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19)-아버지의 것,,,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19)-아버지의 것,,,

정원교회 0 3688

사람은 소유를 위해 산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산다. 소유의 대상이 돈이든, 지식이든, 명예든,, 소유가 없이는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죽어라 일하는 것도, 소유하기 위해서다,, 더 갖는다고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아무 것도 없이는 행복은커녕, 존재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분의 존재를 믿는 것일까,, 그분께서 주시는 것들,,, 물질적, 육체적, 영적 축복들을 믿는 것일까,,, 믿음은 더 많은 것을,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소유하게 하는 축복인가,,, 아니면,,,, 포기하는 자가 되는 것일까,, 혹은 두 가지 다인가,, 

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얼마 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9). 아버지의 것,,, 아버지의 소유다. 신자란 아버지의 소유가 된 자들이다,, 소유자가 아니라,, 피소유자가 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분의 것이 되어,, 그분의 것으로서,, 그분의 것답게 사는 자,,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것,, 이 한 마디에 신자의 정체성이 다 들어있다. 아버지를 모르던 자가 아버지를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분의 존재를 믿는 자가 되는 것이며, 그분께서 하시는 일들과 계획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소유가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도 호흡도, 재산도, 삶도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전존재가 아버지의 것임을 인정하고, 믿으며, 그분의 것으로서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십자가는 자기가 부인되는 극렬한 자리다. 그렇다,, 극렬한 자리다. 끝까지 저항하며 완강하게 버티려는 ‘나’와 극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자리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자신 안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자리다. 육체의 소욕이란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하나님의 것이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본성,,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주권선언이다. 알량한 자존심이며, 소유욕이고, 지배욕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부인되고, 자기가 없는 ‘나’는 무엇인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철저하게 항복한 ‘나’다. 항복했다는 것은 주권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의 소유에 대한 완전포기 선언이다.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왔으며, 아버지의 것입니다,, ‘나의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의 소유도, 저의 삶도, 제 자신조차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 아버지의 것입니다. 제 것인 양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참 신자가 되는 것이란,, 아버지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것이 되어, 아버지의 것으로서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신자란 아버지의 것인 줄 알면서도,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 되지 못한 자신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자들이다. 문제는 자기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자기존재의 정체성을 잊거나, 혹은 모른다는 데 있다. 혹시나, 아직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주여~~ 주여~~~ 부르짖지는 않나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의 것’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패륜아,, 기독교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일지 모른다. 아버지의 것을 자기 것이라 우기는 자가 패륜아 아닌가,,, 아버지의 것이 된다는 것,, 이 싸움이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다. 

그의 믿음은 백 살에 이삭을 얻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백 살에 얻은 이삭을 포기한 데 있다. 소유가 아니라, 포기다. 포기하는 자가 되는 것,, 자기 목숨보다도 소중한 이삭을 포기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 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다. 믿음의 정수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결코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시다(롬 4:17).

아버지는 천지의 창조주시다. 천상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는 통치자시다. 이제 그분의 것이 된다는 말은,, 그분께서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신다는 뜻이다. 나의 주권을 포기한다는 말은,, 철저하게 그분의 것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자기(self) 안에 갇혀있는 ‘내’가 자기(self)라는 상자에서 나와, 그분 안에 있는 ‘내’가 되는 것이다. 이보다 무서운 믿음, 강한 믿음이 없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심장에 칼을 겨누었다,,, 이삭조차도 포기하라면 포기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분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분의 것,, 그분의 소유가 된 자녀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라고 하셨다(엡 1:5). 기쁘신 뜻,,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시고, 내게 내려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집행하시고,,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의 것이 되게 하신 일이,,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라니,,, 호흡 멈추고, 심장이 멎는다,, 말도 안 되는 아버지 사랑의 역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이기에,, 아버지는 자신의 것이 된 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포기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상속자로 삼아주셨다(롬 8:17).아버지는 기꺼이 독생자를 내주시면서, 너는 나의 것, 나의 상속자라 하시는데,,, 나는 나의 이삭을 꽉 붙들고 내놓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포기했으나, 아버지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다. 오호라 곤고한 자여,, 이것이 믿음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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