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24) 하나 더 필요한 것 <사도행전 18:24,25>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든 뉴질랜드에서 신앙생활을 하든 우리들 모두를 뭐라고 부르냐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가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입니다. 근데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단어가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가르친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약간 놀리려고 조롱하려고 만든 단어입니다.
그런데 처음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불림을 받았던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교회에서부터 불림을 받았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냐면 지금 우리로 치면 이민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력한 핍박 가운데 강제로 흩으셨고 그렇게 흩어졌던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줬던 교회, 다른 나라, 도시에 세워줬던 이민교회가 안디옥교회였던 것이죠. 그 안디옥교회 교인들에 의해서 2000년 후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호칭이 처음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기에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호칭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사도행전 13장 1절과 2절을 읽어보면 그 교회의 특징이 나오는데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가 회복해야 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됩니다.사도행전 13장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말씀을 보면 지금 안디옥교회의 구성원, 여섯 사람의 이름이 나와요. 물론 이들은 안디옥교회의 리더입니다.
먼저 그 구성원을 보면 먼저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에 존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은 경제적인 여력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도들을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나바가 하는 이야기는 경청합니다.
당시 안디옥교회의 리더 여섯 명 가운데 한 사람 중에 사울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예수님을 믿던 자들을 핍박하는 자였죠. 그러나 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은 사울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때 자기의 명예를 걸고 사울을 추천해줬던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만큼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믿음을 주었던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바나바는 성품 또한 좋았습니다. 아무도 사울을 품지 않았는데 그 사울마저 품었을만큼 성품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으론 니게르라 하는 시몬이 등장합니다. 니게르라고 하는 시몬은 대다수와는 다른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이었지만 지도자 중에 한명으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또한,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있습니다. 여기서 구레네는 그때 당시 소외 받은 지역이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람들로부터 별로 존중받지 못하는 지역의 사람이었어요. 이어서,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마나엔이 있습니다. 마나엔은 당시 지역을 다스리던 왕 헤롯과 같은 유모 밑에서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이었던 것이죠. 즉 마나엔은 그때 귀족이었던 자입니다. 왕과 같은 유모 밑에서 젖을 먹었다는 얘기는 곧 그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이 있습니다. 아까 말했던 사울은 예수교를 핍박했던 사람이고 나중에 회심했던 사람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은 다양했다라는 것입니다. 다양함을 갖고 교회에 모였지만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아름답게 공동체를 이루었던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던 것입니다.저는이 모습이야 말로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될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는 특정한 인형을 가진 사람들 특정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 특정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가 돼서 함께 마음을 합해서 합력해서 그리스도의 선을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취미, 다양한 삶의 모습 또는 심지어 인종도 다르고 언어가 좀 다르더라도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하나가 돼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뉴질랜드 광림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어서 안디옥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선교사를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최초의 선교사를 보내는데 바로 바나바와 사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파송된 이유가 특출함, 특별함이 아니었습니다. 2절 3절 말씀을 보면 온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니까 순종해서 자기들의 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성도님들, 여러분 가운데 중요한 선택과 결정 앞에서 내 생각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그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신 보다 앞서는 교만한 교회가 아니라 그분의 인도하신 가운데 겸손히 따르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순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제가 성경을 어느 날 읽다가 참 부러운 사람을 발견했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볼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18장 24절 25절 말씀 보겠습니다.
아볼로라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디아스포라 출신의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두가지 언어 두가지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성경에 아볼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언변이 뛰어나며 성경에도 능통한 자” 사도 바울도 인정할 만큼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아블로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누군가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말씀을 나누고 설득하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갖췄으니 어느정도 역사가 있어야 되지않겠습니까? 그런데 25절 말씀을 볼까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죠.그러던 그에게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바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자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 가운데 함께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유익이 있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제가 지난 40년 가까이 목회하면서 보니까요. 내 자랑만 높이면 일이 되긴 되는데 갈등만 남는 경우가 많은거 같습니다. 따라서 그곳에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 성품 좋은 바나바와 복음에 사로잡힌 사도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그 능력만 본 게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응답을 구한 이유예요 왜냐하면 적어도 그들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려면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되니까 정말 그게 맞는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고 성령께서 허락하시니까 거기에 순종해서 보낸 것입니다. 저는 뉴질랜드 강림교에 있는 교회가 여러분의 재능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할까요? 이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였어요 스스로 사람들이 차별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누구든지 교회에 와서 그리스의 복음 가운데 녹아지는 교회였어요. 중요한 결정 앞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이 인도하신 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한 교회였어요. 무엇보다도 자기의 실력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맺던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을 남기는 교회였어요. 그런 교회로 뉴질랜드 교회가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드려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성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