사>(The Gladiator)에서 잘 나타났다. 제작비만 미국 돈으로 1억 달러가 들었다는 이 영화에서 로마 장군 막시무스(Maximus) 역을 맡은 러셀 크로는 좌중을 사로잡는 눈빛으로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에게 2001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자상을 선사했다. 



검투사부터 수학 천재 역까지 소화해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천재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 1928~2015)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에서 러셀 크로는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역할을 실감 나게 소화했다. ‘러셀 크로가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끝은 어딜까’를 고민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러셀 크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빚어내는 연기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많이 출연한 그는 관람객들에게 실제 인물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러셀 크로는 막전은 물론 막후에서도 인기를 끌어내고 뉴스를 만들어 내는 인물이다. 대중은 러셀 크로가 스크린에서 펼쳐 보이는 ‘환상 같은 연기’에도 흥분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여과 없이 터져 나오는 가십거리에도 흥미를 느낀다. 

 그는 시드니와 런던에서 발행되는 대중신문의 머리기사를 종종 장식하기도 했다. 다혈질 탓이었다. 수상 소감을 제멋대로 편집했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연출자를 벽에 밀어붙였는가 하면, 영화 스태프와 싸워 경찰에 잡히는 등 영화 같은 실생활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사우스 시드니 래비토스(South Sydney Rabbitohs) 럭비 클럽 구단주이자, 뉴 사우스 웨일스에 560에이커 크기의 농장을 가지고 있는 러셀 크로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로 호주를 일주(6,500km)하며 삶을 즐기고 있다. 러셀 크로는 아직도 록 그룹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름이 아주 독특하다. <30명의 날라리 해병대원>(30 Odd Foot of Grunts)이라니….



삶으로 키위 면모 보여줘야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게 몇 가지가 있다. 떠나온 고국을 그리는 마음도 그 가운데 하나다. 러셀 크로의 연기가 빛을 내면 낼수록 키위들은 그가 ‘키위’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비록 러셀 크로는 호주 시민권자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연기에 누구보다 더 진하게 울고 웃는 사람들이 바로 키위들이다. 그 사실을 안다면 러셀 크로는 연기가 아닌 삶에서 키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난 러셀 크로처럼 되고 싶어>(I want to be like Russell Crowe)라며 또 다른 방법으로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멋진 향기를 불어넣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면 말이다.




글_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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