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 누가복음 24:28~35

기독교

마음을 열어 누가복음 24: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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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

누가복음 24:28~35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나눴던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두 명의 제자를 친히 찾아가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이후에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그룹에 속한 이들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입니다.

19절에 보면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나오고, 21절에 보면 예수님을 향한 믿음, 더불어 그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기대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결과는 20절의 말씀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22절에서 24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천사를 만났는데,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가보았더니 정말 무덤은 비어있었고, 예수님은 만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두 제자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구원자로서의 기대가 무너져서 낙심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났다는 소리를 합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지금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답답한 걸음을 걷고 있는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찾아오셨으나, 16절에 보니까,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왜 저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따라다녔던, 구원의 역사를 이룰 인물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닫혀 있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아오셔서 저들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이어지는 45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가서 다른 제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이 열려야 말씀이 들려집니다. 마음이 열려야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마음이 열려야 믿음으로 “아멘”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사,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내 안에 깊이 새겨지는 은혜가 있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눈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열리면 눈이 밝아집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16절에 보니까, “눈이 가리어져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제자가 안대를 하고 있었다는 게 아니예요. 예수님을 만나고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게끔 마음이 닫혀 있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다가가서 물으시죠.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이냐?” 그러자 17절 후반부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두 제자에게 슬픈 빛이 보입니다. 저들이 가진 슬픔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겁니다.

오늘 두 제자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길에 계속해서 예수님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음에도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들의 마음이 슬픔에 잠식당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심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향한 기대감을 가졌는데 실망하였습니다. 그 실망이 마음의 벽이 되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슬픔의 마음이 벽이 되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근심과 걱정이 벽이 되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34절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우리의 눈이 어두우면 내 온 몸이 어두워집니다. 바른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이 눈에 대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아브라함의 눈과 롯의 눈이 다르잖아요. 똑같은 장소를 바라보면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니까 축복의 땅이 되고, 롯은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니까 저주의 땅이 되고 맙니다.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 30절과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며 떡을 떼어주실 때에, 비로소 저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줄 알아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주의 말씀을 받을 때에, 우리의 영적인 시선이 열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 불신의 마음에 시선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아져야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밝은 시선으로 주의 뜻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와 함께 걸으며, 성경에 기록된 자신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말씀이 더 듣고 싶어서 예수님을 강권하여 마을에 모셔들입니다. 그리고 함께 저녁 애찬을 나누는 중에 비로소 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기뻐할 겨를도 없이 예수님은 자취를 감추십니다.

두 제자는 말합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웠음을 서로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우리 안에 뜨거움이 있습니까? 주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충만함, 주의 말씀을 통한 감격과 은혜, 영적인 뜨거움은 모두 지나가버린 옛이야기와 같고, 이제는 마치 불 꺼진 아궁이처럼 다 식어버린 모습으로 주의 말씀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존 웨슬리목사님도 그랬잖아요. 선교의 열정도 있었고, 신앙의 훈련도 받았지만, 그 안에 뜨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날 말씀이 들려지는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영국 사회 전체의 변화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시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말씀이 들려질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뜨거움이 임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힘겹게 해도, 어떤 상황이 나를 어렵게 몰아가고, 오늘 두 제자처럼 낙심의 상황에 처할지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뜨거우면 새겨집니다. 무언가 뜨거운 걸 놓으면 흔적이 새겨지잖아요. 주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이 뜨거움으로 우리 안에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삶의 자리가 바뀌어집니다. 


오늘 두 제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어디인가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길입니다. 저들은 왜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두 제자의 고향이 엠마오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가 이제 모든 소망이 끊어져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저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기적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함께 호산나를 부르면서 동참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저들의 고백대로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요,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이다.” 이런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기대가 사라져 자신의 원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자신들에게 주실 때에, 저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들려주실 때에는 마음에 뜨거움도 느꼈습니다. 그러자 저들의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33절과 34절입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엠마오로 가던 걸음을 돌이켜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전까지 엠마오로 향하면서는 여인들을 통해 전해진 소문만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는 하는데, 예수님을 본 자가 없다고 합니다. 실체가 없는 소문에 마음만 더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반신반의합니다. 우리가 만난 분이 정말 예수님이 맞나? 그런데 예루살렘에 가니까,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아! 그래. 우리가 만난 분이 정말 예수님이 맞구나.” 그러면서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 자신들의 눈을 열어주시고, 마음을 뜨겁게 하신 예수님을 자신있게 증거합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께서 다시금 친히 그 자리에 임재하십니다. 이어서 45절에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 부활에 대한 말씀을 전하신 후에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이어서 49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이 말씀을 붙잡고 저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죠.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체험하고 더욱 더 담대함으로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은 언제나 예루살렘과 엠마오 그 사이를 오가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신앙의 뜨거움이 있고, 믿음이 불붙듯하고, 은혜가 충만할 때는 힘차게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겪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이 시간 우리 자신의 영적인 걸음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가?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사명 감당하고 있는가? 엠마오에서 주저 않아 있는가?

낙심과 절망으로 마음이 차가워진 자, 눈이 닫힌 자는 엠마오로 향합니다. 반대로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는 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다시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의 걸음이 예루살렘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 헌신의 자리, 사명 감당의 자리에 견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까지 왔다 갔다 하는 인생, 흔들리는 삶을 살겠습니까? 마음을 열어 주님을 바라보고, 영적 예루살렘에 굳건히 서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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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5-20 21:54:35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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