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 버린 파랑새

손바닥소설

날아가 버린 파랑새

일요시사 0 2631
 

 * 변경숙 *

날아가 버린 파랑새
"
찌지직, 찌지지 " 박스포장 테이프 찢는 소리에 철렁철렁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지난 몇 주일째 딸아이 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음을 듣고 싶지않아 그녀의 방과 마주하고 있는 내 방문을 꼭 쳐닫고 있어봐도 여전히 점점 더 크게 메아리쳐 들려오니 가슴을 짓누르는 것 만 같다.

이제와서 후회한들 어떡하랴- 백번천번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 봤지만 이미 딸아이에게 분노로 내 뱉아버린 말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오랜세월 동안 영국인 남편과 살면서 이젠 동.서양의 차이를 알만큼 겪어왔다고 자부했었는데 또 한번 큰 실수를 한것이다.


3개월전, 딸아이와 말 다툼이 있었던 그날밤 조금만 더 참을 것을 그 순간의 분노 때문에 우리집안은 쑥대밭이 된셈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미 작년에 대학 4년을 졸업한 딸이 전공과는 다른 분야인 카운셀링 3년 과정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해서 일어난 일이다.(이분야는 대부분 종교단체에서 무료봉사를 하게 되는 모양이다.)


많은 뉴질랜드 학생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학자금을 빌려쓰듯이, 딸아이도 이미 정부에게 빚을 진 셈이니, 이제 마땅한 직장을 구하고 그 학자금을 먼저 갚으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Student Loan으로 무료 공부하고 그냥 해외로 빠져 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 평소에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남편도 거의 나와 같은 생각이기에 아빠로서 딸아이에게 충고 한마디 해주십사고 요청하였건만 끝끝내 묵무무답이다.

수 차례의 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침묵하는 그의 태도에 점점 화가 나던차에, 그날밤 "엄마말에 경청하지 않으려면 3주안에 짐싸들고 나가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마자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하더니, 어딘가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모양이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수십개의 빈박스를 사들이더니 그날부터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찌지직 찌지직" 테이프 찢고, 부치고, 책상, 침대, 유효기간 지난 여권까지 모조리 챙겨 3주째 되던날 집을 나가버렸다.

이세상의 어느부모가 자녀들이 집나가서 고생하길 바랄까?


경제적인 자립이 없는 상태이니 말이다. 3주안에 나가라고 했지만 사실 속 내마음은 진정 나가길 바란것이 전혀아니고 3주동안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재 고려하길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인데....

아이는 그대로 직선적으로 받아들인것이다.

오래전, 벌써 25년전이 된 듯 싶다. 뉴질랜드 이민와서 처음에 참 견디기 힘들었었다.

모든것이 낯설고, 주변 키위들의 사고방식 관습은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아이들을 키우기도 힘들고해서 어느날 홧김에 "에이 아이들 모두 데리고 한국으로 갈까부다" 하고 내 뱉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편은 나의 푸념섞인 그 말을 그대로 직선적으로 받아들여 진짜 한국으로 갈까봐 내 여권에 우리아이들이 뉴질랜드 땅에서 한발자욱도 나갈 수 없도록 법적조치를 해 놓은 적이 있었다.


그건 그냥 빈말로 해 본 말이지 실제로 가당치나 한 말인가, 아무튼 속상 할 때 우리가 무심코 한 말이 서양인들에겐 그대로 직선적으로 받아들여져 아주 나쁜 결과로 되는 예를 종종 보아왔다.

딸 아이의 목표에 남편도 그리 탐탁치 않았지만 어른들의 현실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 보다, 딸아이가 원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끝내 침묵을 지킨것이라는 것을 난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집나가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워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하고 있다.
어느 키위친구 엄마가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주고 하겠냐 말이다.
이세상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더니...

이제와서 가슴을 쳐 본들 한번 내뱉어버린 내 말의 실수를 다시 쓸어 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잘해 주려고 했던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날아가버린 파랑새" 더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언젠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 할 때가 오겠지...
처절한 댓가를 치루고 난 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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