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좋은 터 위에 세워지는 생명의 신앙(딤전 6장 3-12, 18-19절)-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믿음의 좋은 터 위에 세워지는 생명의 신앙(딤전 6장 3-12, 18-19절)-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교회 사택 뒤에 있는 텃밭 중 하나는 몇 해 전만 해도 터만 있었고, 잡초도 겨우 자라는 땅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 터를 갈아 엎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삽질을 하였습니다. 돌들을 드러내고, 기존의 흙들을 다 떠냈습니다. 그리고 그 떠낸 자리에 가든 숍에서 사온 흙을 넣고 거름도 뿌렸습니다. 지금은 그 터가 비옥해져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토질이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토질이 바뀌어 좋은 터가 되니까 식물들이 행복하게 자랍니다. 이 밭을 보면서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교회도 좋은 토질을 갖추면, 어떤 영혼이 오든지 행복하게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천국의 섬이라고 불리는 섬이 있는데 바로 증도입니다. 이 섬은 경치가 아주 아름답고 느린 휴식의 최적지인 슬로시티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이, 더 놀라운 것은 섬 주민의 90%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섬에서 우리나라의 존경받는 기독교 인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 섬이 이렇게 좋은 터로 변한 데에는 문준경 전도사라는 한 사람의 놀랍고 눈물겨운 사랑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증도로 시집을 간 날 남편에게 소박을 당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고 나서 증도로 돌아와 무려 11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섬을 얼마나 돌아다녔든지 고무신 9켤레가 닳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6.25때 공산군에 의해서 바닷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총살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전도사님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피가 범벅이 된 바닷모래를 실어 와서 교회 건물을 세웠습니다. 이 일로 전도사님의 복음과 사랑과 희생이 섬 전체에 퍼졌고, 이 증도는 믿음의 좋은 터가 되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신년을 맞이해서 믿음의 좋은 터를 이루고 생명력 있는 신앙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달여 전에 한국 기술자 한 분이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분은 특수기술로 교량을 해체하는 전문가인데, 작업 도중에 2.5톤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콘크리트에 부딪혀 튕겨나간 후 바로 그 위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던 콘크리트가 기계 옆면에 손톱만큼 나온 볼트에 걸려서 바닥에서 60cm 정도의 틈이 생겼는데 바로 그 사이에 몸이 들어가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이분이 깨어나셔서 가장 처음 한 이야기가 “나도 이제 교회란 곳을 가봐야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전에 교회를 거의 가 보지 않던 분이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는 “나도 교회를 가야겠다.”는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분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순간 그냥 튕겨 나간 게 아니라 뭔가가 자기 몸을 붙잡아서 그 틈바구니로 넣은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의 안전벨트가 몸을 붙들어주고 지켜주는 것처럼 누군가가 붙들어주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세상과 마귀는 끊임없이 찾아와 우리의 믿음을 빼앗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못하게 하고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떨어지도록 흔들어대지만, 우리가 여기에 놀아나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씀과 경건에서 떠난 자의 삶을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1) 교만하게 됨 – 4절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사람이 말씀과 경건에서 떠나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2)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됨 – 4절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변론과 언쟁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 뒤에 보면 변론과 언쟁을 하다보면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마음이 부패하여짐 – 5절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음식은 아주 뜨겁거나 차가우면 상하지 않습니다. 온도가 어정쩡하면 음식이 상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신앙이 부패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말씀과 경건에 꼭 매여 있지 않고 어정쩡할 때 신앙의 변질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경건에 매인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2.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6절에서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6절)”고 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기도, 섬김과 사랑 같은 경건 생활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여기에 자족하는 마음이 더해져야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믿음의 터를 이루지 못하는 때는 바로 이 자족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가장 유명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시23:1)”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자 되시고, 이끌어주시니 아무 부족함 없다는 고백입니다. 여호와 한 분으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족하는 마음을 몰랐습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처음 내렸을 때는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들은 “우리가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며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은 이유는 한 마디로 자족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도 족한 줄을 몰랐습니다. 믿음의 좋은 터 위에 수많은 초대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의 가장 큰 특징은 자족하는 신앙입니다. 그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믿음의 좋은 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마귀는 절대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인 반면, 마귀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마귀 역시 우리를 멸망하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데, 선한 싸움이란 혈과 육의 싸움, 즉 사람을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미국의 링컨은 말씀과 기도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링컨이 변호사일 때부터 그를 대놓고 무시하고 모욕을 안겨준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저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라며 링컨을 모독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방부 장관에 스탠턴을 임명했습니다. 주변 참모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대답하기를 “그 사람이 수백 번 나를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기에 국방부 장관을 할 자질이 있습니다.” 링컨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생명력 있는 국정 운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9)”는 바울의 말씀처럼 믿음의 터 위에 참된 생명을 취하는 우리 모두 기쁜 새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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