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러의 행복; 사모아에서 온 한통의엽서

손바닥소설


 

2달러의 행복; 사모아에서 온 한통의엽서

일요시사 0 1388

팸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가게로 들어온다.

벌써 목요일 인가 보다.

언제나 목요일이면 팸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 가게에 온다. 그리고는가게구석구석물건하나하나를이리보고저리보고아주꼼꼼하게 둘러본다. 특히 액세서리 코너에서는 아주 오랜 시간 머물러서 귀걸이를 귀에 대보고 목걸이도 해보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쇼핑을 즐긴다. 섬나라 여인네들이 그러하듯 몸치장에 관심이 많은 것은 어쩔 수 가 없나 보다. 쇼핑 바구니를 들고 엄마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딸아이는 엄마 치마 꼬리를 잡고 한 손가락은 입에 문채로 나름 관심거리를 찾아 열심히 가게를 누비고 다닌다. 갖고 싶은 것을 엄마의 바구니에 덩달아 넣으면서. 한참을 가게에서 머물렀고 바구니에는 꽤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계산대에서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 팸은 물건을 하나 둘 빼놓으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중이다. 결국 오늘은 딸아이의 머리 끈 하나를 사가지고들어올 때 들떠있던 표정과는 다르게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섰다.

늘 그런 식이다. 일주일을 벼르고 별러서 수당이 들어오는 목요일을 기다려 큰 맘을 먹고 가게에 들어서지만 이것저것 계산을 해보면 돈이 별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팸은 오늘도 슈퍼마켓에서 홈 브랜드 식빵 몇 봉지와 우유 두 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다시 우리가게를 지나치며 눈 인사를 건네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팸은 사모아에서 온 30대 초반의 싱글맘 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사모아에서 희망의 땅이었던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팸에게 뉴질랜드는 그리 녹녹한 곳이 아니었다. 남편 하나만 믿고 온 이곳에서 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활달하지 못한 성격도 문제였지만 사회 적응력이 좀 떨어진 편이어서 집 밖으로 나서기 조차 두려워했다. 도무지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남편은 결국 떠나 버리고 팸은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의 작은 집에 아이와 홀로 남게 되었다. 욕심도 없이 섬나라에서 자연과함께 살았던 고향을 벗어나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던 팸은 집에서 섬나라 여인들이 좋아하는 꽃 모양의 머리핀을 만들면서 하루를 보냈다. 허리도 아프고 눈이 빠질 듯이 아팠지만 더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하루 종일 머리핀을 만들고 해질 녘이면 공동주택 한 켠에 일구어 놓은 자신만의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시간을 팸은 가장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조그맣지만 둘레에는 꽃을 심고 사모아 국

기까지 걸어 놓았다. 팸이 밭을 가꾸는 동안 딸아이는 꽃을 꺾어 꼼지락거리며 뭔가 만드는 중이다. 이렇게 팸이 가꾸는 소박한 채소는 가끔 내게도 차례가 왔다. 아이들이 어려서 입었던 옷들을 모아 주었더니 부끄럽게 내미는 그녀의손에 가끔 들려있던 방울 토마토 몇 개, 이름도 잘 모르는 푸른 잎의 채소들을 오히려 나는 기다리게 되었다. 언제나 피곤해서 토끼처럼 빨간 눈을 하고 있던 그 녀가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을 목요일 마다 만났던 그녀를 어느 날 인가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때 유난히 피곤해 보였던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둘째를 임신하고 남편이 떠난 터라 팸의 머리 속은 엉망진창 이었다. 돌아가고 싶다고, 고향인 사모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눈물짓던 그녀는 결국 사모아로 돌아갔다. 둘째아이는 고향에서 낳고 싶다던 팸은 얼굴이 퉁퉁부어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웃고 있었다. 목요일이되고다른날보다는많은손님들에바쁜시간,한통의엽서를 받았다. 눈까지도 시원해지는 사모아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팸이……

그녀가 고향 땅에 묻혔다는 소식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심각해진 당뇨병에 임신 중독증까지 겹쳐서 결국 출산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사모아에 돌아온 이후부터 죽는 그날 까지도 팸은 행복했었다고 했다. 그녀가 구경하기 좋아했던 우리 가게가 있던 쇼핑센터도 없고, 목요일마다 들어오는 수당도 없지만 쪽빛 푸른바다에 발을 담그고 딸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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