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건 잊혀진 것이 아니다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0>잊혀진 건 잊혀진 것이 아니다

오문회 0 1768
글의 향기를 나누며 10

잊혀진 건 잊혀진 것이 아니다

잊혀진 건 잊혀진 것이 아니다
잠시 내 소겡 숨은 나에게 그렇다고 믿게 하고 싶을 뿐
어느 뜻하지 않은 골목, 방심한 순간에 다시 내 마음에 밀려올 테니까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사랑이라 믿어왔던 그림에 그저 맞추어 보고 싶었을 뿐
영원하리란 바램을 하면서도 나부터 조금씩 나로만 채우며 식어가니까

괴로움은 괴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그저 그것에 휘둘리고 있을 뿐
지나면 결국엔 나를 이롭게 한 소중한 친구가 될 테니까

아쉬움은 아쉬운 것이 아니다
내가 한발짝 더 나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일 뿐
언제든 내게 다음엔 조금 더 나가보라고 귓속말을 해 줄 테니까

헤어짐은 헤어진 것이 아니다
둘이 마주보던 방향을 돌려 잠시 다른 곳을 보려고 할 뿐
깊었던 마음속의 교류들은 방향조차 돌리지 못하고 그 곳에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리움은 그래도 그리운 것 일께다
내가 눈을 감고 그리고 싶건 아니건 내 가슴이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불현듯 밀려와 잊히지 않고 남는 그것은
사랑보다 더 길고 아쉬움보다 더 안타깝고
괴로움보다 더 두고두고 오랜 친구가 될 테니까


시작(詩作)노트

제가 시라는 것을 처음 써봤을 때는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습니다. 특별히 배운 적도 혹은 그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글짓기를 한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에 필이 꽂혔지요. 아무렇게나 펜 가는 대로 마구 써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좋다고 감탄하곤 했었지요.

그 이후론 정말 사는데 바빠 도통 시라는 것을 잊고 살다가, 지천명이 된 나이에 다시 시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저보고 시를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하시면, '시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축소지향의 예술이다'고 하겠습니다. 즉 압축된 글을 사용해 가장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또 무심한 일상, 무심한 말들, 무심한 사물들을 예민하게 가슴으로 포착하여, 농익고 걸러진 언어로 다듬는 작업이라 할 수 잇겠습니다.

말이나 글은 일부러 멋 내서 하려 할 때 가장 졸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스러운 언어를 적절히 사용해 그것에 담긴 생명력을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며 소통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겠지요.

오늘 소개하는 제 자작시 '잊혀진건 잊혀진 것이 아니다'는 어떻게 보면 자작시들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인 '그리움'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그리움 하면 김소월 님의 '초혼'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처럼 그리운 감정을 강렬한 정서로 표현할 수도 잇지만, 이 시에선 그 그리움의 감정을 차라리 담담한 언어로만 표현해 보았습니다. 때론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이런 무덤덤한 표현이 오히려 더욱 애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테니까요.

이 시의 다른 특징을 들자면, 소재는 연마다 바뀌지만 반복되는 같은 형식을 통해 통일감을 주려고 하였고 모순적인 첫 문장을 통해 뒤이어 오는 내용으로의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 연이 독립적인 것 같지만, 앞 연의 소재들이 마지막 연의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해 전주곡처럼 쓰였다는 것일 것입니다.

지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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