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기(野營記)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5> 야영기(野營記)

오문회 0 1552

우리는 똑같이 공부를 못했다.
우리는 똑같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을 어쩌냐는, 불멸의 핑계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똑같이 국군의 날과 개천절로 이어지는 연휴가 아까웠다.

그 2박3일 동안 치악산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새벽에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탔다. 영원사역에서 내렸다. 엷게 물들어가는 산을 올라가며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고, 다마내기를 까고 감자를 벗기고 꽁치통조림을 따서 찌개를 끓였다. 찌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산중이어서 해가 일찍 떨어졌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반합 뚜껑에 촛불을 켜놓고 비스듬히 기대 누워서 여학생 이야기를 했다.

“아아! 인생이 별 것 아니구나. 공부가 없을 뿐인데 이렇게 행복하구나.”

오줌을 누고 왔는데 슬슬 추워졌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했지만 한낮에는 아직 반팔차림이 어색하지 않았다. 산에서 밤낮의 기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래서 뭘 준비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추위는 이슬처럼 내려앉았다. 텐트와 살갗을 뚫고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에서도 냉기가 올라왔다.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도대체 가진 것이 없었다.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베낭을 깔고 앉아서 홑이불과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새 악랄하고 비열한 추위와 싸웠다. 산속의 추위를 맨몸으로 때웠던 것이다.

먼동이 틀 무렵, 밤새 떨다가 지쳐서 픽 쓰려졌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한낮이었다. 텐트에서 기어 나온 것은 영락없는 거지들이었다. 부랴부랴 텐트를 걷어서 길을 나섰다. 절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오후 내내 걸어서 해질 무렵에야 구룡폭포에 도착했다.

어둠이 산을 뒤덮었다. 또 하룻밤이 남아 있었다. 끔찍했던 지난 밤을 떠올리며 잠잘 곳이 아니라 추위를 피할 곳을 찾아 나섰다. 커다란 바위 아래 텐트를 펴서 바람을 막고 비닐을 걸쳐서 이슬을 피했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았다.

밤은 깊어갔다. 이슬이 내려앉았다. 산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으니 서부영화의 카우보이가 된 듯했다.서로의 얼굴에 불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잘 생겨 보이기도 하고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착한 아이들이 되는 것 같았다. 막대기로 불을 쑤시다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몇 번이나 그러더니,

“야, 니네들은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니?”
하고 물었다.

“어른이 되겠지 뭐.”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이었다. 지금부터 생각해 볼 모양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그 말을 시작으로, 모닥불에 시선을 박은 채 각자 가슴에 품고 있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모닥불을 쳐다보며 그 말들을 들었다. 조금도 창피하지 않았고, 우습지도 않았다. 친구의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대로 가슴으로 곧장 파고들었다. 코끝이 찡했다. 갑자기 숙연해졌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것이 뭔가 싶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다 같은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동으로 밤은 짧았다. 라면을 끓여먹을 즈음에 햇빛이 바위에 닿았다. 일찌감치 산을 내려와서 기차에 탔다. 청량리역에서, 처음 겪은 추위와 감동을 안고 헤어졌다.
 
팔년이 지났다. 한 친구는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다른 친구도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다. 미국이 얼마나 먼 곳인지 잘 모르지만 한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똑같이 그날, 뭐라 말할 수 없는 먹먹함에 휩싸였던, 그 새벽을 떠올렸다. 두 말없이 북한산으로 올라갔다.야트막한 폭포 아래 바위틈에 텐트를 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서 밤이 되어서 순수했던 그날의 감동에 젖고 싶었다. 행여 준비가 허술하여 추억을 망칠까 봐 코펠, 바나, 담배, 커피, 라면들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땀을 흘리기도 했다. 어두워져서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말을 아꼈다. 밤이 충분히 깊어서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았다. 커피를 감싸쥐었다.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도, 폭포도, 모닥불도, 커피도, 담배까지 그날과 똑같은데, 마음만은 똑같아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겉돌았고,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했고, 그래서 가슴이 울리지 않았다.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슬펐다.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나이를 먹었고, 자주 만났고, 술도 마시면서 우정도 의리도 더 커졌다고 생각했다. 유치찬란했던 그날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했는데, 기분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시간은 납덩이를 매단 듯 느리게 느리게 움직였다.

새벽이 되어서, 지금의 우리는 그 날의 우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말없이 짐을 꾸렸다. 산을 내려오면서, 전날 밤의 추위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들,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속으로는 추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탈하고 허탈했다. 얼마 후, 그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삼십여 년이 흘렀다.
 
“야, 사는 게 뭐냐? 이러다가 얼굴이나 보고 죽겠냐?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들 웅크리고 사느냐 말이다.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태평양을 건너온, 술기가 완연한 목소리였다. 십여 분의 통화였지만, 남는 것은 그 말뿐이었다. 그 말을 하려고 술김에 전화를 걸었을 것이었다. 통화를 하는 동안 몇 번 소리 내서 웃었고, 숨을 돌리는 척하면서 소리 죽여 울었다.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몰라보게 변한 서로를, 볼록 튀어나온 배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메뉴를 볼 때마다 꺼내 쓰는 돋보기를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쩨쩨한 욕심과 하찮은 근심에 묻혀 살면서 술로 찌든 얼굴과 트미해진 눈빛과 더듬거리는 내 말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물어져 가는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는 뜨겁고 팽팽했던, 그러나 조금은 서글펐던 그때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건강 잘 지키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작업실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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