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아모르파티 7; 밤바다의 울음소리

교민뉴스


 

백동흠의 아모르파티 7; 밤바다의 울음소리

일요시사 0 470 0 0

비바람 치는 토요일 밤. 오클랜드 시내 와인 바에서 태운 택시 손님을 바닷가 끝자락 세인트 헬리어스에 내려놓고 돌아 나선 길이다. 


미션베이 해변을 따라 시내 방향으로 오는데 거센 파도가 도로를 덮칠 듯 포효(咆哮)한다. 마침 볼일이 급하던 차에 바닷가 화장실이 눈에 들어온다. 


택시 일이 바쁠 땐 제때 소변 한 번 보기가 왜 그리 힘 드는지. 급하게 해결하고 나오는데 화장실 건물 모퉁이에서 웬 인기척이 난다. 


‘아니, 이 밤중에 누구일까?’ 주변을 살피니 한 남자가 어깨를 들썩인다. 거친 밤바다를 보며 울고 있다. 아시안 이민자 얼굴이다. 


“괜찮아요?” 조심스레 묻자 말이 없다.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막 지나고 있다.


어느 아내의 남편이 울고 있는 것일까? 남편이자 가장인 나도 괜스레 가슴이 울컥하고 먹먹하다. 어려울 때면 비슷한 감정이 내 가슴 밑바닥에서도 웅크리고 있었던 터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한 이민자의 울음소리를 세상은 듣고 있는지. 깜깜한 밤만큼이나 어둡고 막막하기 그지없을 저 속을… . 


이민자에게 있을 법한 온갖 어려움과 고민이 하나씩 떠오른다. 한참을 그 자리에 함께 가만히 서서 나 있다 보니 나도 그 사람이 된다. 찡하다. 그의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밤바다를 지켜보며 울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밤바다만이 말없이 이 남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누구에게 가슴 아픈 속내를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나마 털어놓을 수 있는 자연이 자그만 위안이고 안식처다. 


이렇게 한바탕 토해내면 자연이 포용하니 극으로 내 달리는 걸 막아주려니. 어쩌면 밤바다는 어려운 사람 앞에 닥친 풍랑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아닐까?


힘든 사람에겐 거친 밤바다의 격랑처럼 내면의 고통도 들끓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평화로운 해수면처럼 마음속도 잔잔해진다. 


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는 것은 그나마도 좋은 선택이다. 술이나 도박, 아니면 폭력이나 자해로까지 갈 수도 있는 극한 상황은 피한 것. 울음은 가슴속에 쌓인 슬픔과 아픔, 고뇌와 답답함을 씻어주고 치유해주는 영혼의 주사인지도 모른다.


아침나절, 열한 시쯤이었다. 오클랜드병원에서 택시 손님을 태웠다. 목발을 한 손님을 파넬 모텔에 내려놓고 보니 그 옆이 바로 아담한 옛날 성당이다. 


차를 세우고 잠깐 들러 마음을 쉴 겸 안에 들어가 앉았다. 한쪽 구석에 한 여인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보였다. 


웬걸, 일그러진 풍금 소리를 토해내듯 엉엉 울고 있었다. 먼 산에 흰곰처럼 웅크리고 있는 잔설(殘雪) 같았다. 햇살에 잔설이 서서히 스러지듯 여인의 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모두 녹아 내렸으면 좋으련만… . 


한참을 울다가 일어서는데 눈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백인이 아니고 퍼시픽 아일랜더였다. 밝은 낮에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울음을 애써 참고 억제하면 씻겨 내려가지 못한 슬픔으로 위장이 아프다고 한다. 누군가 눈물이 헹굼이라면 울음은 빨래 같은 것이라고 말 한 게 떠오른다. 


우리네 감정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기대했던 일에 실망할 때, 믿었던 사람이 불신으로 멀어져 갈 때, 거짓에 진실이 가려질 때, 보이는 것의 한계를 느낄 때, 건강에 적신호가 생겨 고통을 당할 때… . 


옷에 때가 묻으면 물에 헹구고 빨듯 우리의 감정도 탁해지면 깨끗하게 씻어내고 햇빛에 말려야 하는 것.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빨래감 처럼 깨끗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들여다보면 눈물의 정화 작용이 자연 치유력이고 명약보다 낫다. 잘 우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말도 맞다. 빠른 감정 회복이 필요하다.


굴곡 있는 하루의 일을 마친 뒤, 샤워하고 나면 세상이 편안하고 퍽 아늑해 보인다. 어둑어둑한 저녁 창 밖 너머에 뽀얀 그리움이 가로등 불빛을 타고 내려앉는다. 


일 나갈 때 싸한 새벽어둠과는 또 다른 여유가 흐르는 저녁 기운이다. 아내와 함께 저녁상 위에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뜨면서 텅 빈 속을 달랜다. 


낮에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나 고단함을 털어내는 시간이다. 간혹 좋은 영상이라도 틀어놓고 먹다 보면 작은 것에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난다. 개그 프로는 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다 빼놓는다. 


속 시원하게 통쾌한 감정이 온몸을 달군다. 다 내 이야기려니 하며 공감이 들다 보니 개그 무대 속에 그대로 빠지게 된다. 내가 개그맨이 되고 개그 작가가 된다.


순수 자연을 배경으로 엮어가는 다큐멘터리에 시와 수필 같은 내레이션은 시 낭송 회나 음악회에 참석한 느낌이 든다. 


그 속에 빠져들다 보면 감동의 눈물도 나고 속도 찡해진다. 좋은 글이나 영상은 우리들 선한 감정의 눈물주머니를 터뜨려 그 눈물로 아픈 속을 녹여낸다. 눈물을 흘리고 환희와 공감 속에 들 때 내 영혼이 한결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웃음과 울음은 똑같이 우리 영혼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지녔다. 마음이 피워낸 꽃이 웃음이라면, 마음이 빚어낸 보석은 눈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웃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맘껏 웃고, 울 수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그땐 울어야겠다. 이따금 내 속에서 밤바다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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