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수 7:2-15)-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수 7:2-15)-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본문 2절에 보면 ‘아이’라는 성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한 두 번째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가장 먼저 맞닥뜨린 성은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는  당시 견고하기로 유명한 성으로 이를 군사적으로 함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만 철저히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트려 주신 것입니다. 본문의 아이성 사건은, 여리고성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리고성에서 전쟁을 하지 않고도 완벽한 승리를 경험하고 나서 알 수 없는 자만심을 가졌습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교만한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큰 잘못이 여리고의 승리 중에 범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더니 그걸 범죄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1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지고 범죄하였을 때, 아이성과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또한 과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지만, 범죄와 타락으로 비참하게 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국 교회만 봐도 믿음의 선조들이 일사각오의 마음을 가지고 신앙을 지켰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때의 순수함과 열정과 간절함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성결을 잃고 거룩함을 잃어버린 결과, 이스라엘처럼 세상에 무참히 짓밟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우리의 신앙공동체가 새롭게 부흥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절대로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강해지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진리 안에 있을 때 강해지는 반면, 진리 밖에서는 약해집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6장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민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을 칠 때는 아주 무력하게 패배를 당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물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답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가운데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11-1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1)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죄 2) 바친바 된 것을 내 것으로 취한 죄 3) 속인 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죄가 그들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2절)” 성도가 죄와 함께 거할 때 어떤 결과가 생깁니까?

1) 능히 원수들을 맞서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도라도 죄가 있으면 마귀를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은 언제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마귀를 제압하든지, 아니면 내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의 죄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성도도 죄를 짓고,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참회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해결해야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죄는 감출수록 그 힘이 강해짐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작고 힘없는 아이성에 패한 이유는 죄를 안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도 죄를 안고 살면 작은 문제 앞에서도 힘없이 무너집니다. 사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죄 지은 사람은 전체 백성 중에 아간이라는 단 한사람이었습니다. 수백만의 백성 중 한 사람의 죄는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죄를 용납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감출수록 힘이 강해지고, 드러나면 힘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원산 대부흥 운동과 평양 대각성 운동입니다. 원산의 하디 선교사는 교인들이 모르는 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로 죄를 감추고 있으니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인 앞에서 죄를 내어 놓고 회개했는데, 거기에서 참된 자유와 부흥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양대각성의 길선주 목사님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친구의 돈을 떼어먹고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감추고 숨기니까 죄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죄를 드러내고 회개할 때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3.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합니다. 

누구나 죄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힘듭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범죄한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픔이요,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13절)”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내일을 위하여서 오늘의 고통과 아픔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환자의 환부를 도려내야 내일의 소망이 있듯이, 내일을 위해서 죄를 인정하고 제하라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농촌에 부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제는 며칠씩 굶을 때가 허다했는데 한번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옆집 담을 넘어 새끼 양 한 마리를 훔쳐서 먹었습니다. 결국 사실이 발각되어 형제는 붙잡혀 매를 맞았고, 이마에는 인두로 “양 도둑”이라는 ST(sheep thief)라는 글자가 새겨졌습니다. 이 두 형제의 반응이 갈렸습니다. 형은 모욕을 참을 수 없어 다른 마을로 옮겨가 자신의 과거를 감추어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마다 이마의 두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결국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먼 타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동생은 ‘내가 양을 훔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내가 다른 곳으로 달아난다 해도 잊히질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진실하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ST라는 화인 때문에 수모도 당하고 손가락질도 당했지만 개의치 않고 착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뀔수록 그는 정직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평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이곳을 지나치던 낯선 사람이 이 노인의 이마에 있는 글자를 보고 그 동네에 오래 살던 사람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동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나는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글씨는 성자를 뜻하는 세인트(Saint)의 약자일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죄를 회개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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