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6 ; 애인 있어요?

교민뉴스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6 ; 애인 있어요?

일요시사 0 886 0 0

아이스크림 사줘요


“하이. 앤드류!”

“오! 귀여운 공주님. 제니. 여긴 웬일이래.”


앤드류가 신발 샵에서 운동화를 사 가지고 나서던 참이었다. 마침 파머스에서 나오던 제니가 엄마 손을 놓고 앤드류한테 달려왔다. 제니 엄마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딸아이를 바라봤다. 주말 알바니 쇼핑몰은 생동감 넘치는 활기찬 사람들의 기운으로 탄력을 받았다.


“엄마. 이 분이 걸프 하버 프라이머리 스쿨버스 운전하는 앤드류예요.”

“앤드류. 여긴 우리 엄마고요. 전에 제가 얘기했잖아요. 우리 엄마 외롭다고요.”


제니가 엄마와 앤드류 사이에서 기쁜 목소리로 인사를 시키는 바람에 두 사람은 얼떨떨했다. 앤드류가 제니 엄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제니 엄마도 엉겁결에 예를 갖췄다.


“엄마. 저기 샵에서 아이스크림 사줘요. 엄마, 앤드류도 함께 먹어요. 먹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어.”


이게 웬 센세이션이람. 엉거주춤하는 엄마 손을 끌고 제니가 아이스크림 샵으로 향했다. 어찌할 줄 모르는 앤드류가 발걸음을 밍기적댔다. 제니가 앤드류 앞으로 와 손을 잡아끌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신나는 제니의 기쁨에 브레이크를 밟을 순 없었다. 이제부턴 제니가 상황을 운전해 나갔다. 앤드류와 제니 엄마는 스쿨버스에 탄 프라이머리 학생이 되어갔다. 그런 제니가 싫지는 않았다.


“엄마. 난 이 레몬 아이스크림으로 할래요. 아이스크림 위에 뿌려진 토핑이 좋아요. 엄마는 딸기 어때? 딸기 좋아하잖아. 앤드류는 사과가 좋겠네. 운전하기 전에 사과를 잘 드셨잖아.”


제니 앞에 순한 양이 된 앤드류와 제니 엄마는 제니가 제안한 대로 묵묵히 따랐다. 아이스크림 점원이 콘에 각각의 아이스크림을 담는 동안, 앤드류가 지갑을 열었다. 제니 엄마도 카드를 냈다. 서로 먼저 내려는 눈치였다. 


“노. 노. 이러시면 안 돼요. 오늘은 제가 산다고요. 저도 돈 있어요. 오늘 두 분은 제발 제 말을 들어요. 제가 운전하는 버스에 두 분이 탄 거예요. 그럼 운전사 말을 따르셔야지요.”


“하하하.”

“호호호.”


졌다 졌어. 앤드류와 제니 엄마가 지갑을 집어넣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비로소 서먹하던 사이의 빗장이 열렸다. 당차게 제지한 제니가 예쁜 목걸이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냈다. 지폐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여왕이 빙그레 웃었다.


“아이. 고마워라. 여기 옆자리에 사람들이 때맞춰 자리를 일어나네. 우리 앉으라고. 자 어서 이리로 앉아요.‘


제니가 줄곧 신나서 방방 뜨는 빨간 머리 앤처럼 주도적으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 적극적인 제니를 바라보는 제니엄마도 수동적인 행동에서 제니 쪽으로 다가갔다. 앤드류도 똑같았다.


“엄마. 맛있지?”

“응. 엄청 달콤하네. 제니 덕분에 어린애같이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제니처럼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야.”

“앤드류는 어때요?”

“멋져! 제니. 말괄량이 삐삐 같아. 이런 아이스크림 먹을 줄은 몰랐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맛이네. ”


앤드류가 오른쪽 엄지를 들어보였다. 때맞춰 제니 엄마가 왼 쪽 엄지로 장단을 맞췄다. 함께 아이스림을 한 입씩 먹으며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제니 엄마가 먼저 앤드류에게 말을 건넸다. 



린다라고 불러줘요


“제가 앤드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학교 갔다 오면 제니가 이야기를 많이 해주거든요. 그중에 프라이머리 스쿨버스 운전하는 앤드류가 고맙다고 했어요. 언젠가 제니가 버스에서 뛰어내리다 넘어진 적 있었지요. 그때 앤드류가 벌떡 일어나 제니를 일으켜 줬다면서요. 무르팍 상처 난 자리에 지갑에서 밴드를 꺼내 즉각 붙여줬다고요.”


“응. 앤드류는 만능 손을 가졌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로 손을 대면 척척 박사야. 그때마다 앤드류가 고마웠어. 혼자된 엄마가 외롭고 힘들어 한 걸 보면 앤드류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앤드류가 제니와 제니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겸연쩍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제니가 불쑥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다음 이야기 할 순번은 앤드류 차례인가. 앤드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이상,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다.


“글쎄 말입니다. 제니 어머니. 제니가 지난번 저에게 한 말에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앤드류. 우리 엄마 이름은 린다야. 린다라고 불러줘요.”


앤드류가 입을 열다 말고 제니한테 지적을 받았다. 회사 입사할 때 인터뷰에서 조심스레 얘기하는 식으로 답했더니, 변화구는 그만 던지고 직구를 날리라는 면접관 같았다. 무안해하는 앤드류 입 모양이 죄 없는 아이스림을 덥석 베어 먹었다. 


“호호호.”


린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히히히.”


제니가 신나 해 하며 깔깔거렸다. 힘을 얻은 앤드류가 표정을 바꿔 바로 팩트폭격을 날렸다.


“제니가 어느 날, 뜬금없이 저더러 묻는 거였어요. ‘앤드류. 애인 있어요?’ 제가 되물었지요. ‘애인은 왜?’ 그랬더니 바로 직구를 쏘더라고요. 


‘우리 엄마 애인 돼줘. 우리 엄마가 힘들고 외로워하거든.’ 그래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미안해. 난 애인 있는데.’ 했지요. 바로 되묻는 거예요. ‘누구야?’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어요. ‘와이프.’ 그 말에 제니가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를 내더군요. ‘치이~’.”


“호호호.”


린다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제니가 앤드류를 보며 눈을 흘겼다. 그러다가 제니가 전에 한 말과 행동에 저도 웃기는지 깔깔대고 웃었다.


“히히히.”


“하하하.”


앤드류가 제니와 린다 모녀를 보며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퍼뜩 한국 근대 단편 소설 주요섭의 이야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떠오를 건 뭐람? 


그때가 한국 1935년이었던가? 지금은 2023년 뉴질랜드의 이야기다. 무려 88년이나 지난 이야기. 유치원 다니는 어린 딸 옥희가 홀로 된 엄마와 사랑방에 하숙하는 선생님을 이어보려고 애쓰는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한국 옥희가 뉴질랜드 제니로 환생을 했나? *



작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소설등단: 2015년 문학의 봄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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