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의자는누가 부수었을까? <교민 권정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내가 산책하는 곳이 있다. 회사 앞의 기존도로 밑으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비포장 길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나의 단골 산책로인데 예전 한국의 신작로 같은 분위기이다. 길면 더욱 좋겠지만 그래도 한번 갔다 오면 800미터 정도 나오니 몇 번 왕복하게 되면 꽤 괜찮은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산책로의 끝에는 작은 라운드 어바웃 정도 크기의 빈터가 있고 이곳에 폐수펌프 시설이 지하로 설치되어 있다. 또 키가 크고 우람한 대형 소나무가 있고 동네 개울물이 합하여 제법 커져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여튼나름대로 운치도 있어서 여기 끝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마침 쉬는 시간이 일치하는 회사 동료와 산책을 같이했던 적이 있는데 이 양반 왈, 의자를 이곳에 하나 갖다 놓으세요 그럼 나만의 작은 공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혹하여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길거리 주변의누가 버린 흰색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주워서 여기에 갖다 놓고 어떤 때는 걷다말고 한참이나 앉아있곤 했다. 가만 보니 나만 여기를 산책하는 게 아닌지라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본적도 있었다. 음…잘 갖다 뒀군그러면서내가 괜찮은 일을했다는 생각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 산책로에 최근에는 이곳 공단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동네 일반인들이 개를 끌고 왔다가 이곳에 들어와서 개들의 싸지른 오물을 치우지도 않고 가곤 한다. 그래서 나는 다니면서 일일이 작대기로 개가 남긴 오물을 길 옆으로 치우곤 했다. 아니 누가 보던 말던 자기가 관리하는 개는 자기가 책임져야지 왜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그냥 두고 가는거야! 라는 욕을 하면서 말이다. 여튼 뉴질랜드인들의 양심도 많이 변했음을 절감한다. 그래서 입구에 ‘개오물은항상 가져가세요’ 라는 팻말을 붙일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을 하는데 산책로의 마지막 부분, 큰 소나무가 있는 빈터에 웬 흰색 작업차가 파킹 해 있었다. 여기 빈터에 Waste water 를 처리하는 펌프 시설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꽤 자주 작업차량이 이곳을 드나들곤 한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Hi? 라고 차안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는데 그런 날 보고서도 이 양반은아무 반응이 없다. 통상 인사를 같이하고 받아주고 웃고 그러는데이 사람은조금 이상했다. 그냥 떨떠름한 표정이랄까?...무슨일을하다가틀킨것같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데다가내가 가져다 놓은 플라스틱 의자가 넘어져 있길래 이상하다? 그러면서 바로 세워 놓고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이 행동은아마도 이 의자는 내가 관리하는 것이야 라는 느낌을 은연중 그에게 줬다고나 할까?...
산책 나왔다가 이곳에 작업차량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다시 두번째 올 때에는 끝까지 오지 않고 이곳 공터를 앞두고 돌아가는 편이다. 서로 불편할 수 있으니…그런데 이 날은 두번째 오는 길이었지만 끝까지 오고 싶었다. 그리하여 막 이 공터가 보이는 코너에 왔는데 아뿔싸, 내가 좀 전에 세워두었던 의자가 또 넘어져 있지 않은가? 순간적으로 저 자식이…라는 욕이 나오면서 따지러 갈려 하다가 왠지 모르는 불안감에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아까 본 그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다. 무표정한, 그러면서도 무언가 나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표정, 내가 가면 다시 그 의자를 세워 놓을 것이고 그러면서로 부딪힐 수 있겠지…아마도 내 성격에 당신이 이렇게 했어요? 그랬을 것이고 그러면서 결국 그 사람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도 아니었으니 분명히 걔가 의도적으로 의자를 넘어뜨린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기가여기서 작업하는데 그 의자가 방해가 된다면 이해가 가지만 전혀 그렇지도 않은 위치에 의자가 있었으니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1990년대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적이 있었다. 나의 1,100cc 프라이드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져서 전치 6주의 중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퇴원 후 가족들과 설악산으로 놀러가게 되었는데어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 혼자 설악동 관광단지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식구들은 그때 근처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스름 무렵이었는데 길 건너편에 정차되어 있던 웬 검은색 세단에서 양복입은 건장한 남자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는 사진 한장만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당시 내 나이가 30 초반이었으니 팔팔한 시기였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곳을 벗어났다. 어찌 보면 참 비겁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사진 하나 찍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그러나 그때 한국에서는 사람을 납치해서 새우젓 배에 태운다, 서해안 염전에 강제노역을 시킨다, 뭐 이런 이야기가 돌아다니던 때였다. 