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아래를 서성거리며

손바닥소설


 

가로등 아래를 서성거리며

오문회 0 2359
주말이라 밤늦도록 택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노곤함이 눈 꺼풀로 내려앉을 무렵 택시 일을 마쳤다.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차고 안이 휑하고 썰렁했다. 차를 차고에 세우고 마당으로 나갔다. 무슨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흩뿌려졌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애잔한 달빛이 구름을 뒤척이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 시선이 머물자 그만 콧등이 시큰해지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한달 전, 키우던 강아지 도티가 가족 곁을 영영 떠났다. 마지막 순간, 도티는 딸 아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 하더니 다시 뜨지 않았다. 아내와 딸아이의 슬픔에 밀려 나는 슬프다는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내 앞으로 달려 나와 허리까지 팔짝 뒤어오르며 발을 비비곤 했던 녀석, 도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도티는 십 년 전에 우리 집에 왔다. 네 살이라 했다. 이민 동기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강아지를 부탁했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내는 며칠 동안 어찌할까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티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아내도 익숙해져갔다. 낯선 곳에서 홀로 뿌리 내려야 하는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녀석이 덜어 주었다.

머루알 같은 눈망울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보는 요크셔테리어 강아지한테 아내는 푹 빠져 들었다. 중학생이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강아지와 빨리 친해졌다. 정서적으로 힘이 된 모양인지 학교에서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과도 쉽게 어울렸다. 나 역시 퇴근 후 하루 종일 쌓인 고단함이 도티의 반기는 몸짓 세러모니를 대하다 보면 스르르 사라졌다. 도티와 함께한 십 년 세월이 금세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택시가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와 내 차를 덮친 것이었다. 번쩍번쩍하는 빨간 비상등과 요란한 경적소리가 사고현장을 메웠다. 무지막지하게 찌그러진 차에서 가까스로 구출되었다. 구조대원들은 나를 들것에 실어 앰뷸런스에 태운 뒤 병원으로 달렸다. 날카롭게 울리는 비상 경적음이 심장에 꽂혔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출혈이 심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응급 치료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심한 타박 외상으로 앞니와 어금니가 부러졌다. 옆구리 통증이 특히 심했다. 발목도 뒤틀려 걸을 수가 없엇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보조 목발을 짚고서 한 발짝씩 움직일 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계속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가족을 위해 한창 뛰어야 할 가장이 일손을 놓고 있자니 마음이 잠시도 편치 않았다. 제대로 일어나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재활은 힘들고 두려웠다. 회복은 더뎠다. 아내와 딸이 일 나간 뒤 대낮에도 집안에 혼자 남아 잘 움직이지 조차 못하던 그때, 나를 도티가 지켰다. 그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 여겼는지 내 눈빛과 손짓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햇살 창가에 앉아 짓무른 상처 부위를 말리려 하면 다가와 머리를 살짝 갖다 대며 맑은 눈을 깜박였다. '많이 아프세요?'하고 눈망울이 말했다. 그 덕분인지 두 달 후 불편하게나마 목발 없이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불편한 몸으로 나마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의사는 지속적인 운동을 권했다. 일을 마친 후 저녁을 먹고서 아내와 함께 동네를 걸었다. 도티는 언제나 앞장을 섰다. 한참 가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응원의 눈짓을 보냈다. '어서 오세요' 도티는 충직한 지킴이었다. 불편한 가운데에도 매일 걸으니 산책이 차츰 몸에 익숙해져 갔다. 운동량을 두 배로 늘려 한 시간씩 걸었다. 그렇게 넉 달 가량 걷기 운동을 하자 허리의 통증과 다리의 저림이 많이 나아졌다.

어느 토요일 저녁 도티가 보디가드라도 된 듯이 앞장을 섰다. 한참을 잘 가던 녀석이 갑자기 맥없이 픽 쓰러졌다. 그저 내 걷는 속도에 맞추느라 가다서다 멈칫거리는 줄로 알고 예사로이 보아 넘겼는데...... 그날 이후 도티는 발을 땅에 질질 끌었다. 도티는 누운 채 꼼짝도 않고 먹을 것도 마다했다. 입 밖으로 나온 혓 바닥은 늘어진 채 메말라 있었다. 식구들을 보면 꼬리를 흔들려다 힘없이 떨어뜨렸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도티의 상태를 말하니 요크셔테리어로서는 살 만큼 살았다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칠십 대 후반이나 팔십 대 초반의 나이라고 했다. 체격이 작고 애교가 많아서 늘 어린 강아지로만 생각해왔는데, 늙었다는 말이 충격적으로 들렸다.

그날, 뭔가 느낌이 달랐다. 아내도 나도 일을 나가지 않앗다. 누운 채로 겨우 눈을 뜬 도티가 우리를 힘없이올려다 보았다.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쓰다듬어 주었다. 힘겹게 감았다 떴다 하던 도티의 눈자위가 축축히 젖은 채 감겼다. 퇴근하고 돌아온 딸아이가 도티를 안았다. 딸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뚜욱뚜욱 떨어뜨리며 도티를 꼬옥 안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도티가 그예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이었다. 딸아이가 도티를 안고 흐느껴 울었다. 아내도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에 적셔냈다. 녀석은 그렇게 열 네 살 세월 앞에 숨을 내려놓고 갔다.

이민 초기 십 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지라 가족들의 슬픔은 더했다. 그리도 귀엽고 살가웠던 도티에 힘입어 때론 힘들고 외로웠던 이민 생활을 다소나마 쉽게 버텨낼 수 있었다. 곳곳에 베어있는 사랑스럽던 도티의 흔적이 눈에 자꾸만 밟혔다. 양지 바른 집 앞뜰 가로등 아래에 도티를 묻었다. 아내는 틈만 나면 가로등 아래를 서성거렸다.

지난 주말 오후 밤 농장에 들렀다. 가을 햇밤이 탐스러웠다. 과실 나무는 세월 앞에 열매를 내어놓고 잎도 떨어진 앙상한 가지로 서 있었다. 문득 십여 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가치로 따질 수 없는 따뜻하고 소중한 사랑을 주고 떠나간 도티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니 도티에게 가장 많은 두움을 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매일 나서며 들어서며 가로등 아래로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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