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8); 성령의 첫 열매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18); 성령의 첫 열매 <로마서 8:1~6>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이라고도 하죠. 또한 금년에는 성령강림주일과 같은 주일인 오늘이 존 웨슬리회심 283주년 기념주일기도 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감리교의 창시자가 됩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에서는 존 웨슬리회심 기념주일이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지난 2019년에도, 2020년에도 웨슬리 회심기념주일에,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일평생 4만번이 넘는 설교를 하였는데, 그 중에 53개의 대표적인 설교를 모아 표준설교집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저는 여덟 번째 설교인 “성령의 첫 열매”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이기에 표준설교에 담긴 성령에 관한 설교 중에 하나를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일단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또 하나의 말씀이 4절입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전체 말씀의 가장 중심 되는 두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말씀은 앞선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변화된 것을 말씀하는 것이죠. 동시에 “이제”. 앞선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 정리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로서, 새롭게 변화된,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의 영적인 모습, 삶 적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나요? 1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4절의 말씀과 같이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모습인 거죠. 이를 통해 오늘 제목과 같이 우리 삶에 성령의 첫 열매를 맺어가게 됩니다. 오늘 웨슬리 목사님은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말씀 속에서 그 답을 찾아가면서 은혜를 전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를 기반으로 하여,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우리 주의 크신 은혜가 충만한 시간되시길 축원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마치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믿음으로 예수님께 접붙힘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존재 가치는 달라집니다. 또한 삶의 모습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내 욕심을 따라서 살았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변화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예수 믿기 이전에는 저 바깥에 거하던 자였습니다. 내 육적인 욕심을 따라 행하던 자였습니다. 죄의 자리에서 안주하면서 살아가던 자였습니다. 어떻게 살아도 내 욕심껏, 내 육체적인 생각과 방법을 따라,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그에 합당한 모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그냥 들어온 게 아닙니다. 아무나 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은 자만이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천국의 시민권자”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4절에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한다.” 내 육체적인 욕심, 내 세상적인 욕심, 예수 믿기 이전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육에 대해서 부패한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부패한 본성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육적인 본성을 따라가면 결과는 자명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도 그 결과는 명확합니다. 6절에 말씀하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어느 길로 향하길 원하십니까? 무엇을 따라 행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열매를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오늘 제목과도 같은 성령의 첫 열매입니다. 구체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 말씀하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맺어가는 열매를 통해 믿는 자의 선한 증거를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자는 왜 정죄함을 받지 않는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서 예식으로는 세례를 받고, 동시에 내 안에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새겨넣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믿음으로서 의롭다 여김 받는다.” 그럼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죄로 인해서 정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죄사함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말씀합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전에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로마서 8장 15절 말씀처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더 이상 무서워하거나 두려워 할 것 없이 자녀됨의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상당히 강력하게 말합니다.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빛 되신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죄 사함의 은혜, 주의 긍휼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책감에 빠져 살아간다면, 실제로는 신앙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하게 선언할 수 있는 이유가 앞서 살펴본 웨슬리 목사님의 일기에 나옵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어지는 일기를 보면, 회심 이후에 그 날 밤까지 마음 속에는 계속해서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날 일기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싸웠다. 나는 율법 아래서 뿐만 아니라, 은총 아래에서 힘을 다하여 투쟁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자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늘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사탄의 공격은 계속 되었습니다. “네가 정말 믿는다고 하면 뭔가 더 뚜렷한 변화는 없느냐?” 이에 대해 웨슬리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그것은 내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안다. 나는 현재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오늘은 내가 죄를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의 확신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성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죄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죄의 길을 멀리합니다. 그렇기에 정죄받을 일도 없습니다. 과거의 죄는 이미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았고, 현재와 미래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 거함으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성령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성령님! 나의 삶의 걸음을 의의 길로 인도하옵소서. 내 걸음이 죄의 길로 향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의의 길,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로만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기서 처음 한 단락은 웨슬리목사님의 설교문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자는, 과거의 죄 때문에 정죄받을 일이 없다면, 당신은 왜 두려워합니까? 아! 믿음이 적은 당신이여, 당신의 죄가 모래보다도 더 많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지금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로마서 8장 33절과 3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누가 감히 소송하겠습니까? 의롭다고 선언하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영으로 난 자입니다. 당신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두려움으로가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깨달아, 당신의 구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그를 통해 당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에는 완전한 확신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케 하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로마서 5장 1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그냥 성경의 말씀으로 읽는 것, 마음에 새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렇게 살아내야 함을 강조합니다. “정말 그렇게 살아라.” 죄, 악한 욕망, 나쁜 기질이나 말, 또한 그러한 행동, 이러한 죄의 굴레를 벗어버리라는 겁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를 범하는 자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래.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어? 죄를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죄의 유혹이 올 때에, 어떻게 해서든 내 정결함을 지켜 가겠다는 결심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앞서기도 합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어떻게든 말씀과 기도로 내가 꼭 이겨보리라는 마음을 갖기 전에, 이미 한편으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여.” 성경 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죄의 권세에 굴복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웨슬리 목사님은 단언합니다. “그렇게 쉽게 지면 안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자는, 다시는 종의 멍에, 죄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된다.” 이에 마음의 뜨거움을 경험한 이들은 정말로,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끊어버리고 주님 앞에 돌아옵니다. 술집과 도박이 만연했던 사회 속에서 자신이 행했던 죄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변화되는 실제적인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완전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그 순간, 저들은 예수님 안에 완전히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리를 벗어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종의 멍에, 죄를 멍에를 벗어버리고,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함이 뜻하는 것은 이 하나입니다. “변화” 성령의 충만함 이전과 이후의 마음과 말과 행동과 삶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올더스케잇 회심도 결국은 이거 하나입니다. “변화” 회심 이전과 이후의 마음자세와 삶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임재, 영적 회심의 결과는 내 삶의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다시는 정죄 받지 않을 믿음의 길을 걷는 자로서, 어떤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계신가요? 내 말과 내 행동과 내 생각과 내 모든 것이 얼마나 변화되었나요? 

  

성령의 첫 열매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임재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아홉가지 열매입니다. 여기까지는 초대교회의 역사 속에 나타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증거된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중요한 나의 성령의 첫 열매는 무엇일까요? 내 삶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로서의 변화된 삶의 흔적을 새겨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내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매 순간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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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49:09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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