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 고려장

고려장
 
10년 전 이른 겨울
커다란 이민 가방에 
남은 꿈을 구겨 담으며
떠나온 고향
행여 하나 빠뜨릴까
바리바리 챙겨 담은 짐 속에
빠져버린 홀어머니
낯 설은 생활의 골목들을
이리저리 헤매 도느라
달음박질쳐 멀어진 세월
살 만하면 모실게요
전화선 밖으로 사라져간
텅 빈 내 약속에
손주와 지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은
늦가을 애써 버틴
마지막 한 잎인 양 아슬하다
기력 없는 늙은 어미를
태평양 건너에
홀로 두고 온 지금
등에 업어 깊은 산 속에
버린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래도 아들이 버리고
돌아가는 길을 행여 잃을까
떨어뜨렸다는 그 솔잎 같은 마음
내 걱정은 말아 난 잘 지낸다
근데, 아들아
오늘은 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
 

시작(詩作) 노트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깊은 산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에 장례를 지냈다는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일본, 몽골, 시베리아 등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늙고 쇠약한 부모를 낯선 곳에 유기하는 행위를 지칭할 때 종종 인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사실상 이 시의 모티브가 되었다. 나를 포함해 이민 사회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모자간의 생이별을 소재로 했다. 여러 가지의 현실이, 서로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모자지간을 떨어지도록 만들었고, 그런 현실 즉 태평양 건너 고국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상황은 일부러 부모를 깊은 산 속에 유기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회한에서 출발한다.
 
현재 뉴질랜드에 이민 와 사는 꽤 많은 수의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런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살지 않나 생각된다. 그 이별은 여러 다른 요인들에서 기인하겠지만 넘을 수 없는 이민법의 벽도 그중에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 시는 한 연으로 된 시이며 시의 첫 구절부터 마지막까지 순서에 따라 시간이 흐름을 타고 구성되어 있다. 10년 전 처음 이민을 떠나가 위해 이민 가방을 꾸리면서부터 고단한 이민생활을 거치고 현재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연의 구분 없이 구성한 것은 하나의 정서가 끊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한 고려장 관련 설화에서 늙고 기력 없는 어머니를 꽃구경 가자고 속여 지게에 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던 중, 이를 이미 눈치챈 어머니가 오히려 아들이 자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을까 지게 위에서 계속해 솔잎을 떨어뜨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 힘든 어머니가 오히려 아들을 위해 일부러 본인은 잘 지낸다고 말해주는 대목과 오버랩 된다.

이 시에 또 하나의 부분적 특징은 서술과 전화상의 대화 내용을, 즉 술어와 구어를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같이 시어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살만하면 모실게요”나 마지막 문단에 “근데, 아들아 오늘은 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는 전화 내용인 구어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어떤 어려운 철학이나 관념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모자간의 정을 시적 기교 없이 주로 두 사람의 심리로 묘사한 사모곡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무심했거나 의도적으로 잊고 지냈던 부모님께 따뜻한 전화 한 통화는 어떨까?   
최재호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이하 오문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 021 272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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