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왔다 !

교민뉴스


 

드디어 그날이 왔다 ! <교민 권정철>

일요시사 0 20 0 0


예전의 회사는 주변에 숲과 공원을 끼고 있어서 나처럼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혜의 공간이었다. 그리하여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브레이크 타임이 되면여기저기헤집고 다니면서 30분짜리, 1시간짜리 심지어 3시간짜리 코스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동료들과 함께 워킹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회사를 옮기면서 이곳에 오고부터는답답하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회사가공단에 위치한 관계로 돌아다닐만한마땅한 녹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겨우겨우찾아낸 것이회사 옆으로 흐르는 개울을따라 만들어져 있는 400미터 정도의 비포장길,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공단을 가로 질러 멀리 가서 만나는 공원묘원 정도…그런데 그곳은 가다가 보면 진이 다 빠지게 되는,별로 내키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그래 까짓 거, 내가 워킹 트레일을한번 만들어 보자”라는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곳의 지형을 보면공단주변을 한바퀴 돌아서 바다로 가는 작은 개울이 있는데 다양한 이곳 공단의 회사들이 이 개울을 백그라운드에 두고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각 회사가 그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어느정도의 부쉬지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곳을잘 개척하여 다듬어 놓으면 그야말로 개울을 낀 멋진 워킹 코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언제 실행에 옮길까? 하다가 모든 공단의 회사가 문을닫는 국경일이나 연말연시의 연휴기간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원래 이런 짓을 좋아한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나의 특기였다고 할까?젊은 시절을 산악부에 있으면서 여기저기 쏘다닌 것 하며 가장 추운 겨울날에 홀랑 벗고 한밤중에 뜀박질하는 것도 있었고(다 벗은 것은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동굴속을 나 혼자 들어가서 무서워하면서도 반대편으로 나온 적도 그리고 계곡에서 다이빙하다가 물속의보이지 않던 바위와 박치기를 해서 거의 죽을 뻔 한적도…그리고 어린 시절엔 재미로 벌집을 건드렸다가 떼거리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친구들과 함께 파리채 전쟁을 벌이면서 수십방을 쏘인적도 있었다. 


군대 마치고 직장 생활할 때에는 집이 강동구 명일동이었는데 직장이 있는 망우리까지 걸어서 다닌 적도 있었다. 산을 좋아하니 광진교를 건너 아차산, 망우산을 거쳐서 출근을 했다가 또 다시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하는…한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산친구들을 모아서 러셀이 아직 안된 설악의 서북주능선을, 우리 아니면 못할 거라는 자부심으로 오르기도 했다. 동계 서북주능선은 대한민국 극난의 코스 답게 우리가 5번 도전해서 겨우 2번 성공을 했던 곳이다. 지금도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 난리 쳤던우리들의 이야기를 무용담이랍시고 한참을 떠들기도 한다. 같은 설악이지만 어느 해 겨울엔 곰골 능선에서 영하 25도를 만났었는데 우리가 경험했던 그 어떤 추위보다도 대단했다. 히말라야까지 갔다 온 우리였지만 그날 텐트에선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추웠다. 할 수 없이 텐트를 나와서 모닥불을 피우면서 밤을 지샜는데 불길이 닿는 쪽만 따뜻하고 그러하지 못한 우리 몸의 뒷부분은 거의 얼음장 수준이었다. 게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에 밥을 해먹는데 수저가 잘못해서 입술에 닿게 되면 얼어붙어서 그것을 떼어 내는데 무지 조심을 해야 했다. 입술이 찢어지니까…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러다가 죽는다. 돌아가자. 그래서 백담사 쪽으로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공단의 모든 회사가 문을 닫은 이번 킹스 버스데이 공휴일, 마침 나의 시프트는 일을 해야 했는데 브레이크 타임이 장장 3시간이나 되었다. 그래 오늘이 그날이구나, 기다려라 부쉬야 내가 간다! 비장한 마음으로 브레이크 타임에 회사를 나섰다. 일단 내가 잘가는 강 쪽으로만들어져 있는 400미터짜리 워킹로를 가다가 막바지에 길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왼쪽의 부쉬지대로 들어섰다. 처음엔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있는 듯했으나 곧 아무도 다니지 않은 원시림이 나타났다. 나한테 허락된 시간은 3시간, 충분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회사 일이 오후에 또 시작되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데다가다양한 나무들이 나를 가로막았고지면의 굴곡 또한 심각한 수준이어서 눈앞에 바로 보이는 곳을 갈려면 여러 번 이쪽 저쪽으로 다니면서 전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첫번째 회사의 부숴 지대를지나고 두번째 회사 쪽으로 왔는데 여기는 파이프 만드는 회사인가보다. 파이프가 회사 마당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쉽게 갈려면 회사의 울타리가 있는 즉 부쉬 지대가 시작되는 경계선철망 쪽이 그래도 완만하고 좋은 편인데 그렇다고 남의 회사 울타리에 바짝 붙어서 워킹로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좀 더 강 쪽으로 즉 회사와 어느정도 떨어져서 길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 굴곡을 넘고 넘어져 있는 큰 나무를 지나고 어지럽게 뻗어있는 나뭇가지와 풀숲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란 걸 점점 느끼게 되었다. 날씨는 그렇게 춥거나 덥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정글도를 구해서 이번 워킹 트레일 개척에 사용하려고 했는데 구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정글도를 휘두르는 것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이것 또한 문제가 될거 같기도 해서 그럼 집에 있는 식칼을 잘 갈아서 사용해 볼까? 라는 웃기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다가 에이…공장 지대 숲이 얼마나 우거졌을까? 그냥 맨손으로 해결하자. 그래서 가든 장갑만 하나 끼고서 열심히 전전 또 전진을 하고 있다. 벌써 내가 지나온 길에는 부러진 가지와 손과 발로 누르고 끊어내고 치워버린 수풀의 잔해가 널브러져있다. 오늘이 법정 공휴일이어서 망정이지 일하는 사람들이 봤으면 쟤 뭐하나? 그랬을 걸로 보인다. 아마도 이렇게 길을 낸 다음 나 혼자라도 한달만 열심히 이곳을 다니면 훤한 길이 만들어지겠구나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가니 이번엔 큰 콘크리트 더미가 숲 속에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걸 버렸다기 보다는 공단이 조성되기 전의 이곳에 있던 어떤 회사의 잔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큰 나무가 통째로 뽑혀 있는 것도 보인다. 이것은 뉴질랜드 삼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인데 뿌리가 깊지 아니하니 세찬 바람에 넘어진 것이다. 뉴질랜드 나무의 뿌리가 깊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이곳에 오셨던 전문가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시사철 비가 적당히 내리니 나무가 깊이 뿌리내려서 수분을 흡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하나는 자갈이 많아서 나무가 뿌리내리기가 힘든 나라라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자가 더욱 맞는 말아 아닐까 한다. 여기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서 나태하듯이 나무 또한 추운 겨울이나 억센 환경이 아닌 만큼 적당히 뿌리내리고 살다 보니 바람에 쉽게 넘어진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우리 집 나무가 강풍에 넘어지면서 내 차를 덮쳤다. 결론은 폐차…


