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7) 더 높은 곳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7) 더 높은 곳 <데살로니가후서 3:1~5>

일요시사 0 15 0 0

오늘은 종교개혁 50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논제]를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의 개혁의 열망 가운데 마틴 루터는 선봉장이 되어 힘겹고 어려운 싸움을 감당해 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역사는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 정신은 비슷합니다. 존 웨슬리 역시 성공회 안에서의 영적 갱신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이와 같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를 붙잡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 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게 늘 반복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끊임없이 스스로 갱신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노라.” 설교 후에 부를 찬송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입니다. 이 찬송의 배경이 앞서 말씀드린 빌립보서 3장 14절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지금의 현실에 무뎌지지 않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서 소망을 둘 곳은 이 땅의 삶이 아니라, 저 높은 곳, 즉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위를 바라봐야 합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더 높은 곳, 내 신앙의 지향점을 다시 한 번 내 안에 새겨가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더 귀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호렙산기도회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새벽마다 주의 몸 된 제단에 나와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은 무엇을 구하고 계신지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구하십시오 무엇이든지 구하고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오늘 제목처럼 ‘더 높은 곳’이라는 신앙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더 귀한 것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앞선 2장의 주요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하늘의 소망을 품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이 있을지라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리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 “끝으로 형제들아!” 마지막 중요한 당부를 전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대적자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기도 부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너희들의 믿음 잘 지켜가는 것,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한다.” 또 하나는 항상 기도할 것은 “내 유익이나 부함이나 평안함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길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제가 바울은 아니지만,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더 귀한 것을 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삶을 위해서 구하기도 바쁘지만,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 내 가정, 내 사업장, 내 자녀 위해 간구하는 것만 해도 벅차지만, 나와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기도할 수 있는 것, 그게 더 귀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쌓여가면, 어느새 내 기도가 큰 기도가 됩니다. 나라와 민족과 이 땅 뉴질랜드와 온 세계를 품는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까지 더 커져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크고 위대하신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더 귀한 것을 먼저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의 삶에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도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세밀한 응답”도 허락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날마다 더 귀한 것을 구하는 영적 기도로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더 귀한 곳에 거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과 나이와 직업과 성별 등 그 모든 것에 따라서 어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 맞춰 서 있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은 영적인 자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를 비롯하여 초대교회 전체를 보면 거짓 교사들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저들을 격려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확신 있는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굳건하게 붙잡아 주시고, 악한 자의 손에서 지켜주실 것이다.”그런데 이는 하나님 편에서 행하시는 일방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이지만, 동시에 나도 그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더 귀한 곳에 거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내가 말씀과 기도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나도 하나님을 모시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 바울은 이 사실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기에 너희들을 악한 세력에서 건지시고 지키실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도 그 안에서 내가 예전에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 그 가르침을 붙잡고 그대로 행하고 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 결과 더 귀한 곳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적으로 믿음의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실제적인 내 삶의 자리에 있어서도 더 귀한 곳을 찾아갈 수 있고, 지켜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나이가 들어가면, 신앙의 연수가 더해지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가면, 그에 마땅한 자리가 있습니다.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직임도 직분도 사명도 있습니다. 그걸 깨달아 알고, 맡겨진 자리에 충성하는 것이 더 귀한 곳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먼저는 영적인 신앙의 자리를 하나님의 붙드심과 나의 결단으로 잘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직임과 직분과 사명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원하시는 곳, 내가 감당해야 할 곳, 더 귀한 곳에 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더 귀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제가 계속해서 “더”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요? “더”라는 말에는 비교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비교인가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보다 더” 라는 의미도 있고, 이전의 나 “보다 더”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다 지금 당장 자신의 유익만을 구할지 몰라도, 예수 믿는 나는 더 귀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5절에 두 가지를 말씀하죠.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는데, 그 결과로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이 안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동시에 여기에는 인간 편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의미도 담겨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증거가 됩니다.  이어서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도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먼저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조롱과 고통을 다 견뎌내신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에도 인간 편에서의 그리스도를 향한 인내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으로는 우리가 5절까지만 읽었지만, 이어지는 3장 전체의 말씀을 보면,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관한 권고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말씀이 바울과 그 일행들의 본이 될만한 모습을 기억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을 향한 권고합니다. 

  

그래서 본문 2절 후반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예수 믿는 것에 차별이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죠. 바울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때로는 강하게 경고함으로 더 귀한 삶을 살 것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 마음대로 살아가겠다는 자들은 예수 십자가의 은혜도 함께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자녀가 되었고, 주의 백성이 되었기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귀한 삶, 다른 세상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보다 “더” 귀한 삶, “더” 높은 곳, 저 하늘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날마다 “더” 귀한 삶으로 올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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