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45) 내 안에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45) 내 안에 <고린도후서 4:7~15>

인간의 위대함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우주의 어떤 신비보다도 더 정교하여 도저히 값으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몸값을 육체적으로만 단순 계산하면 어떻게 될까요?돈으로 계산하면 한 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하지만 예일대학의 모로위츠 박사는 다르게 계산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값은 호르몬과 DNA에 담겨진 모든 정보까지 다 포함하면, 총 6백만달러의 가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몸값이라는 것이 어떤가요? 정말 한 만원 정도에 불과한가요? 아니면 한 6백만 달러는 받아야 하나요? 오늘 본문에는 7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우리 인간이란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사용하신 재료가 흙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라보실 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심은, 우리에게 텍이 하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Made in God”, 그 아래 우리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문장이 하나 더 써 있습니다. “Hand made”. 재료는 흙이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드셨기에, 그 가치가 다릅니다.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향해 “질그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안에는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담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몫입니다. 나의 신앙의 모습, 또한 삶의 모습에 따라,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고, 정말 값진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라기는 “메인드 인 하나님” 또한 “핸드메이드”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내 안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는 건가요? 아니죠. 하나님의 숨이 인간의 몸에 담겨져 있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여기서 질그릇은 우리 자신을 뜻하고, 보배는 창세기의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의 생기요, 본문의 배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령님이시오, 오늘날에는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모든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9대째 수제항아리를 만드시는 분이 계십니다.우리는 그런 분들을 장인이라고 합니다.그런 사람들은 말합니다.“항아리 속에 얼을 담았다.” 그저 항아리만 만드게 아니라, 그 속에 내 모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담습니다.우리도 내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들일 때에, 하나님의 자녀됨의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세상 종교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른 바 “득도했다.” 그러면 내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하지만 기독교의 깨달음은 무엇인가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난변할수 없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기에, 내 안에 보배로운 것을 담아가고자 더 애쓰는 것입니다.이처럼 나는 할 수 없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나 혼자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 “구원” 예수님의 건져주심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나는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지만, 내 안에 보배를 가졌다.” 나는 그대로일지라도, 내 안에 보배로움을 담아감을 통해 내 존재가치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는 말씀과 같이, 나는 더 이상 그냥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담은 질그릇,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 안에 모셔들인 존재,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 그럼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 있어야겠죠. 무엇인가요? 거룩함, 정결함입니다.내 안에 보배와 같은 우리 주님께서 계시니 선함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가야만 합니다.또한,질그릇은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깨지면 그 안에 담겨진 것이 흘러나옵니다. 뚜겅만 열어놓아도 그 안에 담겨진 것의 향이 흘러나옵니다.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아름다운 향기가 드러나야 합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나의 존재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에 따라 내 삶을 통한 향기가 달라집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람들의 나를 향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내 안에 보배로운 것을 담고, 그에 걸맞는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내 안에 있는 능력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무엇이 담겨져있느냐에 따라서 내 영적인 삶이 달라집니다.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일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바울이 각종 서신을 기록할 때에, 예수 믿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였습니다.기독교인들을잡아다가 불태워서 네로 황제의 정원을 밝힐 정도였고, 이 당시에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를 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마지막 열 번째 박해는 갈리우스 황제 때인데, 모든 기독교인의 권리가 정지되고, 교회들은 무너지고, 성경은 불태워지고, 기독교인들은 이교도의 신을 향한 희생제물로 바쳐지기까지 했습니다.오늘 본문에도 보면 7절에 우리를 가르켜서 “보배를 담은 질그릇과 같다.”고 말씀한 이후에, 곧바로 8절부터 11절까지 고난의 현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그러나 오늘 본문14절에 이렇게 정리합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지금 겪고 있는, 앞으로 겪게 될 그 수많은 고난의 현실이 아무리 힘겹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심지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예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실제적인 고난입니다.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그 엄청난 고통, 당장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 상황을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요? 앞서 읽어드렸던 14절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다시 오르는 길” 우리가 기도하면서, 예배하면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 믿음이 많이 성장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그러할 때에,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나이지만, 내 안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저 천국까지 이끄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겨낼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의 능력으로 어떤 고난과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와 걱정도 넉넉히 이겨 승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그려야 합니다.


사람이 그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무엇을 그려가고 있느냐에 따라서 생각이나 삶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호주에 다녀왔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저를 포함해서 열 명이 참석했는데, 밥을 한번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첫 날 세미나 중간에 300불짜리 봉투가 걸린 게임이 있었습니다. 빙고 아시죠.놀랍게도총 여덟명을 불렀는데, 다섯 명이 제가 쓴 이름이었고, 그 중에 네 명이 한 줄로 되었습니다.그래서 호주 달러 300불 봉투를 딱 받아서, 우리 뉴질랜드팀과 솔로몬군도 선교사님과 함께 가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시 제가 “저 봉투 받아서 나 혼자 잘 써야지. 내 비행기 값에 보태야지.” 그랬으면 되었겠습니까? 안됐을거예요. 하지만 “저거 받으면 함께 나누어야지.”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딱 맞게 300불을 제 손에 쥐어주시더라구요.


본문 15절에 말씀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앞선 모든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우리들에게 보배를 담아 주신 것, 이를 통해 모든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이기게 하신 것,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우리 모두 누구나 언제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오늘도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쓰임 받아야 합니다. 위로의 말 한 마디, 사람을 살리는 말 한 마디, 표정, 나눔,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내 안에 담겨진 보배가 드러나게 됩니다.


“내 안에” 무엇을 담기를 원하십니까? 그건 우리 자의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질그릇과 같은 내 안에 보배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내 안에 담겨진 아름다운 보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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