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함께 가자 (2장 10-14절)

기독교


 

<채원병의 아가서 묵상> 일어나서 함께 가자 (2장 10-14절)

일요시사 0 1453

앞에서 술람미 여인은 왕을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왕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고, 마치 왕이 벽 뒤에 서서 창살 틈으로 엿보는 것 같았다. 술람미 여인은 왕이 이렇게 말하는 듯 하였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10-14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 주께서 언제나 마음 안에 가까이 와 계신 것 같고, 속삭이는 은밀한 사랑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그러데 때로는 주님께서 아주 멀리 계신 것 같다. 주님의 은밀한 속삭임도 들리지 않는다. 당대의 의인이었던 욥조차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가 없고, 그가 오른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뵈올 수가 없구나”(욥 23장 8, 9절)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올 때, 주님이 멀리 느껴진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가 하는 의문마저 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시다면,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멀리 계신 것도 아니고, 주님의 음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 마음이 주님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고난을 주시는 주님에 대한 원망이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이다. 

 

욥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나, 그의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믿음을 고배하였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장 10절)

 

욥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자신의 고난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단련으로 이해하였다. 고난의 연단 후에는 자신이 순금 같이 더욱 정결해질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우리 믿음의 근간이다. 그러나 믿으면서도 인정하기 싫을 때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재앙이 그런 경우다. 어쩌면 재앙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그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더 무서울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굳게 믿으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고난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욥 40장 2절)

 

전능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이 있다. 전능자께서 하시는 일들이 때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을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럴 때일수록 더욱 굳센 믿음으로 나가게 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보이게 된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뵈옵나이다”(욥 42장 5절)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욥은 듣는 믿음에서 보는 믿음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두 눈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그 믿음이 더욱 선명해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이다. 오죽하면 자기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했겠나?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장 17절) 

 

바울은 삶 자체가 고난이고 죽음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장 23-27절) 

 

바울은 죽음에 직면한 고난을 수도 없이 겪었고,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모든 괴로움, 육체와 마음의 온갖 괴로움을 당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 겪게 된 수도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는 고백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겪은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전 1장 8, 9절)

 

욥의 경우도 그렇고, 바울의 경우도 그렇고,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수단이었다.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태 10장 29절). 고난이 받는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지만,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히 12장 11절).

 

전능자의 손 안에 있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인생이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서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 설사 그 일이 괴롭고, 힘들지라도 말이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바르게 들을 수가 있다. 

 

아가 2장 10-14절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여기에서 겨울과 비는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말한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올 수 있는 것이며, 겨울이라는 추운 계절, 고난의 시간이 있었기에, 봄은 더욱 화창한 것이다. 이제 주님의 사랑의 손을 잡고 일어나 함께 걸어가자. 그리스도인은 고난 가운데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고, 믿음의 향기를 발하는 주님의 사랑의 꽃들이다. 

 

 

 

채원병 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0-04-11 15:13:01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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