예전의 나 같으면 그래 잡아 갈려면 가라, 한번 붙어보자 이런 마음이었지만 교통사고 퇴원후라 몸도 마음도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다시 현재로 와서, 그날 산책은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가지 않고 공터 전의 코너까지 즉 그가 보이기 직전 까지만 가는 것으로 해서 예정한대로 여섯바퀴를 돌고서 회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날 다시 이곳으로 산책을 했는데 아뿔싸, 그 사람이 있던 빈터에 있어야 할 나의 플라스틱 의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그러면서 샅샅이 흔적을 찾아보는데 흰 플라스틱 조각 일부가 개울로 연결되는 곳에 떨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확 끼쳤다. 의자를 부쉈구나…그리고 더 작은 파편 몇 개도 의자가 위치했던솔잎속에서 발견했다. 이 날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그 기분 나쁜 사람이 부수었는지 아님 다른 사람이 부수었는지 였지만,결론은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 사건을전에 같이왔던 회사 동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풀어내는데, 하는 이야기가 아마도 발로 밟아서 조각을 내어서 개울로 던졌을 것이라고…그럼 왜 그랬을까요? 그랬더니 백인들은 싸이코가 많지 않습니까?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의자를 발로 찼는데 웬놈이(나) 와서 다시 세우고 가니 더욱 오기가 나서 밟아서 작살을 내었고 자기가 한 짓을 감추기 위해서 물속으로 던졌다는 그런 추리였다. 그러면서 조심하세요, 별거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잖아요. 결국 그때 그 사람한테 다시 가지 않고 그리고 언쟁도 하지 않은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지금 세상은 이곳 뉴질이 이상하기보다는 전세계가 다같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양반의 ‘백인들이 싸이코가 많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남았는데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미국 유학생이 오클랜드의 메도우뱅크 버스 정류장에서 공격을 받아 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공격한 사람은 비치헤번에 살고있는 16세 소년이고 그는 밤 10시경 지나가는 차에서 내려 정류장에 앉아있던 미국 유학생을 묻지마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보도가 나중에 또나왔다. 아니, 요즈음 들어서 순하다고 소문났던 뉴질랜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폭행사건에 살인사건에 도난사고 등…
우리가 뉴질에 이민 온 이유 중에 하나가 이곳이 이민 받아주는 국가중에서는 사람들이 순하다는 것이었다. 최근까지도 나라는 좀 후지지만 그래도 순하다는 것 하나로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는 착했던 여기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나같이 저소득층이나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의 사람들은 아마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질만능의 대한민국에서 물질만능이 덜한 뉴질랜드로 왔건만 이곳 또한 낙원은 아니었다. 여기 수많은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가운데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가기 가지의차별과 보이지 않는 장벽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모멸감, 자괴감과 후회, 거기에 상응하는 두고 온 조국에 대한 연민 등…
이런 상황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이곳 뉴질랜드에서의 실종자 수가 궁금해졌다. 구글에서 서지를 해보니 1년에 8천건의 실종신고가 보고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중 대부분은 2주안에 찾게 되고 350명 정도가 1년을 넘긴다고…결국 350명이 뉴질랜드의 1년 실종자의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매년 7만명 이상의 성인이 실종되고 그중 1천명 이상은 시신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실종자 중에서 약 1% 정도는 범죄와 연루되어 있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걸 봐서는 대한민국을세계적인 안전한 국가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일본의 실종자는 10만여명, 중국은 100만여명으로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이니 실종자도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이 단연 압도적 1위이다.그렇지만 여기에도 일본 사람들은 성격상 신고를 잘 안하고 그리고 중국의 통계는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통계만 가지고 한국이 더 위험하다 라는 이야기는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여튼내가 여기서 의자 하나 부숴졌다고 싸잡아서 뉴질랜드 백인들의 사이코 운운은 어찌 보면 씨알이 안 먹히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이곳의 여러 사건 사고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관념으로는감히 생각지도 못했던희한한사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오클랜드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모든 직업의 한국인들이 그리 느끼겠지만 그중 보통사람들 혹은 그 이하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네 기사들은 하루하루가 서바이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물론 오클랜드 어느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기사 로서의 삶이 점점 고달퍼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과장되기도 했지만 폭행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거지만 버스기사 노조의 최근 논평을 올리면서 이 글을 마친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고, 인종차별적 폭언, 성희롱 등을 당하면서 버스 기사들은 매일 같이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며, 퇴근 후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교민 권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