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7) 나는 생명의 떡이라!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97) 나는 생명의 떡이라! <요한복음 6:35~40, 66~69>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음을 증언하는 것”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신적 자기 선언” 일곱 가지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절기에, 우리가 앞으로 3주간 “에고 에이미 – 예수님의 신적 자기 선언” 일곱 가지 중에, 세 가지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나는 생명의 떡이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르켜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이미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알았고, 내 안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풍요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초반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기적의 떡을 먹은 바로 다음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나섭니다.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고, 기적의 떡을 먹었으면서도, 단지 육적인 배부름만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35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결핍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결핍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욕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게 세상적인 욕망을 채워가는 것의 한계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늘 결핍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는 더 이상 결핍의 문제에 묶인 자가 아닙니다. 욕망의 종 된 자가 아닙니다. 영생하도록 있게 하시는 생명의 양식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풍요의 복을 맛보고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 그 속에서 풍요의 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 허락하신 풍요의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강조하시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 38절에도 말씀합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함임을 여러차례 밝히고 계십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행하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본문 39절과 40절에 말씀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오직 하나, 구원입니다. 구원은 죄에서 건져냄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한 마디로 생명입니다. 영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생명의 떡이라.”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영생의 자리에 섭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습니다.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당당히 서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본문 37절에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앞서 읽어드린 39절 중반에도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즉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두리번 거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셔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주어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신 뜻은 어디에 있을까요? 똑같습니다. 내가 지금 마주하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사람이 나의 말 한 마디에 실족한다면, 내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는다면, 내가 믿는 자로서 본이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든다면, 심지어 구원의 길을 외면하게까지 만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자신에게 주신 모든 자, 즉 예수님 앞에 마주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치유하시고, 안아주시고, 회복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네가 마주하는 그 한 사람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라.” 

  

그것이 곧 바울도 계속해서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 예수의 흔적을 새겨가는 삶, 그리스도의 편지와 같은 삶, 덕을 세워가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도 주의 뜻을 따라 내게 맡기신 모든 영혼을 생명의 길로 이끌어가는데 쓰임 받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생명의 떡을 먹은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상당히 긴 분량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서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생각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려갑니다. 본문 3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이어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 그 모든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주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 결과가 66절입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남겨진 열 두 제자를 향해 물으시죠. “너희도 가려느냐?” 이 때 베드로의 신앙의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 68절과 69절 말씀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는 남겨진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의 말씀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고백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후 베드로도 연약하여 실족한 적도 있었지만, 끝내는 자신의 신앙의 고백 따라서 주신 사명 감당합니다. 죽기까지 충성합니다. 생명의 떡을 먹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을 먹은 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뭐 여러 가지 신앙의 걸음이 있습니다. 말씀드릴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딱 압축해서 하나로 말씀드리면 이겁니다. “마지막까지 부를 나의 찬송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앙의 고백, 주의 말씀, 주를 향한 찬송에 합당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의 삶의 걸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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