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손바닥소설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오문회 0 2263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오래전 종로 2가 사거리에 화신백화점과 신신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나는 그중 화신백화점을 주로 이용했다. 그렇다고 무엇을 사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화신백화점 6층쯤에 화신극장이 있어서였다.
 대학 1학년 때였다. 국민윤리나 국사 같은 고리타분한 과목을 빼먹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을 또 배워야 하는 게 못마땅했고, 국책 과목으로 정한 전두환 독재에 반항하는 표시도 다소 있었다. 동시상영 두 편을 보는데 오백 원 안짝이었던 것 같다. 가끔은 세미 비키니 옷을 입은 대충 생긴 무희들이 다리를 쩍쩍 들어 올리며 무도회를 열기도 했다. 나 같은 반(反)사회적인 군상들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생쥐도 쥐 세상처럼 객석을 돌아다녔다. 나는 졸며 보며 그러다가 오전을 죽였다.

 일류 이류 극장을 돌고 돌다가 더 갈 데 없어 온 듯한 영화. 삼류 영화관에서 삼류 영화를 상영했다. 관객도 삼류였다. 늙다리 삼수생부터 화장기 진한 작부, 그리고 팔뚝만 건강한 일용노동자들. 잠깐이라도 심신을 풀고 싶어 찾아온 하류 인생들뿐이었다.

스크린에는 늘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풀기 없는 미역처럼 너덜너덜해진 필름이 제 작동을 못 하면서 숱한 빗금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사이사이 전기도 맥없이 끊어졌다. 성질 급한 몇몇은 입술을 모아 휘파람을 불어댔고, 술집 작부는 분내를 풍기며 껌 소리를 더 크게 냈다. 그래도 명색이 극장인데 어디 하나 문화적인 공기를 느낄 수 없었다.

중학교 때 영화를 몇 편 봤다. 학교에서 단체영화랍시고 보여준다는 게 ‘성의 신비’ 뭐 그런 거였다. 성교육을 그런 식으로 시켰다. 조금 더 우아한 영화라면 ‘성웅 이순신’ 정도였는데, 그 영화 역시 군바리 박정희의 위대함을 교묘한 방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보여주었다.

내가 처음 성인 영화를 본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랑천 인근에 있는 새서울극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때 장안의 화제가 됐던 ‘영자의 전성시대’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송재호와 염복순이 주연한 영화였다. 야한 포스터가 사춘기 소년의 아랫도리를 자극했다. 난 정말 보고 싶었다.

우리 집 앞에는 공장이 하나 있었다. 주로 자개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공장 앞을 지날 때마다 아교 냄새가 진동했다. 공장에는 공돌이들이 수십 명 있었다.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몇 살 정도 더 많은 청년들이었다. 서울 태생은 거의 없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지방 출신이 각색의 사투리를 써가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종종 그들과 어울려 축구나 짬봉 같은 놀이를 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수십 명이 벌떼처럼 이곳저곳으로 몰려다니며 젊은 혈기를 토해냈다. 공돌이들은 하나같이 장발이었다. 공부 못한 한을 머리로 풀었다. 어른티를 그렇게라도 내고 싶었던 것이다.

공돌이 가운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명을 꼬여 극장에 갔다. 나보다 세 살 정도 많은 형이었다. 막 청년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였다. 그 형이 호기롭게 말했다. “나만 믿어.”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극장에 들어갔다. 말 그대로 ‘만원사례’였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공돌이 형 옆에 바짝 붙어 내 자리를 찾아갔다. 앉자마자 불이 꺼졌다. 영화 상영을 알리는 신호였다. 박통이 네다섯 번은 보였던 지루한 대한뉴스가 끝났다. 빨가벗은 여자가 나올 게 뻔한 장면을 속으로 상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웅장한 음악이 울려 나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렇게 우리는 모두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길 원하며 자리에 앉았다.

침을 삼켜가며 기다렸다. 염복순의 뇌쇄적인 자태가 드러났다. 목욕탕 때밀이로 나온 송재호와 걸진 한 판의 정사를 앞두고 복순이가 한 꺼풀 두 꺼풀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갑자기 옷보다 살이 더 많이 보였다. 위아래를 가리고 있던 검은 두 개에 나는 흥분했다. “세상에~~” 브라자와 빤스가 검은색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 기억에 그 장면이 가장 야했다. 이유는, 그다음 장면은 아침 길거리 모습이었거나 밥 먹는 일 같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컷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 영화는 다들 그랬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들은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주었다.

오늘 나는 이장호 감독이 만든 ‘별들의 고향’이라는 영화를 봤다. 1974년 작품이니까 40년이 넘어간다. 지금의 잣대로 봐서는 영화 같지도 않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5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해 한국영화계에 돌풍을 몰고 온 작품이었다.

영화에는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장희의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주제 음악으로 나왔고, 우리 눈에 익숙한 백일섭(건달 역)과 전원주(식모 역)가 등장했다. 두 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스크린에 빗금이 대여섯 번 정도 왔다 갔다 했다. 화질이 너무 선명했거나 또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했다면 오히려 반감이 왔을지도 모른다. 옛날 영화는 옛날식이어야만 좋다.

영화가 끝나고 뒤풀이 삼아 몇몇이 자리를 함께했다. 다들 나보다 연상인지라 내가 영화평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어른 또는 중 고등학생으로 살았다. 그 당시 초등학교를 막 벗어날 때였던 나는 그냥 듣기만 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에는 유명한 대사가 두 번 나온다.

하나는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또 하나는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다. 앞말은 경아로 분한 안인숙이 한 말이고, 뒷말은 문호로 분한 신성일이 한 말이다. 안인숙의 그 대사는 70년대 젊은 남자들의 유행어였다. 술집 여급에게 한두번 농 삼아 한 말이었다. 스물두 번쯤 나온 키스신에서 경아의 입술은 정말로 쪽 소리 내 가며 한번쯤 입에 대보고 싶은 ‘작은 술잔’ 같아 보였다.

나는 헐리우드 키드(Hollywood Kid)는 아니다. 그렇다고 헐리우드 어덜트도 아니다. 좋은 영화를 골라보는 안목도 없고, 영화평을 근사하게 해낼 자신감도 없다. 그저, 이제 더는 빗줄기 내리는 삼류영화를 만나기 힘든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너무 빠르게 가는 세상에서 좀 더디게 가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옛날 영화가 보고 싶다.”

저자  시인과나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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