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삶의 설계

손바닥소설


 

남은 삶의 설계

오문회 0 1818
오늘은 하림이의 돌이다.아침부터 온 가족이 분주하다.

이벤트 회사에서 가져온 돌 차림 상에 아내가 과일과 음식을 차리고 딸 내외가 촛불을 켜고 꽃과 풍선으로 장식을 하고 있다.주인공인 손녀 하림이는 한국에서 이모 할머니가 보내준 예쁜 한복을 갈아 입혔다. 머리에는 족두리를 얹어주고 저고리 앞섶에는 예쁜 복 주머니도 매달아주었다..

식구들도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가족들이 한 가지 일에 하나되어 몰두하는 것이 활기 있어 보여 좋았다.

일 년 전, 유도분만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병원의 권유로 산모인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던 아내에게서 무사히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벌써 한 해가 흘렀다.

일 년 사이에 안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몸집이 커지기도 했지만, 보고 듣고 만지는 일에도 잘 반응하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자란 것 같다.무슨 물건을 만질 때도 덥석 잡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밥을 먹기 전에 기도 손 하면 두 손을 모으고 웅얼거리는 것이 아멘 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전화 벨 소리가 울리면 손을 귀 언저리에 갖다 대고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칫솔을 들고 이 닦는 시늉을 하며 ‘치카치카’ 하면 벌렁 뒤로 누워 입을 ‘아아’ 하고 벌린다. ‘아빠’, ‘엄마’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두 달 동안 보육원에 다닌 덕분인지 베비(baby)와 노(no)를 바르게 발음하고 싯 다운(sit down)하면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기도 한다.

집안 군데군데, 성구가 쓰여있는 달력 앞을 지날 때면 손을 내밀어 멈추게 하고는 읽으라고 한다. 그때마다 무슨 말인지 응얼 거리기도 한다. 잘 때에는 제법 코를 골기도 하지만 깨어날 때에도 잠 투정 대신 얼굴을 가까이 대고 ‘까꿍’ 하며 깨어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 하림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살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관성이 있고 지능과 습관이 유아기인 일곱 살 때까지 거의 형성된다니, 나도 하림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가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생각일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살겠다고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삶이 허락된다면 그 때까지는 살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은퇴한 삶을 살고 있다.경제활동을 멈춘 지도 오래 됐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기도 하다.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나의 주장이 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하겠다.그러나 내게도 한 가지쯤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다.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하림이의 지적, 정서적, 신체적인 분야의 성숙에 가장 필요한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하는 일이다. 

바람직한 인간의 기본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도록 곁에서 솔선하고 도우는 일이다.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정한 시한부인생이 되었다. 하림이가 일곱 살이 되는, 남은 육 년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자랑스러운 면류관으로 생각하련다.그리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한 오백 년 살기라도 할 것처럼 갖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기도 하였는데, 다 내려놓아야겠다.

지난 날을 생각해보면 다 부질없고 헛되고 헛된 것들이다.가끔 주위 사람들 중에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람들을 접한다. 바라던 것을 다 이루었다는 의미이겠지만, 교만한 말로 들리기도 한다.지금까지 지내온 것보다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생각된다.

나는 손녀 ‘하림’이를 많이 사랑하고 싶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련다.그 사랑의 열매가 먼 훗날, 하림이의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저자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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