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7) 가장 큰 지혜(3)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7) 가장 큰 지혜(3) <잠언 4:20~27>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가장 큰 지혜 세 번째 말씀입니다. 5월 들어서 제가 잠언 4장을 가지고 매 주 마다 가장 큰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장 큰 지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럼 정말 가장 큰 지혜가 무엇일까요? 신앙적으로, 성경적으로 말할 때의 지혜는 단연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매 주마다 본 말씀처럼 잠언 9장 10절에 말씀하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렇다면 믿는 자로서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믿는 자로서 신앙의 삶, 교회에서의 예배생활 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 속에서, 내 가정 속에서, 내 일터 속에서,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이러한 영적인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더 나아가 그에 합당한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세상 속에서도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영적으로나, 세상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비추일 때나 한결같은 지혜로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에, 먼저 잠시 스스로 답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기를 원하시는, 가장 큰 지혜가 무엇인지 찾아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내 마음에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나요?” 오늘 본문도 지난 주와 똑같은 패턴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 여기서 솔로몬의 말이 뜻하는 것은 다른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내 마음에 말씀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 “내 마음에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가?” 여러분 스스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에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가? 보통 일반적으로는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지금 나를 아주 기쁘게 하는 것이나, 아주 힘들게 하는 것이나. 지금 아주 관심 있어 하는 것이나, 어렵고 힘들어서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나. 둘 중의 하나가 내 마음을 점령하게 됩니다.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집니다.   

  

본문 23절에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내 마음에 무엇이 가득차 있는지를 먼저 잘 살피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가득찬 그것이 나의 삶을 이끌어갈 뿐 아니라, 내 생명까지도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내 마음에 무엇을 얼마만큼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내가 말하는 언어가 달라집니다. 내가 살아가는 행동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잠언에서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너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으라.” 

  

빌립보서 2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잠언 4장에서 오늘까지 3주 동안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 “내 아들아 내 훈계를, 내 말을, 내가 가르치는 것을 네 마음 속에 지키라.”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것이 결국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라.”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닮아가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되나요?” 두 번째 질문은 이기주씨가 지은 [언어의 온도]라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자는 책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얼굴도 예뻐.”라고 하려다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언어의 온도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람이 말하는 언어는 모두 다 온도가 있다는 거예요.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인 화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죠. “그렇다면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입었다면, 나의 말의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누군가 나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면, 나의 말의 온도가 너무 차가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 여러분들의 말의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본문 24절에 말씀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입술이 뭘까요? 말 자체로 보면 거짓이나 속임수를 뜻하겠죠. 뭔가 삐딱하게 말하는 것을 뜻하겠죠. 분명한 것은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 적정한 언어의 온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에 대한 말씀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잠언서에도 보면 말을 주의하라는 말씀이 50번도 넘게 나옵니다. 그 모든 내용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미련한 자는 말을 함부로 한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입술을 제어한다. 남을 험담하는 자는 사귀지 말라. 그냥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만 있어도 지혜롭게 여겨질 수 있다.”

  

야고보서에도 말에 대한 경고가 많이 나옵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이어서 야고보서 3장 5절입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공통점이 뭔가요? 다 경고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에 잠언서와 야고보서, 또한 다른 성경의 말씀들을 종합하면 말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사람들간에 말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적정한 언어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따라서 지혜롭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말을 하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언어의 온도를 따뜻하게 36.5도로 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말,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좋은 말, 선한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신 “대대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랬대. 저랬대. 이랬대.” , “어머머머, 어쩜 그럴 수 있대?” “대대대”  “거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줄로 집을 짓고 살고,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집을 짓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요? 아름다운 말, 긍정적인 말, 격려와 칭찬의 말, 따뜻한 말로 따뜻한 집을 짓고 사는,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입니다. 


“내가 머문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 남겨져 있나요?” 본문 마지막 25절에서 27절에는 잠언 4장 전체를 마무리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앞서 솔로몬이 계속해서 강조한 것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말씀이죠.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 솔로몬이 전한 권면의 말,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모습이 실제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열합니다. “먼저 내 눈은 앞을 잘 바라보고, 내 발로는 평탄하고 든든한 길로 행하라.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걸어가되, 악한 길로는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걸어가라.” 시선을 똑바로 하고, 내 걸음을 곧게 하여서 바른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을 통해서 구원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드러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거예요. 나는 지금 어떤 흔적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올 때가 아니라, 문을 닫고 나갈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 어떤 흔적이 남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평가가 남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도 때로 이름을 바꾸는 분들이 꽤 있으십니다. 하지만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죠.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이름에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쉬운 말로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의 흔적을 새겨가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라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육체에 구원의 주 되심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손과 발에 새긴 못 자국과 옆구리에 새겨진 창자국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에 난 상처, 구원의 흔적을 보이시면서 믿는 자가 될 것을 명하십니다. 

  

일평생 힘을 다해 주의 복음을 전한 바울도 갈라디아서에 고백합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수많은 고난, 매 맞음, 생명의 위협, 비난과 조롱으로 인한 상처가 모두 예수님 손과 발의 못자국과 같은 흔적이 된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몸에, 우리 삶에 어떤 예수 믿는 자의 흔적을 새겨가고 있는지요?

  

한 목사님이 아주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기도원에 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그분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도 많이하고 도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한참 기도하는 중에 마음 속에 그런 응답이 오더라는거예요. “그럴 수도 있다.” 그때부터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그래.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은 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힘들 때, 답답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 보세요.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구원에 관계된 것이라면 절대로, 생명을 걸고서라도 양보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좀 편안하게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절!대!로!” 그러면서 이 앙다물면 여기 뉴질랜드 치과 치료도 비싼데, 이만 망가지고, 내 정신 건강에 해롭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존경받지 못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 이해하고, 용납하고, 수용하면 평안함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내가 머문 그 자리에 아름다운 흔적을 새겨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가장 큰 지혜! 하나님 안에 거함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가장 큰 지혜로, 믿는 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뉴질랜드 광림의 권속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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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5-20 21:56:00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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