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Z역사] Anzac과 제1차 세계대전 터키의 Gallipoli 전투

손바닥소설


 

[NZ역사] Anzac과 제1차 세계대전 터키의 Gallipoli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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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zac과 제1차 세계대전 터키의 Gallipoli 전투

ANZAC는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의 약자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Gallipoli 전투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 참전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4월 25일을 안작 데이로 제정하고 있다. 안작(ANZAC)은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의 약자로 정부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세계 각처의 전장에서 희생된 뉴질랜드인과 호주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안작 데이를 공휴일로 지정, 각종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안작 데이가 처음 생기게 된 연유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Gallipoli 반도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이 상륙한 일에서 찾을 수 있다.
1차 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동맹의 한 축이었으며,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인 터키는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
1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만해도 터키는 엄연히 중립국이었지만, 내적으론 독일군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전통적인 적성국인 러시아가 독일과 대적하게 되자 터키는 자연스레 동맹국으로 쏠리게 되었고, 결국 1914년 10월말. 터키는 정식으로 동맹에 가입하게 된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막고 있는 터키는 러시아에게는 큰 압력이었는데, 이에 대비하고자 러시아는 영국으로 하여금 터키의 Gallipoli 반도 상륙을 요구한다.
영국은 무려 468,000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상륙에 나서고,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와 캐나다, 그리고 뉴질랜드가 참전하게 된다.
영국은 원정군을 구성하는데 그 편제는 다음과 같다.




- 프랑스 파견군 소속 3개 사단
- 인도 제 29사단
- 안작군단 (뉴질랜드및 호주병 혼성군단)
당시 캐나다는 30,000명을 참전시켰으며, 호주군은 20,000명을 동원해 10,000명의 뉴질랜드 군과 함께 역사상 최초로 양국 연합군인 ANZAC를 편성했다.
4월 25일에 터키와 격전을 벌이며 안작군은 어렵게 상륙에 성공, 8개월 동안 상륙지역을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한 터키와 바다로부터 가해진 독일군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철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안작군은 8,000 명이 전사하고 18,000 명이 부상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당시 식민 종주국이었던 대영제국 역시 33,000 명의 전사자와 7,600 명의 실종자, 그리고 78,000 명이라는 대규모 부상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안작군은 프랑스와 중동에서 계속 전투를 치렀는데, 그 당시 인구 100만에 불과했던 뉴질랜드는 1차 대전 동안 110,000 명이 참전했으며, 그 중 18,000 명이 전사하고 55,000 명이 부상을 당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비례로 볼 때 앵글로 색슨 민족 국가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이웃 호주 역시 당시 인구 500만명 중 33만명이 참전, 59,000 명이 전사했다.




안작 데이는 이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8개월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자유를 위해 희생된 병사들을 기념하고 그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 다음해인 1916년 처음 거행됐던 기념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비록 기념일로 제정된 초기의 안작이 공식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싸운 군대에 기인하고 있지만 뒤에 와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대까지도 포함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에 참전해 봉사했던 남녀 모두를 기리는 날이기도 하면서,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명명된 바 있는 중동전 참전 용사와 보스니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했던 이들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의미가 되고 있다.
안작 데이가 돌아오면 뉴질랜드 대부분의 기관들은 그 지역 출신의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추모하며 기념식장 가서 헌화하는 행사를 갖는다. 수년 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하나 둘씩 이 땅을 떠나감에 따라 안작 데이의 의미가 점차 상실되어 가는 듯했지만 최근 안작 데이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시민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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