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일생과"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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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일생과"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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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일생과"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4천 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한 사람》



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믿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서로 다른 신앙의 길을 걷는 듯 보이는 이 세 종교가 한 뿌리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을 의외에도 많은사람들이 모르고 있슴니다. 
그 거대한 뿌리의 시작점에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_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 ‘우르’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향했던 그의 발걸음은 인류 정신사의 가장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__이 글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여정을 따라가는 한 편의 기행문이자, 그가 어떻게 세 위대한 종교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삶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특히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어떤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흥미롭게 따라올 수 있는 지적 순례의 길에  교민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1,믿음의 여정,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서

ㄱ)익숙한 세계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성경,창세기 12장)

__우리의 여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위치한 번영하는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됩니다. 달의 신 ‘난나’를 섬기는 거대한 지구라트가 도시의 중심을 차지하고,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던 곳. 이곳에서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이라 불리던 한 사람은 어느 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음성을 듣습니다.
<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__이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한없이 무모한 명령이었습니다. 안정된 기반과 익숙한 문화를 모두 버리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땅으로 떠나라니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즉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아내  사라,조카 롯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의 첫걸음은 안락한 현실에 대한 ‘결별’이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전적인 신뢰’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__하란을 거쳐 마침내 도착한 가나안 땅.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가 아닌, 낯선 이방 민족들과 혹독한 기근이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잠시 떠나 이집트로 피신하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는 점입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모습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약속의 좌표를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치열한 분투를 보여줍니다.

 ㄴ)세종교의 분기점! 믿음의 조상이 되다!

__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 사라!, 시간은 흘러 아브라함의 몸은 늙고 아내의 태는 죽은 것 같았습니다. 상식과 경험이 ‘불가능’을 외칠 때, 하나님은 밤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창세기는 이때 아브라함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 15:6)

바로 이 지점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의 의로움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거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 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신칭의, 以信稱義)’이라는 개념은 훗날 기독교 신학의 핵심 기둥이 됩니다.
                                                                                          ----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사상: 이신칭의-----
__하지만 인간적인 조급함은 또 다른 드라마를 낳습니다. 아내 사라는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리고 13년 후, 하나님은 99세의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이 태어날 것’이라는, 실소를 자아낼 만큼 비현실적인 약속을 하십니다.
이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은 훗날 세 종교가 아브라함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게 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 유대교에서 아브라함은 ‘첫 번째 유대인’이자 민족의 시조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Covenant)’의 백성으로서, 할례라는 육체적 증표를 통해 그 관계를 이어갑니다. 유대교는 이삭으로 이어지는 혈통적 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성한 권리로 간주됩니다. 그에게 아브라함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입니다.

 * 기독교에서 아브라함은 혈통을 넘어선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나니”라고 선언하며,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 즉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그의 영적 자손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기독교는 이삭을 통해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의 근원’ 약속의 최종적 성취라고 믿습니다.

 * 이슬람교에서 아브라함(아랍어로 ‘이브라힘’)은 무함마드 이전에 온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이자,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유일신 알라에게 온전히 ‘복종(이슬람)’한 최초의 무슬림, ‘하니프(Hanif)’로 존경받습니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이스마엘(이스마일)을 통해 아랍 민족이 이어졌다고 보며,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을 지었다고 믿습니다. 이슬람 최대의 축제인 ‘이드 알아드하(희생제)’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순종을 기리는 행사입니다. (이슬람에서는 그 아들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__이처럼 세 종교는 각기 다른 아들을 통해 아브라함과의 연결고리를 찾지만, 공통적으로 그를 유일신 신앙의 개척자이자 신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걸고 순종한 위대한 모델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세 종교가 공유하는, 즉, 현대인속에 내재된  거대한 신앙의 원형(Archetype)인 셈입니다.


