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61); 사랑으로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61); 사랑으로 <고린도전서 13:1~8,13>

사랑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실제입니다. 실체가 없어보이지만, 실제입니다. “사랑해!” 말만 가지고는 실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행동이 필요하고 삶이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요한일서 4장 9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실제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요,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실제가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우리로 하여금, 받은 바 주의 사랑을 내 삶의 실제로 실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어떻게 주의 십자가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제자된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사랑이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옛날 인도의 한 왕국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지혜로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1년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왕은 아주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덩그런 무덤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왕은 조각가를 시켜서 자신을 상징하는 멋진 남자조각을 무덤 동편에 세우게 했습니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잠깐 가서 쉴 수 있는 멋진 집도 하나 지어라. 연못도 아름답게 만들어라. 꽃밭을 일구어라. 성곽도 쌓아라.” 몇 해가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나니 한결 보기 좋아 보이고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어울리지 않는 게 눈에 띄어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여봐라. 저 무덤을 치워버려라.”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게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까지는 지금 말씀드린 예화와 같은 내용입니다. 한 번 볼까요? 먼저 1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람과 방언과 천사의 말”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뜻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은사주의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최고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지적하는거죠. “너희들이 암만 방언을 말하고, 각종 은사를 두 개 세 개씩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사람들을 무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면 너희들의 은사는 모두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이어서 2절도 보십시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여기도 예언이라는 은사를 말씀하죠. 거기에 신앙적인 지식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고 큰 믿음이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 거예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사랑 없이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 아무리 은사가 있고,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정작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3절에도 말씀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서는 구제와 헌신에 대한 말씀이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줍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만큼 헌신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내 신앙의 삶, 그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 그 중심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내 중심에 주의 사랑을 품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은 할 수 있게 합니다. 


본문을 보면 4절에서 7절까지 사랑의 모습 열 다섯 가지를 소개합니다. 내용을 보면, “한다”라는 긍정적인 표현이 일곱 번, “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여덟 번 나옵니다. 먼저 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표현은 4절 전반부에 두 가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초대교회 성도들은 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안오신단 말이죠. 고난과 환란 중에 믿음을 잃고 신앙을 포기하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예수님! 언제 오시는건가요? 왜 이렇게 더딘가요?” 원망하듯이 기도하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오래참으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지금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온유도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둘러선 모든 무리들을 한번에 심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유함으로 죽기까지 참으십니다.

  이어서 6절부터 7절까지 사랑의 긍정적인 속성을 계속 말씀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처음에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게 한다.” 참된 기쁨, 곧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볼까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네 번 똑같이 말씀합니다. “모든 것” 여기서 모든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를 향해서나, 모든 것을 불문하고,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딘다. 여기도 처음에 나왔던 “참으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참는다기보다 덮어준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주는 겁니다. 

이어서 “믿으며”는 말 그대로 믿는 것, 즉 신뢰를 뜻합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누군가 어떤 상황이 부족해보여도 믿어주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라며”는 소망이죠.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소망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기대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견디느니라” 고통과 어려움 아래에서 버텨내는 것을 뜻합니다. 내게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버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의 사랑이 심겨져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사랑이 있으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선 긍정적인 표현과 함께 사랑이 있으면 “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4절 중반에서 6절 중반까지 여덟 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4절에 나오고 있는 세 가지, “시기, 자랑, 교만하지 않는 것” 이건 한 묶음입니다. 시기와 자랑과 교만은 함께 가는 겁니다. 이 안에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다른 사람과의 비교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시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내가 뭔가 뛰어나다고 해서 생각없이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교만하게 으스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이러한 비교 자체를 하지 않게 합니다. 정말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합니다. 서로 비교하고 따질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시기와 자랑과 교만을 그치게 만듭니다. 


이어서 5절에 네 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례함은 영적인 것, 삶적인 것을 다 포함합니다. 이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내 이익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으면 어떻게 내 이익만 추구하며 살아가겠습니까? 도리어 사랑이 있으면 내 것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섬기고 나누고 베풀게 됩니다. 이어서 “성내지 않는다.”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은 성내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이 성냄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 안에 품은 사랑이 크면, 그 사랑으로 성냄을 녹여냅니다. 또 하나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악한 것은 “원한”을 뜻합니다. 복수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말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으로 원한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6절에 하나 남았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불의는 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짓는 순간 불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불의한 우리들이 의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한 자는 지극히 당연하게도 불의를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주의 사랑이 심겨져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이 모든 더러운 것을 하지 않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 중심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해야 할 것 할 수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 하지 않을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럼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오늘 주신 바 말씀에 비추어, 우리는 얼마나 주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또한 그 사랑을 실제적인 삶에 실현하고 있는지요? 우리들은 모두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사랑의 실제, 그 사랑을 체험한 자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며, 받은 바 주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비춰가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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