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4> 아침

오문회 0 1608

새벽 4시. 그냥 일어나기로 한다. 요즘은 밤늦게까지 잠을 못자거나 새벽에 일찍 깬다. 조금만 더 자려다가 너무 늦게 일어나서 남편과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해주지 못하곤 한다. 그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는 학교 매점에 가지 않는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빈 속이다. 죄책감을 하루 종일 감당하느니 잠이 깼을 때 아예 일어나는 게 맘이 편하다.

부엌에 갔다. 시계 소리가 유난하다. 싱크대 앞에 놔 둔 작은 탁상용 시계의 초침 소리가 거실과 부엌 아래층을 가득 메운다.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옛날 중국사람들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길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해서 걸렸다. 무덤 앞으로 한 발짝씩 가는 발자국 소리 같아서였을까? 소리나는 싸구려 시계들을 opshop에 내다 버렸다. 우습게도 다시 사왔다. 디자인이 멋진 시계에 약하다. 지금 싱크대 앞의 저 시계는 모양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싸구려다. 아날로그인 것만 맘에 든다. 시계가 많으면 시간도 불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시락 준비로 시간과 다투는 놀라운 경기(Amazing Race)를 한다. 아침의 십분이 저녁의 한시간보다 비중이 크다. 도시락은 어제와 내용물이 좀 다르게 싸야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마음만 다급해진다. 주문한 요리를 빨리 만들어 내야 하는 음식점 요리사들의 압박감을 알 것같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만들 때에는 앙칼진 초침소리를 감사한다.
싱크대 위에 신호등이 서 있다.

밖에 나와 하늘을 본다.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와 그제 날이 좋아 낙엽이 많이 떨어진 단픙나무 사이로 비추이던 햇살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생각이 났다. 오늘은 흐린 날이 되려나?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수영교습이 있는 토요일에 비가 오면 나도 가기 싫은데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걱정으로 다가온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비가 오기도 전에,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한다. 우매한 습관이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크게 들리더니 우리 집 쪽으로 와서 신문을 툭 떨어뜨리고 간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본 신문은 이제 광고도, 날짜도 보지 않는다. 남편은 신문을 안 보면 밥을 안 먹은 것 같은 가보다. 나는 단식을 하고 있는 셈인가? 신문을 배달하며 새벽을 여는 사람들. 눈만 뜬 게 아니라 이미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

엘르와르의 시 제목이 떠오른다. <여기에 살기 위하여> 가끔 제목을 되새겨 본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살기 위하여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잠깐이였지만 공항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던 생각이 났다. 아직 키울 애도 없고 당장 마땅한 일자리을 찾지도 못했고 일은 당연한 것이였으므로 무조건 시작했다. 일 자체로 신성한 때였다. 통계조사를 하는 일은 처음이였다.

공항은 늘 활기가 넘친다. 사람이 많지 않을 때에도 저 혼자 바쁘다. 이 땅에 오려는 사람들.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 기쁨과 슬픔, 설레임과 아쉬움이 생생하다. 사람 구경도 한몫 한다. 저마다의 외모와 차림새만으로도 눈이 바쁘다. 다양함이 존재하는 공항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특히 서양인 매니저가 누가 한국사람이며 일본사람 혹은 중국 사람인지 가려내는 것은 신기했다. 다양한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서로가 가진 그 유사성과 상이함에 대해서 인류학개론서를 읽는 듯 하다.

일하는 시간은 삼교대였다.어느 날은 5시 반까지 출근이다. 그 시간까지 공항에 도착하려면 늦어도 4시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서둘러 나간다. 차가 한 대밖에 없어서 남편이 나를 떨어뜨려 주고, 그런 날은 그도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야 했다. 지금보다 더 깜깜하고 비가 오는 겨울에도 몸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자동으로 일어났다. 일이 싫은 적은 없었다. 차 시동 거는 소리에 깰지도 모를 이웃집 사람들을 뒤로 하고 잠이 덜 깬 채 새벽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내 거리에는 하나 둘씩 다른 차들이 보인다. 그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 공항이 가까워지면 제법 차들이 많아진다. 나만 일찍 일어난 게 아니였다.

가끔 서둘러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부터 미안하다. 언젠가 남편은 집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산다'는 표현을 했다. 테레비에 나온 한 개그맨은  남편들이 밖에 나가서 벌어오는 돈은 전쟁터에서 맞은 총알이라는 섬뜩한 얘기을 했다.
총알로 꽃도 사고, 옷도 바꾸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먹고 사는게 다행스러웠었는데 그동안 기생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언젠가는 갚지 않으면 안될 빚이리라.

일은 생명이다.
생명을 생명으로 있게 해준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나를 도와야겠다.
어느 새 밖이 훤해졌다.
도시락에 넣을 샌드위치를 만들 시간이다.


운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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