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43) 천국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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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43) 천국은 마치 <마태복음 13:31~33>

할렐루야! 거룩한 주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천국은 마치”입니다.


“천국은 마치”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실 때에 비유를 즐겨 사용하십니다. 이는 당시 예수님 앞에 선 군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 속에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 깊이 담겨진 보화와 같은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천국에 대해서 여러 비유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 “천국은 마치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 “천국은 마치 일꾼을 부른 포도원 집 주인과 같다.” “천국은 마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다” “천국은 마치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이 모든 천국의 비유가 다 마태복음에 나온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도 비유 두 가지가 나옵니다. 31절에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어서 33절에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오늘 비유의 말씀은 쌍비유입니다. 한 가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두 가지 같은 의미가 담긴 비유를 연속적으로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그리고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 이것도 같은 성격의 비유를 연속적으로 배치한 쌍비유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비유는 천국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천국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이루어가야 할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말씀 가운데 담겨진 의미를 깨달아 알고, 저 천국의 소망과 더불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모함이 우리 안에 새겨지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작은 것 하나에 담긴 소중함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겨자씨와 누룩은 작은 것 하나에 담긴 소중함을 드러냅니다. 먼저 겨자씨를 보십시오. 31절과 32절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여러분! 겨자씨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들깨는 보신 적 있으시죠? 겨자씨와 들깨는 생긴 게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겨자씨는 색깔이 황토색이고, 겨자씨가 들깨보다 약간 더 작은 것 같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더 작은 씨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관용구적인 표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작은 것을 이야기할 때 “겨자씨 같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간이 콩알만해졌다.” 이런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겨자씨가 밭에 심겨지면 어떻게 되는가?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만큼 자란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직접 본 겨자나무는 이 말씀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겨자나무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큰 나무가 아니고, 관목입니다. 관목이란 주된 큰 줄기가 없이 가늘고 많은 줄기들로 구성된 대개 키가 2미터 이하의 나무들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가 심겨져 나무와 같이 큰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환경적인 요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나무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1-2미터만 자라도 그냥 나무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겨자나무만 해도 나무 취급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 겨자씨는 작은데, 그 겨자씨가 심겨지면 새들이 깃들만큼 큰 나무가 되는 구나.” 머릿 속에는 느티나무가 그려집니다. 


동시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결과중심적인 사고를 많이 합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해도, “본론만 이야기해.” 또는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렇게 다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서 겨자씨가 아니라,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천국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겨자씨입니까? 겨자 나무입니까? 겨자씨입니다. 그 작은 겨자씨가 주인공입니다. 겨자씨가 있어야 새들이 깃들일 겨자나무 군락을 이루는 겁니다. 이어지는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죠. 누룩이 있어야 부풀어 오른 반죽도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천국이라는 하나님의 영역도 이러한 작은 것에서 시작됨을 말씀합니다. 내가 이 땅의 삶 속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겨자씨와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천국의 삶을 이룰 수 있을만한작은 겨자씨, 적은 누룩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작은 믿음이거나, 나의 작은 헌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것이 나의 포기, 희생, 헌신, 사명 감당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땅에 심겨질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지고, 내 삶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기쁨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내게 있는 작은 것 하나를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어가는,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내 안에 심겨진 생명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뿌리신 생명의 씨앗, 복음의 씨앗은 작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겨자씨 한 알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었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커다란 씨앗도 그것이 죽은 씨앗이면 능력이 없습니다. 살아 있어야, 생명력이 있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뿌린 씨앗은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라나 열 두명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임재와 함께 120명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 충만한 이들의 전도를 받은 3천명의 세례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도행전 4장에 공회 앞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게 된 5천명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늘날 전세계 25억명의 기독교인들이 되었고, 지금 예배하는 우리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가진 생명의 역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여기 보면 겨자씨를 밭에다가 갖다 심었다고 말씀하죠. 사실 이 말씀도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겨자나무는 갈릴리를 특산지로 하는 다년생 잡초입니다. “잡초를 가져다가 큰 나무로 자라게 하겠다.” 말이 안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단 한 사람 가룟 유다만 빼고 다 갈릴리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갈릴리 지역은 이스라엘에서도 무시 받는 지역입니다. 그 갈릴리에 겨자나무가 흐드러집니다. 번식력이 얼마나 강한지 잡초와 같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겨자나무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을 생각합니다. “저 겨자나무가 우리랑 똑같다.” 그렇게 멸시 당하고 무시 당하던 갈릴리 사람들, 그 중에 열 한명을 제자로 부르셔서 예수님께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밭에 갖다 심으신 거예요. 그리고 저들을 통해 온 세계로 복음이 뻗어나갑니다. 


예수님 안에 있던 생명의 역사가 제자들을 통해서 온 세계 열방으로 확장되어져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라는 생명의 씨앗이, 생명의 누룩이, 제자들에게 심겨지고, 복음 전파를 통해 확장되어져 나가고, 이를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세워집니다. 우리 안에도, 내 심령에도 주의 말씀의 씨앗이 심겨질 때에, 예수 십자가 부활의 능력이 심겨질 때에, 그것이 생명의 능력이 되어 나를 변화시키고, 내 주변을 변화시키고, 온 세상에 천국의 기쁨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천국의 기쁨, 그 속에 담긴 생명의 역사를 누리고 전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확장되어져가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과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작은 것이지만, 땅에 심겨질 때에, 가루에 심겨질 때에, 그 지경이 계속 확장됩니다.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도 똑같습니다. 우리 안에 심겨질 때에, 내 걸음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모든 믿음의 백성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 그대로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이들은 권능을 받고 나아가 주의 복음을 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져 오늘까지 이르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 적은 누룩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그 작은 것이 심겨질 때에, 우리는 겨자나무가 되고, 전부 부풀어 오른 가루 서말이 되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닿는 곳에, 우리의 걸음이 닿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또한 확장되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 가운데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또한 전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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