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7) [결단] 뜻을 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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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37) [결단] 뜻을 정하여! <다니엘1:8~9,17~21>

오늘은 지난 주의 [기대]를 지나 [결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마음으로 품고 있는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대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 기대를 이루기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내가 무언가 소망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루고 싶은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꿈만 꾸고 상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실제적인 행위가 필요합니다. 이를 향한 출발이 결단입니다.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내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면, 내가 믿음생활 잘 감당하는 바른 신앙의 모습을 갖고자 하는 기대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입니다.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입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많은 포로들 중에서 따로 선발되어서 3년간의 특별훈련을 받게 됩니다.이들은 훈련의 과정 가운데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이는 특권인 동시에 의무이기도 합니다. 왕의 음식을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음식을 거부합니다.뜻을 정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자 합니다. 당시 왕의 음식은 보통 이방신의 제사상에 올라갔던 음식입니다.그래서 다니엘은 자신을 담당하는 환관장에게 구합니다.. “나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 대신에, 채소와 물만 먹겠습니다.”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구합니다. 결단하여 구합니다. “나는 음식으로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이는 생명을 건 모험입니다. “결단-뜻을 정하여”. 다른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결단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어떠한 역사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그 한사람으로 삼아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안 앞에까지 이르렀습니다.40일의 정탐을 마친 이들이 보고하죠. “그 땅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합니다.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기들의 옷을 찢으면서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우리가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저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능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시대에, 하루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서 거인 장수 골리앗이 나와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그러기를 무려 40일. 그런데 아무도 나가 싸우려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소년 다윗은 담대함으로 나갑니다.그리고 힘차게 돌린 물맷돌에 골리앗은 쓰러지고,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인물로 쓰임을 받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요? “그 한사람”입니다.약속의 땅을 차지한 갈렙과 여호수아,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움 받은 다윗을 가르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한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 속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한사람입니다.


본문6절에 보면 “그들 가운데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훈련을 받은 이들이 이 네명만은 아니라는 거죠.그런데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은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네 명 뿐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그 한사람”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저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복된 삶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해 쓰임받는 “그 한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 또한 우리의 자녀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 출발이 이번 호렙산 기도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출발이 조금 더 사명 감당하고자하는 열심일 수 있습니다. 결단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여 나아갈 때에 내 삶의 모든 자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 한사람”으로 세움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주가 일하시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오병이어 말씀이 그 배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안되는, 빈손으로 걷는 것과 같은 현실이지만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드릴 때, 그것이 비록 적은 떡과 물고기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것으로 채우시는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오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야기가 곧 이와 같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였습니다. 당시 저들이 처한 현실은 바벨론의 포로입니다.지금 현실적으로 저들이 살 수 있는 길은 바벨론 왕에게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하지만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단합니다.다니엘과 세친구들이 처한 바벨론 포로의 현실, 날이 저물어가는 빈들과도 같습니다. 그 속에서 저들은 하나님께로 뜻을 정합니다. 자신이 가진 떡과 물고기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그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오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부합니다.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0절에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죠. “우리가 너희 말대로 해서 괜히 왕에게 밉보일 까닭이 뭐가 있냐?”환관장이나 책임자나 모험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게다가 15절에 보면, 좋은 음식을 먹은 이들보다 물과 채소만 먹은 다니엘과 세친구들이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이죠.그리고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 다니엘과 세친구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총명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믿음을 잘 지키고자 자신들의 뜻을 정한 것 뿐인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가장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뜻을 정하여 주님만을 바라보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올려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뜻을 정하여 내 자녀손들을 주의 손에 맡겨드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어떤 성도님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목사님! 호렙산 참석하려고 하는데, 아직 자신이 완전히 생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톡을 남겼습니다. “호렙산 때 기대하겠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뜻을 정해야 합니다.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떡과 물고기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다니엘에게는 그것이 생명이었고, 우리에게는 잠을 줄이는 것,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 피곤함을 견뎌내는 것일 수도 있겠죠. 이러한 헌신 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사, 가장 필요한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기대하고, 또한 경험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뜻을 정하여”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요? 오늘 타이틀과 같습니다. “결단”. 지지난 주에 다니엘 6장의 말씀을 통해서 “전에 하던 대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는데,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의 “뜻을 정하여”와 “전에 하던 대로”는 같은 의미입니다.그런데 이러한 결단이 있으면 그걸 시행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뭔가 결심하고 그대로 지켜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결심하고, 노력하면서도 왜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후회하고... 이걸 반복하는 것인가요? 인간의 의지와 힘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당할만한 힘도 주셔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결단한대로 말합니다. 행동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감당할만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심하고, 결단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했을까요? 기도했겠죠. “하나님! 내가 잘 말할 수 있게 힘을 주세요.”나중에 보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또 한 번의 위기 앞에 서게 되죠.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라는 것입니다.하지만 그 앞에서 다니엘은, 그리고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당당했습니다. 그 결과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풀무불에 던져집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오히려 더 큰 권세를 얻게 되고, 이방왕 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가 뜻을 정하여 주의 뒤를 따르길 원합니다. 감당할만한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결단하는 마음으로 새벽을 깨워 기도하길 원합니다. 감당할만한 건강과 상황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의 사명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 감당할만한 마음과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뜻을 정하여 결단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손들도 동일한 결단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감당할만한 힘과 능력을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여 나아갈 때에, 우리 모두에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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