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52)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52)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누가복음 1:26~38>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넷째주일입니다. 동시에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뜻하는 크라이스트에다가 예배를 뜻하는 미사라는 말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리고 “메리”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말로 “기쁜, 즐거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석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쁨으로 예배하자.” 이렇게 됩니다.그럼 왜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에, 함께 예배해야 하나요?왜요? 하나님께서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생일이 되면 생일을 맞은 사람이 온전히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다른 모습들도 있습니다. 생일을 맞은 사람만이 아니라, 생일을 맞이한 사람을 낳은 엄마의 수고를 기념하는 겁니다.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예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귀합니다. 더불어 정말 중요한 인물이 하나 있으니, 한 번 따라하겠습니다. “말씀 앞에 서 있는 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우리 자신입니다.

  이 대림절 절기에 말씀 앞에 서있는 우리들은 말씀 속에 담긴 은혜를 어떻게 받고, 그 안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나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탄의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나갈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준비된 심령에 주의 은혜가 임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전하신 구원의 주 예수 탄생의 소식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날을 계획하셨고, 또한 준비하셨고,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계속해서 전해주셨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그 첫 번째가 언제였을까요?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 나오죠. 우리가 보통 후손이라고 하면 남자를 따라가죠. 그런데 창세기에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주인공인 예수님 또한 여인의 후손입니다. 왜요? 처녀의 몸으로 잉태되었기에 여인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마리아가 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리아는 두렵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갖는다는 것, 더군다나 자신이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낳는다는 것, 감당할 수가 없는 큰 일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보면 마리아는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아무나 택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정말 감당할만한 인물을 준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더불어 부족한 나머지는 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심으로 완전하게 준비시켜주심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남편 요셉은 어떤가요? 오늘 본문에는 그저 이름만 나오지만, 마태복음에 보면 요셉을 향해 이런 평가를 내립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요셉 역시 준비된 사람으로 쓰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준비된 심령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어서 언제나 예배자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구원의 역사를 완성할 인물로, 또한 구원의 역사를 세상에 전할만한 인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갈 사명자로, 나 자신이 준비된 심령이 될 때에, 부족해도 준비된 심령이 되길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마리아입니다.하지만 정말 주인공은 따로 있죠.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의 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절기와 명절, 특정한 기념일들이 참 많습니다. 여기 뉴질랜드는 기독교적인 기본 문화가 있다보니까, 성금요일과 부활절이 상당히 크게 부각되어 있고, 실제로 가장 긴 연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념일이나 명절은 하루, 또는 며칠 정도입니다. 반면에 크리스마스는 어떤가요? 12월 25일, 하루가 아니라, 거의 한달 내내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길게 기념하는 절기가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크리스마스에서 자꾸 예수님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날 예수님을 지워버리면, 그날이 왜 존재하나요? 크리스마스, 이 기쁨의 절기에, 나의 구원의 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내 안에 다시 한 믿음으로 모셔들이는 영적인 주의 임재의 기쁨을 사모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잉태의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게 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역사를 행하실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31절입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름을 주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뜻은 구원자입니다.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히 밝혀주십니다.   이어서 본문 32절과 33절입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 짧은 말씀에 예수님을 향한 다섯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가장 먼저 “큰 자가 될 것이다.” 헬라어 원어로 “메가스”입니다. 예수님은 큰 자입니다.이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앞선 “큰 자”와 비슷한 의미죠. 이어서 “다윗의 왕위를 가진 자”입니다. 또한,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분”입니다. 앞선 다윗의 왕위와 비슷하죠. 야곱의 집은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는 말입니다.  마지막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왕국을 세우시는데, 그 나라가 무궁합니다.

  

그렇기에 고린도전서와 디모데후서와 요한계시록에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내 안에 모시고,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영원토록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다.” 예수님을 모신자, 예수님의 권세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믿음의 결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38절에 말씀합니다. 우리 3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우리는 보통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냥 쉽게 읽습니다. 거의 이렇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런가보다. 그렇게 되었나보다. 지금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 결과를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를 다 알고 있기에 우리는 편안하게 말씀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받아들이면 나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새벽예배 중에 “말씀의 부재”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말씀의 부재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는 하는데,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그래서 말씀을 잘 알기도 하는데, 믿기도 하는데, 그 말씀이 내 삶에 살아운동력있게 역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앞서 말씀드린대로, 온 세상이 다 크리스마스라고 떠들썩한데, 정작 그 안에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의 부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받을 때에, 늘 믿음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마리아는 믿음으로 결단하였습니다. 오늘 천사를 만났을 때의 마리아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학자들은 본문의 마리아의 나이를 적게는 열 두 살, 많아도 열 여덟살 정도로 봅니다. 그 나이에 오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놀랍고 두려운 일이었겠습니까? 게다가 다 알고 있습니다. 처녀로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 낳는다는 것, 기른다는 것, 잘못되면 엄청난 비난과 수모와 멸시와 생명의 위협까지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이 크고 두려운 일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를 향해 이런 저런 말들로 위로하고, 권고합니다. 내용을 잘 보면, 정말 어린 아이를 달래는듯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천사가 전한 마지막 말이 마리아의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37절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믿음의 결단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결단이 필요한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의 주로 영접하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의 주로 제대로 믿는 것,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붙잡을지, 무엇을 끊어낼지,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의 결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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