2, 현대인의 실존에 울리는 아브라함의 메아리 - 키에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__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대의 종교적 서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삶의 정점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 철학의 문을 열었고, 지금도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모든 이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바로 100세에 얻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선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ㄱ): 실존주의의 탄생과 ‘모리아 산의 역설’
19세기 덴마크, 근대 합리주의와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한 신학자이자 철학자가 홀로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그는 집단과 시스템 속에 매몰되어 개별자로서의 ‘나’의 고유한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위기를 통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칼을 뽑아 든 텍스트가 바로 창세기의 ‘이삭 번제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주저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은 이 사건에 대한 충격적인 철학적 명상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던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살인자인가, 신앙의 영웅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살인하지 말라”는 인류 보편의 윤리적 명령입니다. 아들을 죽이라는 신의 
명령은 이 윤리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따라 이삭을 죽였다면, 그는 윤리적으로 파렴치한 살인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를 수 있는가?

__키에르케고르는 여기서 충격적인 개념을 제시합니다. 바로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Teleological Suspension of the Ethical)’**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는 신과의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관계 앞에서는, 보편적인 윤리 법칙이 일시적으로 ‘정지’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보편 윤리의 세계를 넘어, 신과의 개인적 관계라는 더 높은 목적(Telos)을 위해 홀로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ㄴ)‘비극적 영웅’을 넘어선 ‘신앙의 기사’

키에르케고르는 그의저서 "공포와 전율" 에서 아브라함을 그리스 비극의 영웅 아가멤논과 비교합니다. 아가멤논 역시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트로이 원정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한 것이었고, 모든 백성이 그의 고뇌를 이해하고 슬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희생은 보편 윤리의 틀 안에서 이해 가능한 ‘비극적 영웅’의 행동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그의 행동을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 사라에게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소”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아들 이삭에게 “내가 너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신의 명령 때문이란다”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그의 결단은 세상의 어떤 윤리나 상식으로도 설명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는 침묵 속에서, 오직 '신과 나'라는 단독자로서 마주 서야 합니다.
이 고독과 불안, 즉 ‘공포와 전율’ 속에서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기는 역설적인 도약을 감행하는 자, 그가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신앙의 기사(Knight of Faith)’**입니다. 그는 합리적 이성과 보편 윤리의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불합리의 영역’으로 도약합니다. 신이 이삭을 죽이라 명령했지만, ‘동시에’ 바로 그 신이 죽은 이삭을 다시 살려주시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는 ‘불합리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키에르케고어는 현대실존주의의 창시자로서," 야스퍼스" 와 함께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서 후대에 평가받고 있슴니다(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카뮈,싸르트르,프로이드)

ㄷ) 키에르케고르에서 우리에게로! 당신의 ‘모리아 산’은 어디입니까?

이것이 왜 현대인에게 중요할까요? 키에르케고르가 본 현대는 신과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__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실존적 상황에 내 던져진 존재들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불확실한 꿈을 향해 떠나는 청년, 사회적 통념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홀로 ‘예’라고 외쳐야 하는 순간들. 이 모든 것이 우리 각자의 ‘모리아 산’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정답이나 타인의 이해를 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단독자로서 ‘나’의 결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공포와 전율’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___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이러한 실존적 불안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체적인 개인’으로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적 상징이 됩니다. 그것은 맹목적 순종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가장 깊은 신념을 향해 몸을 던지는 ‘실존적 도약(Leap of Faith)’의 용기입니다.

ㄹ)맺음말: 과거의 순례자, 미래를 비추는 등불

아브라함은 4천 년 전, 약속의 땅을 향해 걸었던 순례자였습니다. 그의 여정은 세 개의 거대한 종교를 탄생시킨 정신적 모태가 되었고, 그가 모리아 산에서 겪었던 실존적 고뇌는 현대 철학의 심장을 관통하며 오늘 우리에게까지 생생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당신의 삶을 이끄는 약속은 무엇인가? 
당신이 홀로 결단하고 책임져야 할 당신만의 ‘모리아 산’은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오래된 종교 경전 속의  박제된 신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유일신 하나님에대한 순종적이고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든 현대인의 실존적 여정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뉴질랜드로 이주해 오셔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교민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 4천 년 된 순례자의 담대한 발걸음이 깊은 영감과 용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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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표
전오클랜드한인회장
*연세대졸업(신학사),
*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M.B.A)
*한신대 신대원 M.Div졸업( 신학석사)
*한신대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P.h.D)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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