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떠나는 아침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7>안개가 떠나는 아침

오문회 0 1660

긴 하늘 여행으로 지친 구름이
부르튼 제 몸무게에 겨워
바다 위로 퍼지듯 내려 앉았다
먼저 깬 새벽이 미션베이를 지나는 시각이다
 
하늘에도 땅에도 하얀 양떼가 사는
이곳은 길고 흰 구름의 나라
지금 바다를 덮은 안개가 나를 마시고 있다
 
그 속으로 바짝 다가서야 갑자기 드러나는
바로 한치 앞 풍경은, 마치
하릴없이 맞았던 그 낯선 하루 하루
 
도망가듯 하얗게 퍼지는 넌
쉽게 붙잡을 수 없었던
동그랗게 말린 그들만의 모국어
 
어느 겨울 비 느루 오던 밤
술 취한 아버지, 비틀비틀
낯선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어
문득 느꼈을 떠나온 고향
 
지금 내 이마에 맺히는 건
안개 속 절망의 습기가 아니다
저 바다처럼 고단한
내 삶이 흘리는 땀방울이다
 
노란 머리 바다 새가 무거운 날개를 털며 난다
문득, 열기를 느낀다
하나 둘 증발하는 미련 같은 물방울들 사이로
어린 시절처럼 동이 튼다
수레를 밀고 가는 등 굽은 사람의 새벽은 가고
큰 아들놈 빛나는 청춘 같은 태양이
기쁨처럼
솟.아.나.온.다.
 
 
시작노트
안개가 떠나는 아침은 뉴질랜드 이민 1세대의 고단했던 일상과 삶을, 안개를 통해 표현해본 시입니다. 1, 2연에서는 안개의 정체성을, 3, 4연에서는 안개의 특징을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5연에서는 고향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을 술 취한 아버지를 통해 형상화해 보았고, 마지막의 두 연에선 안개 같은 이민 1세대는 비록 미련이 남아있긴 하지만 뒤에 등장하는 기운찬 태양 같은 자식들에게 기쁘게 삶의 자리를 내어주고 증발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시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불현듯 같이 느끼는 것인만큼 단 한 순간이라도 한 단어라도 작가와 같이 호흡하고 느껴 주시길 기원해 봅니다.    

지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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