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2) 행복이 넘치는 교회(1) 에베소교회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02) 행복이 넘치는 교회(1) 에베소교회 <요한계시록 2:1~7>

오늘부터 우리는 7주간에 걸쳐서 ‘행복이 넘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계시의 내용을 소아시아, 지금으로 보면 터키에 있는 일곱교회를 향해 편지의 형식으로 기록합니다. 내용을 보면, 각각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과 격려가 있습니다. 또한 책망과 질책도 있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권고도 나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잘하는 것은 더 잘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은 주의 말씀에 따라 잘 고쳐서,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 그 중에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에베소의 지역적인 특성을 보면, 항구도시입니다. 항구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그에 따른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당시의 에베소는 종교, 사상, 철학의 중심지로 불리웠고, 로마 지배 속에서도 자유도시로 인정받을만큼 크고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에는 크고 웅장한 아데미신전이 있었고, 우상 물품 사업이 번창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어진 상황이나 현실은 믿음을 잘 지키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의 전도여행 중에 가장 긴 시간인 3년이나 에베소에 머물렀고,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하면서 제자들을 세워갑니다. 그러면서 에베소교회는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이러한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칭찬의 말씀과 더불어 책망의 말씀도 주십니다. 또한 앞으로의 신앙의 성장을 위한 권고의 말씀도 주십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을, 나를 향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향한, 또한 우리 교회를 향한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서, 다시 한 번 믿음의 결단을 세워가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 진리를 견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에베소는 항구도시입니다. 좋게 말하면 여러 가지 다양성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룬 큰 도시이고, 안좋게 말하면 이것 저것 뒤죽 박죽 다 섞여 있는 곳이 바로 에베소였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진리를 잘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습니까? 이게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러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시는 칭찬입니다. “내가 다 안다. 네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그 힘겹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얼마나 참고 견디고 버텨내면서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이러한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베소교회는 주어진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영적 진리를 견고하게 붙잡았습니다. 그 힘으로 살아내고 버텨가는 겁니다. 영적 진리를 견고하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삶의 문제와 어려움, 신앙의 도전 이 있을지라도, 영적 진리를 견고히 붙잡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가 다 안다. 내가 너의 믿음과 수고와 인내와 헌신을 다 알고 있다.” 위로와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주셨지만, 동시에 책망의 말씀도 주십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본문에서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일을 하다가 ‘번 아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교회 봉사하는 중에도 누구나 힘들어서 지쳐 쓰러지는 번 아웃을 경험 할 때가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힘겨운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진리의 수호자가 되어서 믿음을 잘 지켜왔습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만한 신앙의 모습을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럼 그 신앙의 모습이 무너졌다는 건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첫 사랑이 식었어.” 그렇다고 내가 예배를 안드리는 건 아니잖아요. 헌금을 안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봉사를 안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 합니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처음에 느낀 감격이 없는 거예요.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말씀하죠.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주를 향한 그 순수한 사랑, 그 감격이 어디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걸 찾아내야 합니다. 스스로 신앙의 위기라고 생각되면, 금식을 하던지, 철야를 하던지, 말씀을 읽든지, 열심히 예배를 드리던지... 어쨌든 방법을 찾아봐야 하잖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내 안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처음 사랑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의 그 감격, 처음 교회에서 교제할 때의 그 기쁨, 처음 직분을 받게 되었을 때의 그 열심, 처음 봉사하였을 때의 그 뿌듯함, 그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회복을 위해서 조금 쉬어야 할 수도 있고, 더 열심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더 달려야 할 때도 있고, 조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처음 사랑의 회복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세속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앞서 에베소교회가 칭찬 받은 것은 2절과 3절의 말씀처럼 진리의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6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앞서 자칭 사도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 악한 자들이 바로 니골라 당입니다.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을 팔아먹고,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회중을 늘리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철학과 기독교를 혼합하여서 변질된 복음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악한 자들, 자칭 사도들, 니골라 당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니골라 당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도행전 6장 5절에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마지막 인물이 “니골라”입니다. 충격적인 일이죠. 초대교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세워가고자 택하였던 인물인 니골라가 어느 순간 변질되어서 거짓 교사, 자칭 사도, 악한 자의 대열에 서 있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일곱 집사 중에 하나로 뽑았어?” 이게 아닙니다. 누가 보더라도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도 자칫 삐끗하면 거짓 교사가 되는 거예요. 

  

그럼 니골라는 왜 거짓교사가 되었을까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철학자들의 모습처럼 자기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을 정말 진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악한 의도와 순수한 열정이 다 있습니다. 이처럼 이유는 다르지만, 그 근본은 똑같습니다. 세속주의. 첫 번째 악한 의도로 한 것,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청중을 끌어모아서 경제적인 이득을 얻어야지.” 이게 세속주의잖아요. 신앙을, 기독교적인 진리를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거니까 세속주의입니다. 더불어 순수한 열정으로 “복음의 진리를 전해야지.” 했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판단기준이 내 지식과 내 생각입니다. 이게 세속주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내 기준으로, 내 이성을 판단하는 것이 세속주의입니다. 마치 사사기에 나오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과 같습니다. 

  

세속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세속주의를 먼저 타파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물들어 있는 세속주의가 있습니다. 신앙을 내 삶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이용하거나, 신앙이라는 이름을 빌려 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에 바쁜 것, 이게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세속주의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니골라 당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합당한, 이기는 자로 세움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또한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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