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62) 예수님 행하신 일,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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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262) 예수님 행하신 일,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마태복음 4:23~25, 9:35~10:…

사탄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겨 승리하신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첫 번째 본문인 4장 23절에 말씀하죠.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어서 두 번째 본문인 9장 35절도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두 말씀 모두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가르침과 복음전파와 치유”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 가르침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늘 주신 바 말씀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래서 4장에 공생애의 목적진술을 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5장에서 9장까지 직접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치유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리고 9장에 이르러 본문 마지막 10장 1절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어 파송하십니다. “너희도 내가 한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 이러한 전체적인 틀을 마음 속에 넣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럼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은혜는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요? 앞서 함께 읽었죠. 4장 23절과 9장 35절의 말씀입니다.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는 예수님의 공생애 3대 사역인 동시에, 교회의 3대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 3대 사역 중에 가장 첫 번째가 무엇일까요?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 나타난 복음 전파의 대표적인 예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수가성 여인의 대화를 보면, 이 여인이 얼마나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영적인 해답을 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의 질문에 깊은 깨달음의 말씀을 주십니다. 복음 전파를 통한 한 영혼의 구원과 더불어 복음의 확장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3대 사역 중 두 번째는 무엇인가요? “가르침”.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럼 가르침에 담긴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람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배워가고 있다면,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여 바른 신앙인으로 세워져가야 합니다.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서로 세워가고, 세워져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가르침을 통한 열매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3대 사역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인가요? “치유하심”. 예수님의 3대 사역에서 마지막 세 번째는 치유입니다. 


그런데 치유라고 하면, 병든 자를 고치신 것만이 아닙니다. 23절에도 나와 있듯이, 예수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 아픔까지도 고쳐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치심은 치료가 아니라, “치유 - 힐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럼 치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치유는 그 자체가 열매입니다. 복음에 귀 기울이는 자, 주의 진리의 말씀을 받는 자, 이를 위해 주님 앞에 나오는 자에게는 영과 육의 치유가 임합니다. 그렇기에 치유는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열매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공생애 3년간은 또 폭풍같이 수많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복음을 전하심으로 영혼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사람을 세워가셨으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치유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심으로” 공생애 사명을 감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그럼 무엇일까요? 똑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하신 그대로, 복음 전파, 가르침, 치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4장이 출발이고, 9장 전반부까지 예수님의 행적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9장 후반부에 다시 한 번 예수님의 공생애 3대 사역을 정리하시고, 36절에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바라보시는데, 그들의 목자 없는 양 같은 모습으로 불쌍히 여기십니다.그래서 말씀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이어지는 10장 전체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방황하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이제는 네가 가라.”고 명하십니다. 그 말씀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도 선포되었습니다. 

그 사명의 첫 번째가 무엇인가요? “복음 전파”. 우리가 감당해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있습니다. 쉬운 것은 주변 사람에게 “함께 교회 가자.” 말하는 겁니다. 그보다 조금 어려운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고,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어렵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꼭 해야 할 복음전파는 이겁니다. 내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 말도 이쁘게 하고, 행동도 본이 되고 칭찬 받을만하게 살아가는 것, 이를 통해 내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뭔가요? “가르침”.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르침도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쉬운 것은 말 그대로 그냥 가르치는 겁니다.  그럼 어려운 건 뭔가요? 역시 내 삶을 통해 가르치는 거죠. 우리 믿음이 좋은 성도님들이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다 가르침입니다.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이 다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말과 행동과 삶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역시 그 모습을 따라갑니다. 우리도 진리의 말씀을 내 안에 잘 새기고, 또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내게 맡기신 가르침의 사명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인가요? “치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치유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병을 고치는 것만이 치유가 아닙니다. 상처받은 심령을 위로하는 것이 치유입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 곁에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손을 붙잡아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치유의 사명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치유도 중요한데, 상처주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나 때문에 실족하면 그거 어떻게 감당하실건가요?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예수님 행하신 모든 일들은 예수님의 행하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먼저 스스로 본을 보이셨고, 또한 제자들에게 그 사명을 맡겨 행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사명을 맡겨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주의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사명감 가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 행하신 일,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복음 전파와 가르침과 치유”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명감입니다. 사명감은 부담감으로, 의무감으로, 책임감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날 수도사 한 사람이 험한 산을 넘어 수도원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길은 아주 험하여 길 자체가 고행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는 중에 열 두어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아기를 업은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수도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묻습니다. “얘야~! 고생이 많구나. 무겁지 않니?” 그러자 이 아이가 말합니다. “아니요. 하나도 무겁지 않아요. 제 동생인걸요.”

  

이 이야기 속에 사명감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는, 동생 때문에 힘들지만, 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넉넉히 감당합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것 사랑으로 감당하는 겁니다.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3.1절 기념주일인데,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이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잡혀들어간 기독교인들이 전체 투옥자 중에 20퍼센트 정도입니다. 당시 한국의 전체 기독교인구가 1.5퍼센트였는데,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개신교인이 16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3.1운동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믿음의 선조들은 그 일들을 감당했던 것일까요? 나라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나라사랑의 마음이 저들의 사명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국을 떠나 이곳 뉴질랜드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명감 가지고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를 향한 사랑,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것이 우리의 사명감이 될 때에, 주님 맡기신 십자가의 사명, 나라 사랑의 사명, 이웃 사랑의 사명, 모든 사명 넉넉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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