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화평을 누리는 성도(1)

기독교


 

그리스도의 화평을 누리는 성도(1)

일요시사 0 1715

사람들은 흔히 21세기의 시대를 개인주의 시대나 집단이기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개인주의 시대가 아니라 공동체의 시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며 어떤 공동체에 속해 살 수 밖에 없는 시대가 21세기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행복은 공동체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틀린말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개인 개인 한사람의 행복이 공동체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나, 한 가정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나 기업에 속해 있다는 것은 행복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는 불가분리적 관계에 있습니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함께 행복해야만 같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롬5:1절에 말씀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단어는 평화, 평강, 평안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데 성경에는 ‘화평’이라는 말이 400회 정도 나옵니다. 그만큼 성경은 화평을 중요시 다룹니다.

롬14:17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 말씀하며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할 때 ‘평화’를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와의 화평, 나와 나 자신의 화평, 나와 이웃과의 화평, 세상과의 화평을 이루어 주신 분이십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사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평케 하는 사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특권과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이며 내가 속한 공동체를 화평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화평을 입은 존재'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삶의 초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품고 사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화평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는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화평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해 변화된 삶 가운데 개발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성품임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화평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언약의 공동체가 화평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의 화평, 나와 나 자신의 화평, 나와 이웃과의 화평,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화평, 세상과의 화평의 삶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덕을 세우는 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덕을 세우라’는 말은 건물을 세우듯이 건설하라는 뜻입니다. 곧 교회 공동체를 허물지 말고 세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우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화평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화평은 아무 일 없는 것이 화평이 아닙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화평이며,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를 가져오는 것이 화평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삶에서 발견되듯이 화평에는 반드시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그 희생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치루셨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우리들이 세상속에서 화평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닮은 희생을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희생을 감당해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화평을 누리며 화평을 만들어내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다하며 살게 됩니다. 희생을 싫어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희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희생은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요즈음 세계의 관심사는 기후에 대한 대책입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온난화 현상으로 인하여 해수면이 상승하고, 상상할 수 없는 추위, 폭설, 기근과 태풍 앞으로도 이런 이상기온은 계속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기온에 지구가 사람들이 몸살을 알고 있습니다.

나라들이 모여서 덴마크에서 기후대책을 협의했지만, 저마다 자기나라의 이익을 따져 보다가 희생을 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희생이 없이는 더 좋은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화평은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는 존재인 나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심으로 그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약2:16절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라는 말씀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 역시도 화평을 전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평' 이란 단지 말뿐 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희생의 모습을 통해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NZ광림감리교회 고성환 목사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3-15)

 

[이 게시물은 technical님에 의해 2011-03-30 18:55:56 기독교(설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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