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소

손바닥소설


 

얼굴 없는 소

오문회 0 1497
그림이 바뀌어 걸려 있었다. 비 오는 일요일, 종일토록 집에 있다 보니 벽에 걸린 그림이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안방 침대 옆에 이제껏 걸려 있던 그림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조로 표현된 비구상의 나부였는데 바뀐 그림은 소 한 마리가 풀밭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아내는 촉망받는 신예 작가의 그림이라며 이십여 년 전에 이 소 그림을 사서 아이들 방에 걸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자 그림은 내려져 이제껏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도 소 그림이 탐탁지 않았던 것은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림의 구성이 단순했다. 화폭의 아래쪽에 폭이 좁은 시냇물이 흐르고, 시냇물 위쪽에는 풀밭이 자리 잡고, 그 풀밭에 소 한 마리가 비켜 서 있는 그림이었다. 소가 모델인 그림은 대체로 농부와 함께 밭을 갈든지, 송아지와 다정스레 풀을 뜯든지 아니면 싸우는 소의 성난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단지 소 한 마리만 덩그마니 서 있었다. 하다못해시냇물이라도 굽이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로로 곧게 흐를 뿐이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이렇게 단순한 구성은 의외였다. 그런데 그림을 다시 걸어 놓고 보니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기만 하던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우선 우두커니 서 있는 소가 산전수전을 다 격은 듯이 보였고, 고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방목된 소 같았다. 시냇물도 넉넉하지 않았고 풀도 알맞게 자라 계절은 5월인 듯했다.

파릇한 새풀이 돋아난 풍요로운 5월의 자유로운 소, 소 팔자치고는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소가 홀로 서 있으니 어쩐지 허전하고 쓸쓸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소가 풀을 뜯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가 얼굴을 돌리고 있는 것에 슬슬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소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무엇을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부끄러워한다면 무엇을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자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서일까. 당당한 삶을 살지 못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개를 숙인 모습이면 될 텐데 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단 말인가. 화가는 혹 소의 얼굴을 그리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화가는 무엇을 말하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의 심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그 그림 앞에 서서 소의 얼굴을, 아니 더 정확하게 눈을 왜 그리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소가 슬픈 표정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리고 서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소는 슬픈 것이다. 능력 없음으로 자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곤궁한 것이다. 또한 소의 그러한 속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으니 소는 외로워 더욱 슬픈 것이다.

나는 소의 슬픈 눈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소의 눈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눈은 아닐 것이다. 소는 우수에 가득 찬 '젊은이의 양지'에 나왔던 ‘몽고메리 크리프트’의 눈빛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몽고메리 크리프트’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다. 살의는 있었지만 살해는 하지 않았다는 그의 진술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외쳐보지만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사형장으로 가는 어둡고 기다란 복도에서 마주친 짙은 눈 그림자, 우수에 찬 그의 눈동자는 좌절과 체념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소는 바로 그런 눈빛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처지가 비슷해서일까, 소에게 보내는 내 연민의 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그런데 오늘,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바뀌어 있다. 왜 그림을 바꾸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보기 싫어서 떼어 냈다고 한다. 소는 다시 컴컴한 창고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외로운 소는 답답하고 어두운 창고 속에서 한없이 좌절하고 체념할 것이 틀림없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그 그림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떼어 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는 소 그림 앞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청승스럽게 서 있는 내가 더 보기 싫어서 그 그림을 떼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신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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