그러다가 눈앞에 작은 도랑이 나타났다. 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직접 건너기에는 무리가 있어 할 수 없이 좀 더 상류로 올라가는데 평평한 곳이 없다. 급기야 무너진 나무를 타잔처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기도 하고 길을 찾아 어느 회사의 울타리 쪽으로 가기도 하면서 지그재그로 진행을 했다. 마치 겨울 설악의 서북주능에서 길을 놓쳐서 걷기 좋은 능선을 향해 약전고투로올라가듯이 조금씩 조금씩 도랑의 상류로 진행을 했다.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벌써 한시간이 넘어 간다. 동료가 있었으면 이럴 때 힘이 되는데 아무도 나의 계획에 선뜻 나서지를 않았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 나 좋아서 내가 하는데 무슨 불평이람…


상류 개울에 내려섰다. 가장 얕은 곳을 건너서 이제 도랑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뭔가 붙잡고 몸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마땅하지가 않았다. 거의 90도로 파인 도랑, 할 수 없이 작은 나무를 통째로 움켜지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나무가 뽑히면서 나는 뒤로 나뒹굴게 되었다. 이럴 때 배낭을 메고 있었으면 덜 아플 텐데 맨몸이다 보니 바로 물이 흐르는 개울로 쳐 박혔다. 어이쿠! 잠시동안 멍하니 그 상태에서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너 뭐하냐?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쪽 팔려서 얼른 일어났다. 몸은 괜찮은데 뻘이 잔뜩 있는 개울 바닥으로 인해서 쳐 박힌 부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약이 올라 씩씩거리면서 맑은 물가로 가서 옷에 진흙 묻은 것을 닦아내고 다시 전진…


도랑을 지나고 부터는 갑자기 초지가 나타나서 진행하기가 쉬워졌고 멀리서 선착장 같은 곳이 보였다. 저기가 오늘의 개척 트레일 마지막 지점인 것이다. 예전에 여기 윗동네인 데어리 플랫에서 선박을 통해서 바다로 물건을 실어 나갔을 때 사용했던 선착장인가 보다. 아마도 만조시에만 배를 띄웠을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 여기까지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늘 개척을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 조금만 길이 빤질빤질 해지면 30분도 암 걸리리라. 그럼 선착장을 올라서 기존 도로와 연결하고 또 기존의 강변 신작로길과 합해지면 대충 1시간짜리 워킹 트레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고 완전히 한바퀴 도는 워킹로가 되는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선착장을 올라서 기존 도로 쪽으로 나가는데 큰 배를 수리하는 회사를 지나게 되었다. 배가 크네…요트쯤 되나 보다. 그러면서도 불현듯 나도 뉴질랜드로 올 때는 저런 배도 한번 타보겠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래 그랬을 거야 그런데 이제는 나이도 많아졌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대여! 아직도 저 배를 타고 싶은가? 그러면 꿈을 가져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교민 권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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