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86)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86)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누가복음 21장 5-13절>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즈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세계 최빈국 상당수가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전했습니다. 전문용어로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위기 국가가 점점 늘어나서, 실제 디폴트가 되는 나라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뿐만이 아닙니다. 21세기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반인륜적인 전쟁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고 기후 변화로 인한 재해는 더욱 거세져서 역대급이라는 타이틀을 계속 갱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지금 국제 정세는 매우 불안정 합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모두 다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우리에게 아주 큰 타격을 주지만, 실제로 생명이 걸린 일들을 격노라면 많은 이들이 좌절감을 경험합니다. 

  

자연 재해와 전쟁과 질병과 경제적 위기라는 수많은 국면에서의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 속에 사람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기와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고자 하십니까? 오늘 함께 보신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날에 있을 징조에 대해서 예언해 주시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목적은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하는 성전 파괴 때의 징조를 말씀하심과 동시에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의 마지막 종말의 때에 있어질 징조에 대해서 예언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과 어딘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를 언급하시며 하시는 말씀을 통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기와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할지 말씀을 통해 지혜와 은혜를 얻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회개가 먼저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시작에 어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6절 말씀에 그 성전이 완전히 무너뜨려질 것이다 예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자 마자 제자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여기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때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징조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의 이 질문에는 어떠한 속마음이 숨겨져 있을까요? 왜 제자들은 때와 징조를 물었을까요? 여기에는 편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들어 있습니다. 때와 징조를 알면, 그 날을 준비하기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조릴 필요도 없고, 그 시기가 임박했을 때 준비를 시작해도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말하면, 그 때를 정확히 알았을 때, 그 날이 임박하지 않았다면? 준비하지 않고 태평한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마태복음 24장 36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목적을 정확히 아시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 날과 때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날이 다가올 때에 있을 징조는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물론 과거에도 있었지만, 그 위기가 더욱 심각해져 가며 지금 우리의 시대를 감싸고 있음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심각해져 가는 수많은 위기 속에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고난의 터널을 지나다가 대게 그 시선은 최종적으로 한 곳으로 향합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신께로 향합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진짜 계시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물론 이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선을 알기 때문에 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자들의 현실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무언가 잘 못 설정되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질문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질문일까요? 그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질문입니다. 마치 전쟁이 하나님 때문에 일어났다거나,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시고 방임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전쟁이 왜 일어날까요? 그리고 사실상 이 땅에 지금 일어나는 수많은 자연재해들, 전염병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도 사실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 재해, 전염병 등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모두 인간의 잘못된 욕심으로 비롯된 죄악으로 인함인 것임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현재 이 고난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든 그렇지 않던,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며 원망하기 전에,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죄악의 결과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기 전에, 우리의 더러운 죄악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로부터 시작하여 열방의 모든 이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 성도님들은 먼저 깨어 기도하며 회개하심으로 그 날을 잘 준비하시고, 또 나라와 민족의 영적인 회복과 구원의 역사를 위해 기도해 주실 때에, 하나님의 평강이 온 세계 위에 가득 넘쳐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9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어서 13절 말씀에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2)증거가 되리라” 이 두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 때에 이러한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확언하시며 예언하셨습니다. 더욱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아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이미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인간적인 마음에 질문이 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아시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가?”입니다.

  

이 또한 사실은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마가복음에서 평행구절인 13장 20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지금 이 상황이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날들을 감하시는 역사를 지금까지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약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셨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그 날들을 지금도 열심히 감하고 계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을 아시고, 마지막 수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본문 바로 앞선 누가복음 20장 9절부터 나오는 단락의 말씀을 보시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비유 속에서 주인이 이처럼 행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들에게 희망을 품으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수도 없이 말씀을 선포하시다가, 최후에 당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가장 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직접 신을 벗고 이 낮은 땅으로 뛰어드신 것입니다. 더럽고 추악한 곳이지만, 가장 거룩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발을 담그신 것은 무한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꼭 믿으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때로는 예수님의 은혜로, 때로는 성령님의 돌보심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보심을 굳게 믿습니다. 가장 큰 일을 하신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 굳게 붙잡으셔서, 난리와 소문 속에서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담대하게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끝으로, 살아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특정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인간 모두를 대변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욥의 이야기 다들 아시지요? 욥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이 그토록 행복한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재앙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욥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견뎠습니다. 그를 견딜 수 있게 했던 힘은 이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욥기 중간에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말씀에서 보면,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버텨왔지만 이후에는 시간이 흘러도 의미를 발견할 수 없자 욥은 견딜 수 없어 하며 하나님 앞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의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시고,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욥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 도리어 질문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욥기 38장에 나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몇 구절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땅의 모퉁이 돌을 놓은 자가 누구냐? 너냐?” “네가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아침이 되라고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한 적이 있느냐?” “누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비를 내리며, 메마른 땅을 축축하게 하여 풀이 나게 하였느냐?” 

  

욥은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셨던 질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고, 자신이 했던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앞서도 계속해서 나눈 주제이지만,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임을 인정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뜻 앞에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며,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고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그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자라도 더 순종함으로 살아내십시오. 여기에 살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e9b47db6a4f5f69e91ec951d2d10f3b0_1663649740_161798.jpg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