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과 정해인이 묻는다…'베테랑2' 뉴질랜드 상영
2015년 개봉한 '베테랑'은 선이 악을 응징하는 사이다 액션으로 전국 1,341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현실의 문제의식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르 영화의 문법으로 유려하게 풀어내며 영화적 쾌감을 안긴 수작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故 강수연이 사석에서 한 말에서 착안해 만들었다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그해 최고의 대사로 각광받았고,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와 함께 보여준 유아인의 연기는 밈(Meme)으로 수년간 회자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 '베테랑'이 속편으로 돌아왔다. 데뷔 25년 차의 베테랑 연출자 류승완에게도, 데뷔 30년 차의 베테랑 배우 황정민에게도 생애 첫 속편이다.
'베테랑2'는 성공한 영화의 속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1편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전편과의 연관성을 이어가면서 속편만의 개성과 색깔을 구축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성공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에서 속편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엿보인다. 실제로 '베테랑2'는 전편의 흥행에 취해 복사기에서 찍어낸 듯한 결과물을 양산하고 있는 여타 시리즈와는 달리 창작자의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1편에서 "형사가 재벌을 때려잡는다" 식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카타르시스에 열중했다면 2편에는 "사적 제재는 옳은가?", "정의란 무엇인가?" 등의 논쟁적 화두와 광범위한 질문을 던졌다.
영화는 주부 도박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불법 도박장을 잠입하는 미스 봉(장윤주)과 이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서도철(황정민)을 위시한 형사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약 7분여의 오프닝을 통해 광역수사대에서 강력범죄수사대로 부서를 옮긴 형사 5인방의 건재를 알리고, 1편과의 연결고리도 보여준다. 오프닝의 박력은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흡과 최영환 촬영감독의 수려한 카메라 워킹, 장기하의 경쾌한 음악이 더해져 단번에 관객을 이야기로 진입시킨다.
'베테랑2'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법한 사건을 연이어 등장시킨다. 1편에서는 돈과 권력을 등에 업고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의 범죄를 다뤘다면, 2편은 대중의 분노를 토대로 활개 치는 비질란테(Vigilante: 자경단)의 연쇄 살인을 재료 삼았다.
이 사건의 베일 뒤에는 이른바 '해치'라는 인물이 있다. 해치는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지 않는 인물에게 사적 제재를 가해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가운데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범죄자가 출소하고, 강수대는 해치의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해 보호관찰을 하게 된다. 인력 부족에 허덕이던 서도철은 UFC 선수 출신의 지구대 경찰 박선우(정해인)를 영입해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영화는 '해치'의 존재를 초반부터 오픈한다. '베테랑2'는 수사 기법을 활용한 범인 잡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이 던지는 화두와 그의 범행이 남기는 논쟁적 질문이 핵심인 영화임을 알 수 있다.
2편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해치'는 안하무인에 극악무도하며 법 위에 군림했던 1편의 빌런 '조태오'와는 다른 인물이다. 해치가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대중의 사회를 향한 분노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을 기반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해치의 행각은 '죽어 마땅한 인물을 죽인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와 살인을 게임처럼 즐기는 소시오패스적인 속성과 어우러져 점점 과감해진다.
영화는 사적 제재에 대한 화두를 던짐과 동시에 무분별한 온라인 정보의 폐해 그리고 언론의 책임도 묻는다.
해치를 영웅화하는 현상은 대중에게 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는 유튜브가 부추기고,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꺼지는 대중의 속성을 이용하는 사이버 렉카들은 기승을 부린다. 이 중 '정의부장'이라는 유튜브 채널과 전직 기자 출신 유튜버 캐릭터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적극적으로 현실을 반영했다.
류승완 감독의 형사물은 땅에 발을 딛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과 인물 그리고 사회의 풍경은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아닌 우리가 겪었거나 목도했던 것들의 연장선상이다. 이번에는 연쇄 범죄라는 이야기 구조를 활용해 성범죄, 학교폭력, 가짜뉴스, 사이버 마녀사냥 등의 여러 사건을 아우르며 이야기판을 키웠다.
나아가 서도철을 통해 '어른의 성찰'을 보여주고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라는 모범 답안을 도출한다.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하느라 정작 '좋은 남편'이자 '따뜻한 아빠'이길 외면했던 '가장 서도철'의 반성의 시간까지 마련해 준 셈이다.
답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는 이 영화의 결과물을 생각하면 다소 거창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중이 범죄와 뉴스를 대하는 시선과 방식에 대한 질문은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논란과 현상에만 몰두하다 정작 진실과 거짓,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때는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던 대중과 언론의 습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다만 류승완 감독의 의도가 영화의 결과물에 잘 투영됐는지는 평가가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이 다루려는 주제가 광범위한 것에 비해 평면적인 나열과 편의적인 마무리로 귀결된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안타고니스트에 사연을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도 일견 이해는 가지만, 결국 인물의 동기에서 '왜'가 빠지면서 이 인물은 납작한 소시오패스에 그치고 만다.
또한 '비질란테'나 '노웨이 아웃' 등의 시리즈에서 이미 사적 제재를 다룬 바 있기 때문에 다소 식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테랑2'는 현 영화계를 이끄는 장인들이 만들어낸 준수한 결과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해 '서울의 봄'의 전두광으로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 올렸던 황정민은 '베테랑'의 서도철로 돌아와 살아 숨 쉬는 형사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형사라는 직업인으로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서도철의 신념은 결국 류승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좋은 살인이 있고 나쁜 살인이 있어? 살인은 그냥 살인이야"라는 대사가 발화될 때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역량이 오롯이 드러난다. 캐릭터를 체화하는 능력과 감독의 메시지를 캐릭터에 실어 보내는 에너지는 단연 발군이다.
정해인은 이번 영화로 커리어에서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말간 얼굴로 순정을 발산했던 로맨스 달인 이미지를 벗어나 격렬한 액션과 서늘한 얼굴을 보여주며 한 단계 성장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