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청지기

기독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청지기

일요시사 0 1820

‘청지기’는 종들 중에서도 열심이나,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맡는 직책입니다. 주인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책임감이 강한 지혜로운 종에게 이 직책을 맡깁니다.

신실한 청지기는 주인이 보거나 안보거나,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똑같습니다. 청지기의 위치는 자기 권리도 없고 주장도 내 세울 수 없는 참으로 고달픈 신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달픈 청지기라는 명칭을 왜 우리는 즐겁게 사용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원해서 사랑의 청지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왕이면 우리는 복을 받는 청지기,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만 유일하게 소개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13-21)에는 물질에 관련된 두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한 사람은 형제와 물질을 공평하게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질의 풍요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추구하려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는 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동기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흔히 사람들은 탐심이라는 문제를 부유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탐심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근본적인 죄악인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탐심이 커지게 되면 두 가지의 문제가 생깁니다.

탐심은 우리의 이기심을 만들어 냅니다. 부자 농부의 비유를 보면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 농부의 짤막한 고백속에는 '내가' 라는 말이 한글 성경에는 6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원문이나 영어성경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옵니다. 단어마다, 문장마다. 이 농부의 의식세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기만' 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탐심은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부자농부의 의식세계에는 “너”라든지 “당신” “우리” 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철저한 자신만의 세계, 상대방이 없는 나만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부자 농부가 이렇게 많은 곡식을 얻고 성공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의 도움이 있었겠습니까?

통계를 보면 지구의 인구는 60억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6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억의 인구가 매일 밤 밥을 굶고 잠자리에 들고, 매일 적어도 4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 가운데 100명 중 4명이 영양실조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불구자로 태어나고, 매년 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비타민 A 결핍으로 소경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탐심은 이런 이웃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워 놓고 사람들과 관계성을 파괴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어려운 이웃을 향한 나눔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청지기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모든 것에 주인이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청지기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는 정직과 성실의 열매입니다. 부자농부는 그 어떠한 도덕적인 결함이 있거나 부정 축재를 하여 물질을 모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자농부는 이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평안히 쉬고'(relax), '먹고'(eat), '마시고'(drink), '즐거워'(be merry)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서울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손병락 교수는 <마음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산상수훈과 십계명에 입각한 물질관리만이 축복을 받고 ‘돈이 경제가 아니라 관리하는 것’ 이 경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어리석은 부자농부는 자신을 위해 재물을 모으는 일에는 전력을 다했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전혀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였습니다.

새해를 시작 하면서 청지기로서의 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①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돌보아 주심을 확신하는가? ②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의식주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③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청지기가 되어 있는가?

큰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사기 기릇도 있고, 나무그릇, 질그릇도 있습니다. 좋은 그릇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올 한해 우리를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권세 있는 하나님의 집, 각자 각자의 교회에서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으시는 청지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12:19-20)



[이 게시물은 technical님에 의해 2011-03-30 18:55:56 기독교(설교)에서 이동 됨]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